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걸리부
영업시간 11:30~22:00, 첫째·셋째주 월요일 휴무
대표메뉴 소스 흠뻑 부어나오는, 기본에 충실한 탕수육

도착︱오향만두
영업시간 11:30~22:00, 브레이크타임 15:00~17:30, 수요일 휴무
대표메뉴 바삭하면서도 폭신한 군만두


온종일 에어컨을 돌려도 소용없다. 과열된 머리는 식을 줄 모른다. 극악으로 치솟은 더위에 황금 같은 휴가를 버리고 ‘차라리’ 사무실을 택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선착순으로 좌석을 선점할 수 있는 공유 오피스도 만석이다. 결국 나의 작은 작업실로 돌아와 낡은 벽걸이 에어컨 아래 매달려 엉덩이 진물을 빼야 한다. 내가 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각종 얼음 과자와 음료를 먹으며 내장 기관을 식히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땀띠를 예방하는 것. 그리고 한 잔 술로 이 여름의 악몽을 망각하는 것뿐이다.

“짬뽕 먹고 갈래?” 이 무슨 짬뽕 같은 소린가. 연희동 단골 마트에서 과일 한 봉지를 사서 집으로 가려던 참, 남편은 돌연 근처 중국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당장 뺀 육수만 해도 짬뽕그릇으로 한 가득이건만. 마치 롱패딩을 입고 불가마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그를 쫓는다. 연희동은 차이나타운을 연상시키듯 ‘목란’ ‘이화원’ ‘진보’ 등의 유명 중국집들이 몰려 있는 동네다. 오래전 외국인 학교가 설립되고 화교들이 모여 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중국집 거리다. 우리는 유명 중화요리집을 뒤로 하고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걸리부(傑利富)’. 처음 보는 이름이나 소리 내 읽으니 낯설지 않다. 오래전부터 이 집을 드나든 남편은 한동안 ‘걸리버’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나무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활기찬 환대의 인사가 우릴 맞이한다. 붉은 장식으로 꾸며 놓은 벽과 천장은 고급스럽진 않지만 화려한 멋을 더한다. 가게 안을 채운 손님들은 가벼운 차림의 부부 혹은 백발 노인을 포함한 가족들이 대부분이다. 모두 마실 나온 복장으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연남동에서 6년, 연희동으로 이사해 17년 총 23년이 된 집이니 단골이 나이테처럼 쌓였으리라.

“짬뽕 하나, 짬뽕밥 하나요.” 그래. 해장이 필요했다. 그이는 면, 나는 밥. 나는 평소에도 면을 많이 즐기는 편도 아니거니와 해장할 땐 부대껴 더욱이 피한다.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국물을 흥건하게 품은 밥알을 입에 넣어 씹을 때의 행복이 좋다. 무엇보다 면은 목구멍으로 후루룩 넘겨버리니 입안에 머무는 체류시간이 짧아 아쉬우며 허무하다. 아무튼 난 밥파다. 풍채가 두둑한 남자 사장의 양손에는 탕수육 접시가 들려있다. 옆 테이블과 건너 테이블 위로 각각 놓여진다. 손이 올라가고 말이 튀어나온다. “탕수육 소자 하나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지만 아무 말 않는 남편은 충분히 예상했다는 눈치다. 냅다 소주도 한 병 시킨다. 잔이 나오자 별말 없이 술을 따른다.

