루이지 기리의 사진집 ‘이곳은 아름답죠. 그렇지 않나요…’. 사진 김진영
루이지 기리의 사진집 ‘이곳은 아름답죠. 그렇지 않나요…’. 사진 김진영

7월이면 미루고 미루던 휴가계획을 잡아 어디에든 가서 쉬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더위도 더위지만, 어쩌면 삶 자체의 복작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탓일 것이다.

일상의 공간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면 우리는 세상을 달리 보기 시작한다. 거리에 세워진 평범한 자전거도 살고 있는 동네나 출근길이 아닌 먼 타지에서 마주치면 특별한 자전거가 되곤 한다. 예전에 나는 해외 여행을 할 때 거리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을 그렇게나 열심히 사진으로 찍곤 했다. 현지 사람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물건이 내 눈에는 왠지 특별해보였다.

사실 세상은 한없이 아름다울 수 있다. 먼 곳의 쓰레기통이 아니라 내 방의 쓰레기통도 내가 시선을 던져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아름다움의 판단은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미학에서는 ‘미적 태도’라는 말로 표현한다. 

미적 태도의 관점에서 보면 일상적 지각과 미적 지각은 서로 다르다. 어떤 대상이든 미적으로 지각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아름다움은 대상에 담겨있는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보는 이의 눈에 달렸다는 뜻이다.

이탈리아 사진가 루이지 기리의 시선은 그러하다. 루이지 기리는 화가 조르조 모란디의 아틀리에를 찍은 사진과 알도 로시의 건축물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진가이다. ‘이곳은 아름답죠. 그렇지 않나요…(It’s beautiful here, isn’t it…)’ 라는 제목을 가진 이 사진집은 루이지 기리의 대표작을 모은 것으로 2008년 ‘애퍼처(Aperture)’ 출판사에서 발간됐다.

기리는 대부분의 사진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이탈리아 북부의 에밀리아 로마냐 주에서 찍었다. 도시, 거리, 풍경 속 평범한 대상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같은 시기 미국에서 활동한 윌리엄 이글스턴과 유사한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윌리엄 이글스턴은 이 사진집의 서문을 직접 썼는데, 루이지 기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하고 흥미롭게 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것은 루이지 기리 사진의 다양성이다. 이 사진들은 한 사람에 의해 촬영됐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이것은 칭찬이다.”

이글스턴이 이처럼 말하는 이유는 우선 루이지 기리의 사진이 가지고 있는 소재의 다양성이다. 기리의 사진에는 지도, 풍경, 창문, 정물, 실내, 안개, 바닷가, 모란디의 스튜디오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여기에 더해 당시 기리가 영향을 받은 초현실주의와 개념미술의 흔적도 한 가지 이유로 들 수 있다. 기리는 한 장의 사진 안에 실제 세계의 모습과 세계를 재현한 이미지, 이를테면 벽화, 엽서, 조소 등이 함께 담기도록 찍음으로써 독특한 기시감을 만들어낸다. 이 사진집의 표지를 보자. 초록색 신발을 신은 아이의 발은 실제 세계의 대상이다. 그 발이 밟고 있는 지도는 실제 세계의 재현물이다. 기리의 사진은 한 장의 사진 안에 두 개의 세계를 담음으로써 독특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이글스턴은 이 사진집의 서문에서 “내가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많은 것들을 기리가 했다. 그가 했다는 점이 나는 기쁘다”고 적고 있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숨어 있다

기리의 시선에서 세계는 아름다운 수수께끼로 가득찬 공간이 된다. 미국 작가 테쥬 콜(Teju Cole)은 ‘루이지 기리의 멋진 사진 퍼즐’이라는 글에서 “당신은 기리의 각 사진을 보면서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지만, 그 감정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남아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루이지 기리에 대한 다른 사람의 관점도 들어보자. 일본의 북 큐레이터 요시타카 하바는 ‘책 따위는 안 읽어도 좋지만’이라는 책에서 ‘세상을 보는 황홀한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기리를 소개했다. 그는 ‘무음(無音)’이라는 관점에서 루이지 기리의 사진을 본다. 기리가 포착하는 사물들은 항상 매우 과묵하고 흔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물과 사물 사이의 공기 흐름과 얼마간의 긴장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루이지 기리의 사진집 ‘이곳은 아름답죠. 그렇지 않나요…’. 사진 김진영
루이지 기리의 사진집 ‘이곳은 아름답죠. 그렇지 않나요…’. 사진 김진영

하바는 루이지 기리의 ‘사진 강의’의 한 대목에 주목했다. 기리는 그의 고향 레조넬에밀리아의 학교에서 1989년에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내용을 정리해서 ‘사진 강의’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서 기리는 “이미 봤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공통적인 맹목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사물을 그저 익숙한 시선으로 본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어떤 대상을 호기심 어리고 새롭게 바라보는 것과 달리, 우리는 익숙한 것은 익숙한 것대로 보고, 심지어 새로운 것도 익숙한 시선으로 넘겨 버리기 일쑤다. 기리는 이런 익숙한 방식의 보기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눈을 비판하며 말한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이곳은 아름답죠. 그렇지 않나요…’라는 사진집의 제목은 그래서 하나의 권유로 느껴진다. 우리가 얼마든지 생경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세상에는 우리가 구제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도처에 수수께끼처럼 있다는 점을 암시라도 하듯 말이다.

여행자의 시선과 일상의 시선 사이를 오고간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여행할 때 지녔던 ‘무엇이든 새롭게 보였던’ 시선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오면 금세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시선으로 쉽게 변하곤 한다.

익숙함에 무뎌지지 않고 늘 새롭게 보며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기리는 평생을 그 시선을 위해 애쓰며 무언가를 보려 한 사진가다. 그의 권유를 따른다면, 우리의 사진찍기는 오로라가 펼쳐지는 누가봐도 멋진 풍경 속에서가 아니라 어쩌면 내 방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