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
영업시간 10:00~23:30
대표메뉴 화덕 벽에 척척 붙여 구워 불맛이 배어 있는 ‘삼사’

사마리칸트
영업시간 11:00~23:00
대표메뉴 상큼한 생양파가 올라간 꼬치구이 ‘샤슬릭’

러시아 수퍼마켓 임페리아
대표메뉴 커피와 함께 즐기는 러시안 팬케이크


하늘씨에게. 사람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네요. 2008년, 우리 처음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을 때 이렇게 연이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게 벌써 몇 년 전인가요.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네요. 소셜미디어 덕분인지 지나간 시간에 비해 왠지 자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여하튼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군요. 행여나 궁금해 하실까 봐, 저는 매우 잘 지냅니다. 전역을 코앞에 뒀거든요. 이런 행복한 마당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이제 무더위가 본격 시작이라는데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길. 2013년 8월, 이랑.

5년 전 오늘, 전역을 앞둔 이랑으로부터 집으로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군납용 건빵 두 봉지와 편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곧은 글씨로 써 내려간 안부 인사와 ‘건빵 더 맛있게 먹는 법’, 그것은 건빵 속 별사탕에 비길 데 없이 반갑고 달콤했다. 그의 편지엔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의 벅찬 기쁨, 청년의 풋풋한 수줍음, 막냇동생 같은 살가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편지를 한줄 한줄 읽어 내려가며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까무잡잡한 피부, 짙은 쌍꺼풀의 눈, 뭉툭한 콧날, 선이 분명한 입술. 이국적인 외모의 얼굴이 또렷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선명한 것은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똘똘한 눈빛이었다. 그 맑고 따뜻한 눈빛의 여운은 기억 속에서도 변함없이 반짝거렸다. 2018년 여름, 다시 그에게 연락이 왔다. “하늘씨, 잘 지내요? 우리 밥 먹어요.”

이랑을 만나기로 한 곳은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빠져 나오니 ‘여기는 동대문 실크로드입니다’ 라고 쓰인 나무 표지판이 나를 반겼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키가 좀 더 큰 것 같았고 나머지는 모두 여전했다. 빠른 걸음으로 자신 있게 나를 골목으로 이끌었다. 러시아어가 새겨진 은행 간판, 휴대전화 가게, 수퍼마켓 등 골목을 파고들면 들수록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동대문 시장과 가까워 관광객으로 붐빌 만도 한데 골목마다 물건을 나르는 보따리상들과 탁송회사 직원들이 눈에 더 많이 띄었다. 외국인들의 삶의 현장에 있으니 이방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더 좁고 낮은 골목에 들어서니 ‘사마르칸트’ ‘사마리칸트’ ‘사마리칸트 시티’ 등 같은 듯 다른 상호의 간판을 내건 우즈베키스탄 식당이 들어서 있고, 저마다 입구에서 호객을 했다. 이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사마르칸트에서 맛본 고기가 들어간 빵, ‘삼사’. 사진 김하늘
사마르칸트에서 맛본 고기가 들어간 빵, ‘삼사’. 사진 김하늘

그가 들어간 곳은 ‘사마르칸트’. 2003년에 문을 연 우즈베키스탄 식당이다. 이랑은 꽤 오래전부터 물담배를 피거나 양고기를 먹으러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받아 들고 내게 이것저것을 추천했다. 양고기 꼬치 ‘샤슬릭’, 양고기가 들어간 빵 ‘삼사’, 소고기 수프 ‘보르쉬’, ‘러시안 허니케이크’와 우즈베키스탄 맥주까지 꼼꼼하고 능숙하게 주문을 마쳤다. 그제서야 찬물로 목을 축이고 안부를 전했다.


쿰쿰한 향과 향신료의 와일드한 조합

“공부하러 영국으로 떠나요. 가기 전에 꼭 만나야 할 것 같아서 연락 드렸어요.” 그가 내게 선물해준 추억 상자 덕분인지 자주 교류하지 않지만 늘 각별하다. 그도 그런 것 같았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길고 커다란 꼬치에 꽂아 나오는 ‘샤슬릭’은 큼지막한 양의 살코기를 씹으며 피어 오르는 쿰쿰한 향과 향신료의 조합이 와일드하다. 양고기를 우적우적 씹다가 기본으로 나오는 시큼한 당근 샐러드와 고춧가루가 들어간 양배추 절임을 집어먹으니 금세 입안이 개운해지는데, 낯설지만 익숙한 맛이 생채나 장아찌를 닮았다. 

맥주로 입을 헹구고 온기가 남아있는 ‘삼사’를 후후 불어 이로 자르면 묵직한 고기와 뭉근한 크림의 향이 쏟아진다. 소고기나 양고기, 양배추, 크림, 우유를 섞어 만든 속을 페스트리 반죽으로 감싸서 2시간 예열한 화덕 벽에 척척 붙여 구워 불맛이 배어 있는 삼사는 최고 인기 메뉴다. 깊고 높은 그릇에 자줏빛 국물이 찰랑찰랑 담겨 나오는 보르쉬는 오묘하다. 수프 위에 얹혀진 사워 크림을 휘휘 젓고, 큼직한 비트를 숟가락으로 설컹 잘라 한 입 넣으면 몸이 후끈해지고 땀이 삐질 흐른다. 들어간 재료에 비해 무겁지 않고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식사를 한 것뿐인데 열이 한껏 올라 운동이라도 한 것 같다. 

맥주로 입안을 씻는다. 포크 끝을 냅킨으로 닦아낸다. 러시안 허니케이크를 먹기 위해서다. 이 메뉴를 제외한 모든 메뉴는 우즈베키스탄 요리사가 만들고, 오직 이 케이크만 러시아 사람이 만든다. 맛은 충격적이다. 달다. 무지막지하게 달다. 하지만 폭력적이지 않다. 초코파이를 으깨고 뭉친 것에 꿀을 더한 맛이다. 커피가 필요하다.

사마리 골목을 빠져 나와 근처 러시아 수퍼마켓 ‘임페리아’로 향했다. 정어리와 고등어 절임부터 보드카, 다양한 러시아 공산품과 냉동 식품이 구비된 매대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빵과 음식, 커피와 차를 사서 먹을 수 있는 푸드코트가 있었다. 러시아인 직원에게 러시안 팬케이크와 블랙티, 커피를 주문했다. 러시안 팬케이크는 과일 잼이나 사워 크림에 찍어 먹는 식이다. 주문한 차가 나오고, 블랙티에 넣어 먹는 설탕과 레몬, 그리고 서비스로 설탕이 묻은 레몬 젤리가 테이블 위에 올랐다. 세련되지 못하다기보다 기교가 없으며, 단순하다기보다 투박한 러시안 디저트에 서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이랑은 런던으로 간다고 했다. 5년 뒤에 올 거라고 했다. 10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만남이 5년 뒤 선물 상자가 돼 날아왔고 5년이 지난 오늘, 또 다른 5년 후를 기약했다. 또 만납시다. 그 눈빛 잃지 마시고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길. 2018년 8월, 하늘.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