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젊은 날 지중해의 풍경을 음미하며 감성이 더욱 깊어졌다.
프랑스 출신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젊은 날 지중해의 풍경을 음미하며 감성이 더욱 깊어졌다.

지중해의 영감
장 그르니에|김화영 옮김|이른비
1만5000원|238쪽

장 그르니에(1898~1971년)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성장기엔 주로 북서부 해안 브르타뉴 지방에서 살았다. 그는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의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만 거주하며 철학자가 됐지만, 곧이어 남부 프랑스의 아비뇽, 북부 아프리카의 알제리, 이탈리아의 나폴리를 떠돌며 철학을 가르쳤다. 젊은 날에 낯선 지중해 지역을 깊이 음미하면서 감성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르니에는 알제리 고교에서 철학 교사를 할 때 장차 노벨문학상을 받을 학생을 만났다.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1913~60년)가 그 학생이었다. 카뮈는 나중에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에 서문을 썼다. “이십 년이 넘도록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다. 오늘에 와서도 나는 ‘섬’ 속에, 혹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들 속에 있는 말들을 마치 나 자신의 것이기나 한 것처럼 쓰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나는 그런 일을 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 같은 행운이 온 것을 기뻐할 뿐이다.”


‘진리’와 ‘행복’을 떠올리게 하는 지중해

카뮈의 헌사는 그리니에가 카뮈에게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 스승의 그늘 속에서 그 제자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그 글을 두고 표절 운운을 떠올리는 영혼은 천박한 것이다. 알제리에서 나고 자란 카뮈는 스스로를 지중해의 인간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관념론이 지배한 유럽 대륙 철학에 거리감을 보였고, 작렬하는 지중해의 태양처럼 그 모든 이분법적 대립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정오의 사상’을 지향했다. 카뮈의 문학을 빚어낸 지중해는 그르니에한테도 온갖 영감을 불어넣었다.

“사람들 저마다에게는 행복을 위하여 미리부터 정해진 장소들이, 활짝 피어날 수 있고 단순한 삶의 즐거움을 넘어 황홀에 가까운 어떤 기쁨을 맛볼수 있는 풍경들이 존재한다. (중략) 지중해는 그 특유의 선들과 형태들이 주는 강렬한 인상으로 진리를 행복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곳에서는 빛의 도취경 그 자체가 명상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그르니에는 북아프리카의 카스바에서 수많은 나날을 보냈다. “모르는 사이에 날빛이 푸른색 타일들의 색깔에서 노란색 타일들 색깔로 변해가도 그들에게는 하루의 시간이 그냥 그대로 멈추어 있다. 나는 식물들의 삶처럼 그렇게 늘어져 느리게 흐르는 삶이 무엇보다도 시(詩)에 어울린다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르니에는 풍광이 아름답다는 튀니지의 작은 항구 시디부사이드에서 밤을 맞은 뒤 이렇게 썼다. “바다의 태평스러운 무심함. 느긋하게 떠올라 저의 제국을 품에 넣는 장엄한 달빛. 가장 일반적이되 가장 모호하지 않은 표현이 ‘위대함’과 ‘정확함’으로 가득 찬 이 광경에 잘 어울릴 것이다. 지중해의 정의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마치 어린아이가 단 하나의 그림으로 한 세계를 만들 듯이 영원을 암시하는 어떤 간결함 그리고 우리의 눈 아래서 기지개를 켜며 호수와 만 사이의 케레딘과 막수라- 해안가를 따라 자리한 두 도시-를 하나로 잇는 저 흰 해안은 이 순수함에 좀 지나치게 여성적인 매력을, 오리엔트의 냄새가 풍기는 꿀맛 같은 것을 보탠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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