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미즈락의 사진집 ‘The Mysterious Opacity of Other Beings’. 사진 김진영
리처드 미즈락의 사진집 ‘The Mysterious Opacity of Other Beings’. 사진 김진영

어느 바다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따라 파도 없는 바다에 서핑을 하러 들어간 적이 있었다. 파도를 기다리다 지쳐, 눈을 감고 서핑 보드에 잠시 누워 잔잔한 물결 위에 몸을 맡겼다. 그때, 정말 잠시 막연하게나마 죽어도 여한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이런 것일까 생각했다.

미국 사진가 리처드 미즈락의 사진집 ‘다른 존재들이 갖는 미스터리한 불투명함(The Mysterious Opacity of Other Beings)’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바다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대체로 팔이나 다리를 펴서 몸을 이완시키고 있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에메랄드 빛 바다 위에 떠 있는 이들은 매우 평온해 보인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든 시점을 통틀어 ‘하이 앵글’이라고 한다면, 그 가운데 매우 높은 곳, 이를테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은 새의 시선을 닮았다 해서 ‘버드 아이 뷰’라고 부른다. 오늘날 버드 아이 뷰를 가장 손쉽게 촬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계는 드론일 테지만, 드론 이전에도 버드 아이 뷰 사진은 존재했다.

그레이 말린은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해변을 패턴처럼 장식하는 파라솔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그보다 이전에는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 경비행기를 타고, 1858년에 프랑스 사진가 나다르는 기구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 처음으로 새의 시선으로 사진을 찍는 데에 성공했다.

리처드 미즈락은 기구, 비행기, 헬리콥터, 드론 등과 같이 땅에서 뜨는 비행기구 없이 버드 아이 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것은 또 다른 현대기술의 집적물 덕분이었는데, 바로 고층건물이다. 이 사진집의 모든 사진은 놀랍게도 하와이 호놀룰루의 한 고층 호텔 발코니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됐다.

고층건물은 사실 오늘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위험하게 기구를 타거나, 비싼 경비를 들여 헬리콥터나 경비행기를 빌리지 않고서도 초고층빌딩에서 우리는 버드 아이 뷰로 세상을 볼 수 있다. 리처드 미즈락의 촬영 방법이 새삼 놀라운 이유는 아마 우리가 익숙해지고 무뎌진 공간을 활용해 촬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촬영된 사진들이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사진집에 담겨 있다. 그것은 바로 같은 사진을 확대의 정도만 달리한 채 반복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이 사진집의 오른쪽 페이지에는 망망대해로 느껴지는 바다와 바다에 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오른쪽 페이지를 보고 있으면, 바다와 사람 모두가 사진의 주인공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왼쪽 페이지에는 오른쪽 페이지에 실린 사진과 동일한 사진이 보다 확대돼 실려 있다. 오른쪽 페이지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세, 얼굴 생김새, 표정 등이 드러나는 것이다. 어떠한 감정도 실리지 않은 듯한 표정이나 잠을 자는 듯한 얼굴이 눈에 띈다. 왼쪽 페이지의 주인공은 바다가 아니라 바로 바다에 떠 있는 사람이다.

왼쪽과 오른쪽에 같은 사진을 실은 사진집. 이러한 방식을 단순히 중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이 방식이 유발하는 감상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동일한 시점에서 동일한 종류의 대상을 찍은 사진만 그저 나열됐다면, 보는 이는 자연스레 이들을 상호 비교하고, 이로부터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했을 것이다. 즉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비교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이 사진집은 같은 장면을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보게 만든다. 사진집을 보는 나의 시선은 마치 카메라에 달린 줌렌즈처럼 대상을 멀리서 보았다 가까이에서 보았다를 반복한다. 리처드 미즈락은 왜 이런 구성 방식을 선택했을까.


리처드 미즈락의 사진집 ‘The Mysterious Opacity of Other Beings’. 사진 김진영
리처드 미즈락의 사진집 ‘The Mysterious Opacity of Other Beings’. 사진 김진영

삶과 죽음의 기묘한 경계 함축

리처드 미즈락은 이 사진 작업과 관련해, 바다에 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2001년 미국 9·11 테러 당시 고층건물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서로 닮아 보였다고 말한 바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공중에서 떨어지는 것이 섬뜩하게도 일치한다는 점을 상기하고 나면, 이 사진집을 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들이 더 이상 그저 평온하게만 보이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해변가가 아니라 저 먼 바다로 떠내려가는 중은 아닐까. 어쩌면 이미 숨을 거둔 채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선으로 이 사진집을 보면, 이 사진들이 휴양지 하와이에서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이상의 것을 함축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모래사장 근처에 떠 있는 사람은 터키 해변가에서 시신으로 떠내려 온 시리아 난민 소년 쿠르디의 모습과 겹쳐진다. 눈을 감은 무표정한 얼굴은 죽은 이의 얼굴과 다를 바가 없이 느껴진다. 바로 이 점에서 같은 대상을 끝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위에서 한 번 그리고 가까이에서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은 삶과 죽음의 기묘한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사진집의 다소 난해한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이 사진집의 제목은 ‘다른 존재들이 갖는 미스터리한 불투명함’ 정도로 번역된다. 리처드 미즈락이 이 시리즈의 초기작이 담긴 사진집에 ‘해변에서(On The Beach)’라는 평이한 제목을 택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짐작건대, 2002년 이래로 이 시리즈를 계속해오면서, 그는 자신이 포착한 광경 속에서 눈에 분명히 보이는 사실들 너머, 그러니까 해변에 사람들이 떠 있다는 사실 너머에, 기이하고 불분명한 것들, 그리하여 더욱 삶의 진실에 맞닿아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리처드 미즈락은 이처럼 일견 아름다운 사진을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다양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아름다움이 어려운 생각들을 매우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믿게 됐다”고 말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