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를 달리고 있는 지프 그랜드 체로키. 사진 FCA 코리아
오프로드를 달리고 있는 지프 그랜드 체로키. 사진 FCA 코리아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들이 얌전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원래는 비포장도로와 산길을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SUV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그럼에도 SUV를 타고 모험을 떠날 이유와 근거는 아직도 충분하다. 특히 가족들과 떠나는 여행에서 남들이 다 가는 도로를 벗어나 숲 속으로 이어진 길에 접어들면 완전히 다른 경험을 얻는 계기가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SUV다.

국내에서 지금처럼 SUV가 다양해지기 전인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SUV를 타는 사람의 이미지는 꽤나 터프한 것이었다. 초창기 SUV라고 할 수 있는 쌍용자동차의 코란도나 훼미리, 무쏘와 렉스턴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갤로퍼와 테라칸까지 정통이라는 이름이 붙은 SUV들의 세상이었다. 이들의 광고는 모래밭을 힘차게 내달리거나 울창한 숲 속을 달리는 등 자연과 가까운 내용이 많았다. 이런 차들은 사다리꼴 프레임 위에 차체를 얹는 보디 온 프레임(Body on Frame) 타입의 차체와 저속 부변속기를 달아 엔진 힘을 키우는 사륜구동(4WD·4 Wheel Drive)을 얹어 험로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다들 포장도로를 뜻하는 온로드(on road)의 반대 개념으로 비포장 도로 혹은 도로가 아닌 곳을 말하는 오프로드(off road)를 달릴 수 있다 해서 ‘오프로더’라 불렸다.

2000년 현대차의 싼타페를 시작으로 승용차처럼 프레임과 보디가 하나로 만들어진 구조의 SUV가 처음 나왔다. 당시 그랜저XG와 같은 플랫폼을 사용했던 싼타페는 울룩불룩한 근육질의 겉모습과 달리 사실상 덩치 큰 승용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후 현대차 투싼과 기아차 스포티지 2세대, 당시 GM대우의 윈스톰 등 중형 SUV들이 나오며 시장이 크게 확장됐고 지금은 소형급인 코나·스토닉·티볼리·QM3·트랙스 등 국내 모든 자동차 회사의 격전장이 됐다. 그에 따라 이들이 달리는 전장은 비포장도로와 산속, 바닷가에서 잘 포장된 도로 위로 그리고 복잡한 도심으로 바뀌었다.

이런 경향은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SUV의 시작이라고 할 지프의 윌리스 MB는 2차 세계대전의 험난한 전장을 누비기 위해 만들어졌고, 전후 이 차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첫 랜드로버도 진흙이 깊은 영국의 비포장도로에서 농업용과 가정용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전체가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이던 SUV는 차체 크기에 비해 높은 차체로 실내 공간이 넓다는 장점 때문에 차츰 인기가 높아졌고, 좀 더 승용차처럼 바뀐 지프 체로키가 1980년대에 나오면서 판매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SUV가 넉넉한 공간으로 과거 승용 왜건이 하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하자 승용차의 조종 성능과 승차감을 요구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비포장도로 달리는 게 진짜 쾌감

그럼에도 SUV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험로를 벗어나 안전한 도로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최저 지상고다. 땅과 차의 가장 낮은 곳까지의 높이인 최저 지상고가 130~150㎜ 부근인 승용차에 비해 SUV는 최소한 160㎜부터 시작된다. 차고 조절이 가능한 가변식 서스펜션을 단 차들은 300㎜ 넘게 올라가기도 한다. 주행 중 부딪히는 충격으로 부품이 망가질 우려 때문만이 아니라 차는 바닥이 닿으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미끄러운 노면에서 바퀴가 헛돌기 시작하면 땅을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차체 어딘가가 걸린다. 어떤 SUV라도 바닥이 땅에 닿으면 흔히 말하는 대로 ‘답이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므로 높은 최저 지상고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비포장도로에서 SUV가 필요한 이유다.

또 하나는 사륜구동 유무다. 일반적인 자동차는 땅에 닿은 4개의 타이어를 이용해 달리고 돌고 멈춘다. 자동차는 흔히 타이어와 노면의 마찰력인 접지력을 이용한다. 실제로 타이어가 붙어 있는 면적은 손바닥 크기 정도인데 여기에 엔진의 힘이나 제동력이 집중되면 미끄러진다. 이 때문에 같은 힘을 내는 엔진을 얹더라도 사륜구동과 이륜구동은 미끄러운 노면에서 바퀴가 헛돌 확률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당연히 비포장도로나 눈길, 빙판처럼 기본적인 마찰계수가 떨어지는 경우 사륜구동이 유리하다. 지금 국내에서 팔리는 많은 SUV는 4개의 바퀴 중 2개에만 동력을 전달하는 이륜구동(2WD)이 기본이고 사륜구동은 옵션인 경우가 많다. 조금이라도 비포장도로를 달릴 일이 있거나 모험을 떠날 계획이 있다면 사륜구동을 선택해야 한다. 바위산을 오르던 산양이 농장에서 산다고 그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최근의 사륜구동 혹은 AWD(All Wheel Drive)는 단순히 험로 주파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앞뒤 바퀴에 동력을 나눠 마른 노면에서의 조종성도 높여준다. 사륜구동을 위한 장비가 추가되면서 무게가 늘어나기 때문에 연비에서 손해를 보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 번만 위험한 상황을 피하면 본전은 충분히 뽑는다. 과거 ABS가 꽤나 비싼 선택 사양이던 시절, 다들 자신의 운전 실력을 자랑하며 무시하기 바빴지만 한두 번 위력을 경험한 이후에는 모두가 선택하게 된 것과 같은 이치다.

굳이 이런 고민까지 하면서 비포장도로를 갈 이유는 무엇일까? 글머리에 쓴 것처럼 모험은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면서 시작된다. 평범하고 무난한 인생에서 추억을 찾기가 어려운 것처럼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 잘못 들어간 길에서 겪는 고생과 이를 극복했을 때의 쾌감은 가족 모두의 추억이 된다. 당신이 SUV를 타고 있다면 쿵쾅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찾으라. 자동차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Plus Point

오프로더 진가 느끼고 싶다면

모하비의 4WD 시스템. 사진 기아차
모하비의 4WD 시스템. 사진 기아차

기본적으로 부변속기라 불리는 로 레인지(Low Range) 트랜스퍼가 달린 SUV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 팔고 있는 차 중에 이를 모든 트림에서 기본으로 단 차는 랭글러 루비콘과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레인지로버 정도다. 기아차 모하비는 중간급인 VIP 트림부터, 쌍용차의 G4 렉스턴·G4 렉스턴 스포츠는 사륜구동시스템인 4트로닉을 선택사양으로 고를 수 있다.

G4 렉스턴 스포츠 와일드 트림에 4트로닉을 선택하면 2500만원이 돼 싼값은 아니지만, 4트로닉 모드를 넣는 순간 바위를 타고 넘나드는 신세계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