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붐비는 서울 홍익대 주변 거리. 홍대 상권의 확장으로 망원역과 상수역, 공덕역과 삼각지역까지 상업화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 홍익대 주변 거리. 홍대 상권의 확장으로 망원역과 상수역, 공덕역과 삼각지역까지 상업화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젊은이들 사이에서 6호선 라인은 ‘노는 라인’으로 여겨진다. 홍대입구역 클럽에서 놀다가 이태원으로 이동할 때 6호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6호선 지하철역의 상업화는 매우 빠르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홍대입구역과 이태원역이 대표적이었으나, 홍대 상권의 확장으로 망원역과 상수역 그리고 공덕역과 삼각지역까지 상업화가 이뤄지고 있다. 또 약수역 고가차도 철거 후, 약수역과 청구역 주변에 재미있는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특히 6호선 라인, 특히 삼각지역부터 이태원역을 거쳐 약수역까지의 구간은 나름의 역사성을 갖고 있다. 해당 구간은 일제에 의해 1930년대 건설된 남산주회도로와 정확히 일치하는데, 남산주회도로 추진 배경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1920년 이후 경성의 인구는 크게 늘었다.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 역시 빠르게 증가했다. 따라서, 일제는 경성 소재 일본인 증가로 경성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이 일환으로 지난 연재에서 설명했듯이 조선인 거주지인 북촌 지역에 일본인 주거지를 확보하려는 계획과 경성 주변 지역에 신도시(뉴타운)를 건설하는 전략을 세웠다.

특히 경성 외곽 신도시 개발이 193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됐는데, 이 계획은 서구의 도시계획이론 중 에버에저 하워드의 전원도시이론(Green City)을 바탕으로 한다. 논외의 이야기이나, 전원도시이론은 우리나라의 분당, 일산 신도시 개발과 같은 신도시 계획에 그대로 차용됐는데, 전 세계 신도시 개발 시 참고하는 이론이다. 해당 이론의 핵심은 대도시권의 중심 도시가 인구 증가로 도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중심 도시의 외곽 지역 즉 전원 지역에 새로운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기존 중심 도시와 신도시를 빠른 대중교통망으로 연결하고 여러 신도시를 환상형 도로망으로 연결하는 계획이다.

1937년 일제는 대경성권역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는 수원, 인천, 김포, 개성, 의정부, 춘천, 이천, 김양장 등 경성 주변 8개 도시를 전원도시(신도시)로 개발하는 것이었다. 경성과 주변 8개 도시를 경성의 남대문과 동대문, 광희문을 포함한 6개 문에서 시작해 방사형 도로로 연결하고, 8개 도시를 환상형 도로로 서로 연결하는 것으로 하워드의 전원도시이론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었다.

일제는 거대 담론 차원의 논의뿐 아니라, 더 작은 공간 단위 계획과 개발을 진행했다. 경성의 빈 공간과 외곽 지역에 나름 거대한 주택단지를 개발한 것이다. 이 주택단지는 문화주택단지라 불렸는데, 서양식 주택들이 가득 찬 단지로 중상층 이상 계층이 거주할 수 있는 일본인 집중 주거 지역이었다.

문화주택단지는 1920년대 중반부터 경성 동부와 서남부 지역에 대규모로 조성됐다. 경성 동부 지역에는 혜화동과 신당동, 장충동 지역이 대표적인데, 지리적으로 연접한 신당동·장충동 일대는 대략 13만2000㎡(4만 평) 규모의 문화주택단지가 조성됐다.

아래 지도를 보면 경성외곽 소재 문화주택단지들이 대중교통망을 따라 개발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경성 남부(후암동–용산 일대)와 경성 남동부(신당동-왕십리 일대)에 집중적으로 건설됐다. 이 두 지역은 이미 경성 중심부와 대중교통망으로 연결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 두 지역 간 연계는 1930년대 중반 이전에는 이뤄지지 않았다. 남대문 일대는 이미 19세기 후반 이후 일본인의 세력권에 포함됐고 용산에는 거대한 일본군 기지(현재의 미군 기지)가 포진해 있었다. 남대문에서 용산 삼각지에 이르는 거대한 부지는 일본인 베이스캠프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기존의 세력권인 용산 일대와 새롭게 일본인 타운으로 조성된 신당동 일대를 잇는 계획이 필요했고, 이것이 공간상에 표출된 것이 남산주회도로다.

일부 신문에서는 남산주회도로가 완공되면 이상적 드라이브 웨이(리상적 뜨라이쁘웨이)가 탄생할 것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대경성 중심의 위성도시 계획(왼쪽)과 에베네저 하워드의 가든시티(Garden City) 개념도. 사진 매일신보·Garden Cities of Tomorrow
대경성 중심의 위성도시 계획(왼쪽)과 에베네저 하워드의 가든시티(Garden City) 개념도. 사진 매일신보·Garden Cities of Tomorrow

조선인에게는 청계천 문제가 더 시급

그런데 당시 경성 시내 청계천 북쪽 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인에게는 시급한 과제가 많았다. 1930년대 중반, 청계천 일대는 하수 처리가 잘되지 않아 오·폐물이 섞여 흘러 위생 문제가 심각했다. 따라서 조선인에게는 조선인 주택 부족 문제 해결 이외에도 위생 등 실질 생활과 밀접한 이슈들이 있었다. 조선인의 눈에는 청계천과 하수구 등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대신, 당시로써는 거금인 70여만원을 들여 남산주회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자신들과 무관한 문제였다.

이 연장선에서 몽양 여운형은 아래와 같이 비판했다. “남산주회도로를 위해서는 칠십오만원의 기채(起債)를 하여 3년간 계속 사업을 행한다 하였으나, 전염병의 발원지인 하수구와 청계천을 위해서는 시급한 문제임에도 기채한 바 없으니 (중략) 중대한 안건인 청계천 문제는 제쳐놓고 인구가 희소하고 교통이 적은 남산에도 주회도로를 만든다는 것이 무슨 괴태(傀態)인가?” (‘남산의 주회도로가 무엇이 위급한가? 그보다는 청계천 개수가 급무’ 조선중앙일보 1936년 3월 14일)


▒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저서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