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의 중앙 광장인 그랑플라스. 유럽연합 본부가 있어 유럽의 수도로 불리는 브뤼셀은 세계 3대 콩쿠르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브뤼셀의 중앙 광장인 그랑플라스. 유럽연합 본부가 있어 유럽의 수도로 불리는 브뤼셀은 세계 3대 콩쿠르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수제 초콜릿, 와플, 맥주, 홍합 요리, 르네 마그리트, 오줌싸개 동상 등 벨기에 하면 떠오르는 명물이 참 많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은 시내 중심부에 아름다운 그랑플라스 광장이 자리하고 있어 종종 TV 여행 프로그램에 소개돼 많은 이들이 찾는 여행지다. 또 현재 유럽연합(EU) 본부의 거점으로, 유럽의 수도로 불린다.

4월이 되면 브뤼셀은 5월에 열리는 국제 행사 준비로 바빠진다. 유럽연합 본부의 중요한 회의도, 박람회, 스포츠 경기도 아닌 바로 퀸 엘리자베스 국제 음악 콩쿠르가 열리기 때문이다. 길거리 곳곳에는 콩쿠르 깃발이 나부끼고 건물 곳곳에는 콩쿠르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으며 콩쿠르 참관 티켓을 사려는 이들로 브뤼셀 시내 곳곳이 북적인다. 공항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은 악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보면 콩쿠르 참가자냐고 물어보며 따뜻하게 환영 인사를 건넨다.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최종 심사가 열리는 브뤼셀의 팔레 데 보자르 예술센터. 사진 플리커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최종 심사가 열리는 브뤼셀의 팔레 데 보자르 예술센터. 사진 플리커

올해로 81주년을 맞는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는 폴란드의 쇼팽 국제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국제 콩쿠르로 알려져 있다. 우승과 동시에 전 세계 수많은 연주장, 연주단체의 러브콜과 더불어 연주자로서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출발점이기에 많은 음악학도가 늘 도전하려 애쓰는 콩쿠르이기도 하다. 이 콩쿠르를 처음 기획한 사람은 벨기에 출신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Eugène Ysaÿe)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할 위기가 닥치자 평소에 그의 예술을 아끼고 후원했던 당시 벨기에의 왕비 엘리자베스 폰 비텔스바흐가 그를 기리기 위해 1937년 이 콩쿠르를 창설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의 이름을 따 외젠 이자이 콩쿠르로 바이올린, 피아노 두 부문으로 시작됐으나 제2차세계대전의 여파로 콩쿠르는 10년이 지난 1951년 피아노, 바이올린, 작곡 세 부문으로 다시 열렸다. 이후 성악, 최근에 첼로 부문이 각각 추가되는 등 콩쿠르는 점점 확장되는 추세다.

콩쿠르 역대 수상자들을 보면 걸출한 음악가를 참으로 많이 배출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이올린 부문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레오니드 코간을 비롯해 피아노 부문의 에밀 길레스,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등 현재도 대가로 칭송받는 이들이 이 콩쿠르 출신이다. 최근 성악 부문에서는 황수미,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임지영 등 자랑스러운 한국 연주자들도 이름을 올렸다. 3~4주간에 걸쳐 진행되는 콩쿠르에서 참가자들은 바로크부터 현대에 걸친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는데, 그들의 떨리는 호흡, 손동작 하나하나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기도 한다.

이 콩쿠르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결선이다. 12명의 결선자를 결선 심사가 열리기 일주일 전 샤펠 헨느 엘리자베스(Chapelle Reine Elizabeth)라는 곳에 불러모아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결선 무대를 위해 특별히 위촉된 협주곡을 발표한다고 한다. 몇 년 전 이 콩쿠르 피아노 부문 준우승을 차지했던 한 프랑스 피아니스트는 일주일 동안 새 곡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에 12시간 연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휴대전화도 없이 외부 세계와의 단절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곡이 너무 어려워 연습만 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말했다.


유럽 음악 정체성 확립한 곳으로 평가

브뤼셀은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뿐 아니라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샤를 드 베리오(Charles Auguste de Bériot)를 필두로 그의 제자 앙리 비외탕(Henri François Joseph Vieuxtemps), 외젠 이자이로 이어지는 명바이올리니스트를 통해 프랑스-벨기에 바이올린 악파가 완성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들의 비르투오시티(거장적 화려함)가 가득한 작품은 현재도 많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도전적인 곡이자 필수 레퍼토리다.

또 브뤼셀은 과거 중세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 벨기에 북부 플랑드르 지방의 주요 도시로서 상공업, 무역 등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에 속했다. 이런 경제력과 안정된 정치를 바탕으로 프랑코-플레미시(플랑드르) 음악 악파가 성립돼 현재 우리가 고전 음악이라 부르는 유럽 지역 음악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역사 학자들은 평가하기도 한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명바이올리니스트 배출한 벨기에의 음악

외젠 이자이
바이올린을 위한 6개의 독주 소나타 Op. 27

평소에 존경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탐구하던 중 그의 ‘첼로를 위한 6개의 무반주 모음곡’에 영향을 받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바흐의 선율을 차용한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한다. 곡의 음악적 표현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매우 다루기 까다로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6곡은 모두 당시 이자이가 아끼고 존경하던 동료 바이올리니스트 6명에게 각각 헌정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75주년 기념 음반

2012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출시한 음반. 기돈 크레머, 바딤 레핀 등 현재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기성 연주자들의 협연뿐 아니라 역대 주요 우승, 입상자들의 콩쿠르 연주를 들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