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 콜린스의 사진집 ‘Coming of An Age’. 사진 김진영
페트라 콜린스의 사진집 ‘Coming of An Age’. 사진 김진영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한 친구가 브래지어를 벗어버리고 티셔츠만 입고 싶다며 투덜거린다. 한국의 가수 겸 배우 설리나 할리우드 배우 엠마 왓슨만큼 용기가 없는 친구는 이를 행동에 옮기지는 않고 있지만, 이들의 패기를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지난달 페이스북의 검열에 항의하는 한 여성단체가 상의 탈의 시위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여성의 몸에 너무나 쉽게 부여되는 음란물 이미지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가슴을 드러낸 사진을 게재했다가 사진을 삭제당하고 한 달간의 계정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이들은 상의 탈의 시위운동을 했던 것이다.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해외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일찍이 2013년에 있었다. 1992년생 아티스트 페트라 콜린스는 어느 날 그녀가 올린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인스타그램으로부터 계정을 삭제당하는 일을 겪었다. 그녀가 올린 사진은 수영복 하의를 입은 하체 사진이었는데, 제모하지 않은 음모가 수영복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비키니’라는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수많은 ‘아름다운’ 사진은 내버려 둔 채, 인스타그램은 콜린스의 이 ‘아름답지 않은’ 수영복 사진을 삭제해버린 것이다.

콜린스는 이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허핑턴 포스트와 오이스터 매거진에 ‘왜 인스타그램은 나의 몸을 검열했는가’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 글에서 그녀는 미디어가 제시하는 ‘여성성’이 마치 모든 여성이 따라야 하는 하나의 표준처럼 작동함을 지적했다. 미디어는 현실적인 여성의 몸이 아니라 가꾸어지고 완벽한 몸을 주로 제시한다. 여성의 몸에 존재하는 털이나 유두는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무엇이거나, 성적인 의미가 담보된 무엇이거나 둘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인스타그램은 콜린스의 음모가 드러난 사진을 삭제해버렸고, 우리는 설리의 노브라 사진에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콜린스는 여성으로서 “나의 몸을 규범에 맞춰 규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익숙하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되묻는다. “나를 신고한 사람, 내 몸이 역겨운 사람, 내 사진에 ‘끔찍하다’ ‘역겹다’고 댓글을 단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반응을 깊게 해부해보길 바란다. 왜 당신은 그러한 방식으로 느끼고, 이 이미지가 왜 쇼킹하며, 당신은 왜 이 이미지를 참지 못하는가?”라고 말이다. 

여성으로서 가감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콜린스는 이처럼 10대 때부터 카메라를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SNS를 소통의 창구로 사용하면서 많은 젊은 여성 팬을 지닌 아티스트로 성장해왔다. 그녀의 대표사진을 모은 ‘커밍 오브 언 에이지(Coming of An Age)’가  미국 출판사 리졸리(Rizzoli)에서 2017년 출간됐다. 일회용 카메라 또는 미놀타나 니콘의 저가 필름 카메라로 친구들의 일상을 찍기 시작한 그녀는 사진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녀의 사진 속 소녀 혹은 여성들은 우리가 여타 사진에서 익숙하게 마주하는 매끈하고 날씬한 몸매는 아니다. 오히려 살이 옷 사이로 삐죽 튀어나와 있고, 속옷은 아무 데나 던져놓고, 고민과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하다. 콜린스는 미디어가 재현하고 사회가 길들인 모습이 아니라 그녀 혹은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다 진실한 모습을 담고자 했다. 이 때문에 콜린스의 사진은 동시대 사진에서 10대의 시선(teenage gaze) 혹은 여성의 시선(female gaze)을 논의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한다.

콜린스는 2016년 영국 테이트 뮤지엄으로부터 조지아 오키프 전시의 오프닝 영상 작업을 의뢰받아 이를 선보였다. 1887년도에 태어나 1986년에 사망한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는 주로 꽃이나 미국 남서부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테이트 뮤지엄은 오키프 전시 영상을 왜 콜린스에게 의뢰한 것일까?


100년 터울 넘어 교집합 이룬 두 예술가

오키프의 그림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에 비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는 2017년 미국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리빙 모던(Living Modern)’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전시를 관람했다. 이 전시는 오키프의 그림과 그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풍성하게 보여줬는데, 전시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옷들이었다. 이 옷들은 오키프가 ‘모던한 여성’이고 ‘모던한 삶’을 살다 간 선구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도시에서 검정 옷을 통해 강인함을 표현했고, 조지 호숫가에서는 하얀색 원피스로 한적함을 즐겼으며, 뉴멕시코 사막에서는 데님셔츠와 반다나를 즐겨 착용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당대 유명한 남성 사진가들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여성의 자기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테이트 뮤지엄은 100년 넘는 터울이 나는 조지아 오키프와 페트라 콜린스가 그 세월을 뛰어넘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보고, 콜린스에게 전시 영상을 맡겼다. 2분 40초가량 되는 영상은 오키프에게 중요한 장소였던 뉴멕시코의 사막과 뉴욕의 조지 호수를 재현한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파스텔 톤의 신비한 배경에서 여성들은 바람을 느끼고 도마뱀을 마주하고 선인장에 기대어 서 있다. 그리고 오키프의 음성이 반복해서 흘러 나온다. “나는 누군가가 풍경을 그리는 법을 나에게 알려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그들의 풍경을 그리는지를 말해줬을 뿐, 나의 풍경을 그리는 법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었다.” 이어서 영상 속 여성들은 이 오키프의 음성을 따라 말하기 시작한다.

페트라 콜린스의 사진집 ‘Coming of An Age’. 사진 김진영
페트라 콜린스의 사진집 ‘Coming of An Age’. 사진 김진영

여기에 콜린스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의 풍경을 그리는 법, 나의 목소리를 내는 법, 나를 표현하는 법은 다른 사람의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선 나를 통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 말이다. 콜린스는 이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이 영상에서 각 소녀가 그들을 둘러싼 환경과 상호작용하길 바랐다. 그들의 피부, 근육, 뼈 등의 모든 부위를 사용해서 말이다. 나는 그들을 오키프의 풍경 속에 두면서도, 그들이 자기 자신의 풍경을 만들길 바랐다.”

콜린스는 이처럼 사진과 영상을 넘나들며 관객에게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암시한다. 세상에 완벽한 몸도, 완벽한 정신도 없으니 괜찮다고 위안을 주면서.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