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창동에 있는 ‘플랫폼 창동 61’에서 열리고 있는 ‘블랙독 캠페인: Save Black 김용호 사진전’. 사진 플랫폼 창동 61
서울 창동에 있는 ‘플랫폼 창동 61’에서 열리고 있는 ‘블랙독 캠페인: Save Black 김용호 사진전’. 사진 플랫폼 창동 61

이제는 지난 얘기가 됐지만 8년간 나는 채식주의자였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육식은 하지 않고 유제품과 해산물은 허용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이었다. 느닷없이 채식을 시작한 건 서울 외곽의 재래시장에 취재를 다녀온 후부터였다. 요즘처럼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었다.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붉은 흙바닥과 맞닿은 철창에는 염소·닭·개·고양이들이 목을 가눌 틈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철창 위로는 솥에서 갓 삶아 건져낸 고깃덩이들이 형체 그대로 던져져 있었다. 그 무수한 절망의 눈동자들과 그들 앞에 놓인 커다란 가마솥과 그 생경한 풍경을 지옥도로 만드는 폭압적인 더위보다 더 끔찍한 건 냄새였다.

동물들의 더러운 기름때와 뭔가가 썩어가는 냄새, 장터의 음식 냄새, 가난한 사람들의 땀내가 섞여 만들어내는 묘하고 지독한 냄새가 더운 공기 속을 떠돌았다. 그건 지금까지도 내겐 죽음의 냄새로 각인돼 있다. 그날 이후로 고기를 딱 끊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곱창도, 삼겹살도, 탕수육도 좀처럼 젓가락이 가질 않았다. 냄새라는 후각 이미지가 그 어떤 시각 효과보다 강렬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다시 고기를 먹고는 있지만 가끔은 그날의 풍경이 떠올라 소름이 돋곤 한다. 녹슨 철창에 갇혀 있던 동물들은 아마도 그해 여름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 개 중 대다수는 유기견으로 추정되는 코카스파니엘·비글 그리고 진돗개와 골든 리트리버를 닮은 잡종견이었다.

서울 창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플랫폼 창동 61’에서 7월 4일부터 ‘블랙독 캠페인: Save Black 김용호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유기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김재중, 라미란, 박성웅, 윤상현 등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이 나섰다. 사진작가 김용호는 검은 개, 검은 고양이와 함께 포즈를 취한 스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번 전시 기간 중에 ‘블랙독 캠페인의 날’도 있다. 이날엔 검은 개 입양 캠페인과 반려동물 용품 마켓이 열린다. 

그런데 왜 하필 블랙독(Black Dog)일까. 블랙독은 우울증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나는 평생 블랙독과 살았다”는 말로 자신의 오랜 우울증을 검은 개에 비유했다. 검은 고양이의 상황은 더 나쁘다. 12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악마가 검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추종자들 앞에 등장한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마녀의 친구로 낙인 찍힌 고양이들은 성 요한 축일마다 산 채로 불에 태워져 몰살당했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털 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는 ‘고양이 예술사’에서 중세 기독교인들이 고양이를 박해했던 까닭을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극한 고양이 사랑에서 찾는다. 이교도가 고양이를 신성시했던 탓에 그 반대급부로 고양이를 핍박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슬픈 짐승이 된 검은 동물은 우울하고 불길하다는 편견 속에서 오랜 시간 차별받아 왔다. 실제로 2014년 미국 NBC 뉴스가 “검은 개의 입양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훨씬 빠른 속도로 안락사당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검은 개 입양은 전 세계적으로도 화제였다. 문 대통령은 학대당하다 버려진 후 2년간 입양되지 못한 토리를 청와대의 퍼스트도그로 데려오면서 SNS를 통해 “편견과 차별에서 자유로울 권리는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있다”고 동물 복지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자화상.
구스타브 쿠르베의 자화상.

검은 개와 검은 고양이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은 건 문재인 대통령만이 아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존재 고유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온 예술가들은 늘 이들의 편이었다. 여성의 음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 ‘세상의 기원’으로 프랑스 화단에 파란을 일으킨 구스타브 쿠르베는 종종 커다란 검은 개를 그렸다. ‘르 살롱(Le Salon)’에 출품해 처음으로 입선한 자화상에서 20대 초반의 젊고 잘생긴 쿠르베는 자신과 꼭 닮은 검은 개와 함께 도도한 자태를 뽐낸다. 폴 고갱이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완성한 대작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에는 흰 개와 검은 개가 한 마리씩 등장한다. 타히티섬의 이국적인 풍광(風光)을 인간의 운명에 빗대어 4m에 달하는 긴 캔버스에 그린 이 그림에서 검은 개는 죽음이 임박한 늙은 여인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지점에 갓난아기와 나란히 앉아 생명의 탄생을 지켜본다. 


광화문 광장에선 개 식용금지 집회도

검은 고양이는 만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기록된 파라마운트의 1919년 작 ‘검은 고양이 펠릭스’는 저주의 상징이었던 검은 고양이를 톱 스타 반열에 올려놨다. 흑백의 무성 만화 영화 속의 펠릭스는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장난꾸러기 고양이다. 노란 병아리 트위티에게 매번 골탕 먹던 악당 고양이 실베스터, 심슨 가족의 반려묘 스노볼, 마녀 배달부 키키의 빨간 리본을 한 검은 고양이 지지는 또 어떤가. 추억의 만화 ‘세일러문’의 주인공은 이마에 초승달 무늬가 있는 검은 고양이 루나를 만나면서 정의의 전사로 변신할 수 있게 된다.

오랜 세월 예술가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개와 고양이는 소셜 미디어 시대가 낳은 최고의 스타다. 하지만 온라인 밖 현실 세계에서의 상황은 거리로 내몰리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폭염 주의 경보가 울리던 지난 초복, 전국의 사철탕 식당은 만석이었다. 같은 날 광화문 광장에서는 개 식용 금지를 촉구하는 동물 보호 단체들의 집회가 열렸다. 동물 해방 물결은 꽃가마를 끌고 식용견 농장에서 죽은 개들을 추모하는 장례 퍼포먼스를 벌였다.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와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IS)은 ‘입시견’ 차별을 타파하기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입 주변이 검고 덩치가 큰 개를 뜻하는 입시견은 개 농장주들 사이에서 식용견으로 통한다. 카라와 HIS는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입시견의 평범한 일상을 소개하며 입시견 차별 방지 이모티콘 제작 및 배포를 위한 모금을 진행 중이다. 전시 ‘블랙독 캠페인’은 8월 26일까지 계속된다. 무엇을 먹든 그건 개인의 자유고 각자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지만,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또 한 번의 복날이 다가오고 있다.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