때마침 짬뽕과 짬뽕밥이 나왔다. 몽글몽글하고 부들부들하게 익은 달걀이 한 그릇 가득 담긴 해물과 양파를 솜이불처럼 단정히 덮고 있다. 중심을 조심스럽게 갈라 밥 한술을 만다. 달걀과 함께 살살 섞으니 뜨거운 국물에 못 다 익은 달걀이 밥알에 엉겨 붙는다. 크게 한 술 떠서 입안으로 직행한다. 데일 수 있으니 얼른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는다. 열탕에 들어간 중년 남성의 음성이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온다. 귀 뒤와 인중에 금세 ‘술땀’이 흐른다. 수 십 그릇의 짬뽕밥을 먹었지만 달걀이 올라간, 그것도 반숙 오믈렛 수준의 달걀이 올라간 짬뽕밥은 처음이다. 몹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투명한 당면이 국수의 빈자리를 성실히 메워주고 있다. 심지어 양파, 부추, 돼지고기, 오징어의 굵기가 서로 동일하며 오징어는 몸통만 썼다. 국물도 빼놓을 수 없다. 기름진 감칠맛은 여타 유명 짬뽕에 비하면 가벼우나 칼칼하고 깔끔하다.

탕수육이 나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스가 흠뻑 나온다. 취향이고 뭐고 이게 기본이다. 소스를 따로 담아 배달할 일이 없는 요릿집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주 두 병과 모든 접시를 말끔히 비울 때쯤 곱게 깎은 배 두 조각이 접시에 담겨 나온다. 혼자 와서 짜장면 한 그릇을 먹든 코스 요리를 먹든 똑같다. 공평하며 한결같다.


‘걸리부’에서 맛본 짬뽕밥. 몽글하고 부드러운 달걀이 위에 올라가 있다. 사진 김하늘
‘걸리부’에서 맛본 짬뽕밥. 몽글하고 부드러운 달걀이 위에 올라가 있다. 사진 김하늘
‘오향만두’의 군만두. 주인이 장사를 잠시 접었다가 단골 성화로 다시 시작했을 만큼 맛있다. 사진 김하늘
‘오향만두’의 군만두. 주인이 장사를 잠시 접었다가 단골 성화로 다시 시작했을 만큼 맛있다. 사진 김하늘

한쪽은 굽고, 다른 쪽은 찐 바삭한 군만두

“만두 먹고 갈래?” 이 무슨 만두 같은 소린가. 부른 배를 보면 가당치 않지만 만두를 떠올리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동네답게 몇 걸음 옮기니 금세 만둣집에 닿는다. ‘오향만두’. 간판에 만두를 내걸었으니 만두는 기본이요, 메뉴판을 읽으니 식사메뉴가 없다. 2차로 적합하다. 잘 왔다. 마감 시간을 한 시간 앞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테이블은 빈틈이 없다. 한 남자는 군만두 4인분, 이어 들어오는 여자도 군만두 2인분. 포장 손님도 끊이지 않는다. 주인이 무릎이 아파 한 번 장사를 접었다가 단골들의 성화로 영업을 재개했다는 집답다. 남편도 그 단골 중 한 명이다.

군만두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시킨다. 가게 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거울에 두 얼굴을 비춘다. 벌겋게 달아오른 두 볼을 보니 어째 어젯밤 본 그 모습이다. 노인이 주방에서 만두를 내온다. 빨간 테이블 위에 열 개의 군만두가 오른다. 다섯 알씩 두 줄로 사이좋게 살을 맞대고 있다. 피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젓가락 끝을 세워 조심스럽게 만두를 떼어낸다. 종지에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를 섞은 소스에 만두 끝을 콕 찍어 한입 베어 문다. 한쪽 면은 기름에 굽고 다른 면은 쪘다. 바삭하고 폭신하며 포근하다. 너무 두꺼워 입안에서 떡이 되지 않는 피, 생강 향이 스치는 담백한 소 그리고 뜨거운 기름의 맛! 뜨거울 땐 소주다.

그렇게 한 병, 두 병, 비우고 비운다. 한바탕 먹고 한바탕 웃고 떠드니 어느덧 마감시간이 다 됐다. 마치 다시 만난 전우처럼 어깨 동무를 하고 집을 향해 걷는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코스를 완성시킬 수 있는 중식의 거리, 연희맛로. 어제와 밤 바람이 다르다. 좋은 꿈을 꿀 것 같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