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돈을 지불해 고통스러웠더라도 막상 여행지에 간 신혼부부는 주어진 모든 것들이 공짜인 것처럼 행복하게 즐길 수 있다.
큰돈을 지불해 고통스러웠더라도 막상 여행지에 간 신혼부부는 주어진 모든 것들이 공짜인 것처럼 행복하게 즐길 수 있다.

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
댄 애리얼리·제프 크라이슬러|이경식 옮김 청림출판
1만8000원|444쪽

‘어떤 사람들은 1만달러나 들여 여행을 가면서도 무료 주차장을 찾느라 날마다 20분씩 허비한다.’

‘매출이 전혀 없는 신생 기술 기업에 대한 평가액이 수억달러 혹은 심지어 수십억달러나 하는데, 이런 기업들이 나중에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사라질 때 우리는 깜짝 놀란다.’

책은 초반부터 노골적이다. 사람들은 이성적이지 않다고, 그래서 늘 돈을 쓰고 후회한다고 말이다. 왜 그럴까. 실수를 좋아해서도, 자해적 성향이 있어서도 아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돈을 지불할 때 대가로 정확히 얼마를 지불하는 게 합당한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온갖 기묘한 속임수를 동원해 지갑을 털어간다. 책은 바로 돈과 관련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잘못된 곳으로 유도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해야 조금이나마 돈과 관련된 의사 결정을 할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돈 쓰는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사람들

‘지불의 고통(pain of pay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말 그대로 뭔가를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할 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고통을 뜻한다. 최근 뇌영상과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한 여러 연구 결과는 돈을 지출하는 행위가 신체적인 고통을 처리하는 뇌 영역을 실제로 자극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지불의 고통은 당연히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지출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옳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고통을 종식시키는 대신에 신용카드 같은 여러 금융 서비스의 도움을 받아 그 고통을 누그러뜨릴 여러 방법을 고안해낸다. 지불의 고통은 주로 지불하는 시점과 이를 소비하는 시점의 시간적 간극을 통해 해결된다. 선불(先拂)의 마법도 그렇다. 예를 들어 신혼여행 경비를 미리 지불했다고 해보자. 큰돈을 한꺼번에 내야 했을 때 이 예비 부부는 지불의 고통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이 신혼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지불의 고통은 먼 과거의 일이 돼 버린다. 모든 경험과 즐거움과 술이 공짜로 느껴진다. 비용 지불에 대한 의사 결정이 이미 끝난 뒤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품이 ‘세일 중’일 때 사람들은 해당 상품에 똑같은 가격표가 붙어 있어도 정상가격일 때보다 빠르게 행동한다. 상품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너무도 어렵기 때문에 어떤 상품이 세일 중이라고 하면, 그 세일 가격을 바탕으로 손쉽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지불의 고통과 가격 할인 등 잘못된 의사 결정을 부르는 개념이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 설명돼 있어 재밌게 읽히면서도 뜨끔하다.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경력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처럼 꼭 돈과 관련된 의사 결정 문제가 아니어도 적용해볼 법하다.


‘세 가지 V’를 되새기라
굿 퀘스천
아와즈 교이치로|장미화 옮김|이새
1만3500원|208쪽

좋은 질문이 좋은 대화를 이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여 명의 대기업 경영자를 코칭하며 ‘질문 고수’로 불리는 저자는 좋은 질문을 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 V’에서 질문의 단서를 찾는 방법을 권한다. 첫 번째 V는 비전(Vision)이다. 그 사람이 지향하는 상태, 정말 이루고 싶은 것, 진심으로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수집하라는 것이다. 그다음은 밸류(Value)다. 그 사람이 어떤 것을 판단할 때 중요시하는 가치관에 대해서 알아봐야 한다. 마지막은 보캐뷸러리(Vocabulary·어휘)다. 그 사람이 평소 대화할 때나 질문·대답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거꾸로 좋은 질문을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세 가지 V를 통해 상대에 대한 키워드가 충분히 수집됐다면, 의문사(5W1H)를 조합해 구체적인 질문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자주 쓰지 않는 의문사를 찾아내거나 세 가지 V 키워드 중 두 개 이상을 써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거보다는 미래에 관한 것을 묻는 질문, 폐쇄형보다는 개방형 질문이 좋은 질문이 될 확률이 높다는 조언도 유용하다.


노년을 사유하고, 기대하고, 맞이하는 법
나이 든 채로 산다는 것
박홍순|웨일북
1만4000원|288쪽

“자기 생존의 무의미함과 비참함을 느끼지 않고서는 계속 살아나갈 수 없는 때가 머지않아 닥쳐올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는 ‘인생론’에서 노년에 접어든 인간이 일반적으로 겪는 심적 고통을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에서 노인을 둘러싼 논의는 주로 통계적 차원이나 부양 문제에 머물고 있다. 미술작품을 통해 철학적·사회적 의미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해 온 저자는 책에서 이중섭, 박수근을 비롯한 유수의 한국 화가들과 고야, 렘브란트, 고흐 등 친숙한 외국 화가들의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노년에 관한 메시지를 던진다. 박수근 특유의 그림 질감에서 퇴락한 노인의 신세를 투영하는 식이다.

책은 노인의 비참한 상태를 사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의미 있는 노년을 이어갈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한 예로 저자는 노인의 성이 추하고 부끄러운 것이란 기존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도 성적 대화를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쾌감을 느끼고 설렘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살아온 세월만큼 다양한 상상력의 소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적합한 방법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산증인들이 말하는 실리콘밸리 역사
천재들의 밸리
아담 피셔|트웰브
30달러|512쪽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등 미국 실리콘밸리 공룡들의 신화에 관한 책은 넘친다. 천재들의 밸리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우선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의 원조격인 제록스부터 현재의 거대 기업들까지 모든 기업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5년여에 걸쳐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종사했거나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약 200명을 인터뷰 한 점도 차별점이다. 그래서 한 챕터에 최소 10명에서 수십 명의 목소리가 녹아들어 있다. 혹자들은 이런 구술에 의존한 역사 정리를 엄밀한 의미에서의 역사로 보기 어려우며, 마치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는 칵테일 파티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정신없는 책이란 비판도 한다.

저자는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사업과 돈에 관한 이야기보다 이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배경과 의지, 저항정신, 투쟁에 집중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담으면서 낸 저자의 결론은 실리콘밸리의 혁신은 계획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운과 타이밍이, 그리고 천재가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컴퓨터·인터넷의 초창기부터 웹의 전성시대까지 다양한 기술 변천에 대해 짚어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