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의 바닷가 풍경. 사진 이우석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의 바닷가 풍경. 사진 이우석

예전엔 그랬다. 으레 제주도를 가면 옥돔구이에 된장 뚝배기를 먹고 저녁엔 회를 먹었다. 사실 알고 보면 서울이나 똑같은 공급처(완도)에서 온 전복이고 생선회 역시 비슷한 이력을 지녔지만 굳이 그리했다. 승마장에서 말을 타거나 한라산을 올랐다. 그래서인지 평균적으로 한국인의 제주 추억은(앨범은) 모두 비슷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법이 천차만별이다.

중장년에겐 신혼여행지, 청년층에겐 수학여행지로 각인됐던 제주도 여행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볍게 떠날 수 있는 휴식여행지로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저비용 항공편과 호텔·리조트 등 숙박 시설이 크게 늘어난 덕이다.

또 골프나 산행, 낚시 등 관심사가 아니더라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마음 가볍게 떠날 수 있어 좋다. 어느새 제주도는 ‘힐링의 섬’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국내 1위 관광지로 꼽히는 제주도를 여행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여름 시즌에 맞춰선 역시 ‘휴식과 보양’이 어울린다. 다행히도 제주에는 아늑한 휴식처와 맛있는 음식이 즐비하다.

제주도 카페투어는 젊은 여행자들의 필수코스처럼 자리매김했다. 멀리 제주에 있는 카페가 서울 사람들에겐 도심 직장가에 있는 곳보다 더 알려졌다.

제주도에는 사방팔방 근사한 카페들이 많이 생겨났다. 특히 젊은층이 많이 찾는 구좌읍 월정리와 평대리 부근에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이 활짝 열린 카페와 레스토랑이 빼곡하다. 돌담을 두른 옛집을 개조해 멋을 살린 근사한 카페·레스토랑은 전 세계를 통틀어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

예술적 감각에 진정성 있는 장인정신이 곁들여졌다. 맛 좋은 요리와 입을 뗄 수 없는 디저트를 잘도 만들어낸다. 그것도 당근과 망고 등 제주산 식재료를 사용해 ‘정체성’을 살렸다.

당근케이크와 드립커피, 전복을 넣은 김밥, 문어덮밥 등은 오직 제주에서만 제대로 맛볼 수 있는 희귀 아이템으로 입소문이 났다. 비슷한 것이 도시에도 있지만 느낌이 다르다. 파란 하늘을 닮은 바다와 손으로 쌓은 현무암 돌담이 콘크리트 서울에는 없기 때문이다. 구좌상회와 해맞이카페, 카페 조르바 등이 그런 곳이다.

구좌상회는 전통가옥을 개조한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맛보는 당근케이크와 커피로 유명한 곳이다. 일본 유후인에서 전통적이고 고즈넉한 카페의 매력을 느껴본 이라면 분명히 이곳도 마음에 들 듯하다. 도시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신선한 공기와 함께 들이켜 보면 처음 느껴보는 커피향이 난다.

술집은 또 어떤가. 모두 한 방향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루프톱 카페에 올라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자면 멀리 지중해와 인도양으로 떠난 휴가가 부럽지 않다.

카덴 제주의 흑돼지 야키소바. 사진 이우석
카덴 제주의 흑돼지 야키소바. 사진 이우석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이자카야(居酒屋·일식주점) ‘카덴’도 함덕해변에 팝업 레스토랑 ‘카덴 제주’를 냈다. 정호영 셰프가 세팅한 제주산 흑돼지 야키소바와 등갈비 튀김, 옥수수 카키아게 등 맛난 안주를 수평선이 보이는 언덕 위에 차려낸다. 휴가 기간에만 한다.

중문에 위치한 ‘고집 돌우럭’은 이름처럼 횟감용 우럭을 그대로 칼칼한 양념에 쪄낸 우럭찜을 하는 곳이다. 횟감을 찌다니… 역시 제주 바다는 보고임에 틀림없다. 서울에선 언감생심 먹기 힘든 요리다. 마찬가지로 모슬포 항에는 제주 광어로 튀겨낸 피시앤드칩스와 수제맥주를 즐길 수 있는 글라글라 하와이 카페가 있어 여행의 밤을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다.

제주시와 가까운 ‘핫’한 카페들은 월정리를 떠나, 평대리로 많이 옮겨 갔다. 바닷가뿐 아니라 산간에도 수많은 명소들이 있다. ‘숨은그림찾기’ 하듯 하나씩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머리도 몸도 쉬어간다면 제주도는 ‘현대인의 피난처’ 구실을 제대로 하는 셈이다. 제주도는 무더위나 폭우, 태풍을 피해갈 수 있는 많은 실내 시설이 있다. 박물관에 가면 이성과 감성을 충전할 수 있다. 지난해 개보수한 국립제주박물관은 물론 항공우주박물관, 제주평화박물관, 넥슨컴퓨터박물관, 초콜릿박물관, 자동차박물관 등 다양한 테마의 박물관이 있다.

복잡한 이야기 필요 없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재미난 박물관도 있다. 중문단지 입구 ‘박물관은 살아있다’엔 공간적인 트릭아트(착시 미술)와 가상현실(VR) 기술을 이용한 재미난 전시물이 한가득이다. 명화와 영화 장면을 옮겨놓아 직접 재미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품들이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 특히 최근 새로 선보인 ‘백작의 방’은 다른 곳에서 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제주 현지 작가가 참여한 ‘중문동 갤러리’는 문화감성 충전으로 힐링여행에 영양가를 더한다.

해발 120m의 한경면 저지리는 제주 예술의 성지로 꼽힌다. 예술인들이 모여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제주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야외전시장, 갤러리 등이 있어 산책하며 마을 곳곳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쉴 수 있다. ‘아름다운 숲’ 전국 대상을 받은 저지오름에선 마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성의 충전, 신체의 힐링

구경도 좋지만 몸도 쉬어야 한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제주 자연의 이점을 최적화한 곳이 바로 ‘수(水)치료’ 시설로 유명한 WE호텔이다. 여타 다른 특급호텔과는 달리 바닷가가 아닌 한라산 중산간에 위치했다. 해발 350m에서 신선한 공기를 늘상 공급받는 WE호텔은 제주도 최대 종합병원인 한라병원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에선 화산암반수를 이용한 ‘하이드로 테라피’ 프로그램으로 심신을 쉬어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수중으로 음향이 전달되는 온수풀에서 간단한 부력 장비를 이용해 둥둥 떠다니며 마사지를 받는다. 독일에서 도입한 프로그램이다. 시스템뿐만 아닌 전문 테라피스트가 곁에서 함께 진행한다.

무더위가 절정인 시기인 만큼 한라산과 오름 산행 대신 숲길을 걷는 것이 좋다. 사려니숲길과 곶자왈 트레킹은 여름철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선흘 동백동산은 제주의 자연 습지 생태를 탐방할 수 있는 곳이다. 곳곳에 소(沼)와 웅덩이가 있고 희귀 난대 식물도 자생하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습지센터에서 숲길을 따라 가면 먼물깍 습지가 나온다. 매일 두 차례 자연환경해설사가 인솔하는 투어도 있다.

수령 500∼800년의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제주 비자림, 총연장 5㎞의 현무암 미로를 품은 미로테마파크 메이즈랜드 등도 둘러볼 만하다. 인근에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지형의 성산일출봉이 있다.

여름날의 제주 생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15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