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의 작은 휴양지 르 투케 파리 플라주 해변가. 피아노 축제가 열리는 매년 7월 말이 되면 이곳은 음악을 즐기기 위해 2만명이 몰린다.
프랑스 북부의 작은 휴양지 르 투케 파리 플라주 해변가. 피아노 축제가 열리는 매년 7월 말이 되면 이곳은 음악을 즐기기 위해 2만명이 몰린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기차를 타고 약 2시간을 달리면 ‘르 투케 파리 플라주(le Touquet Paris Plage)’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인구 2400명이 채 안 되는 마을이지만, 프랑스 북부 오팔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데다 파리는 물론, 벨기에·영국과도 지척에 있어 19세기 말부터 여름이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사구(모래언덕)에 숲이 무성하고 그 너머로는 태양이 찬란히 비치는 바닷물결이 아름다워 유명하다. 그래서 ‘오팔 해안의 진주’ ‘바다의 정원’ ‘프랑스에서 가장 우아한 해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프랑스 남부의 유명 휴양지인 ‘칸느’나 ‘니스’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엔 프랑스 북부 전통 양식과 아르누보(Art Nouveau·진보적인 새로운 예술) 양식이 결합된 아름다운 빌라가 즐비하다. 또 현 프랑스 영부인인 브리지트 마크롱의 레지던스가 있어 대통령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누비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한다.

이런 조용하고 전원적인 바닷가 마을이 매년 7월 말, 8월 초가 되면 분주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이 마을이 속해 있는 ‘레지옹 오트 드 프랑(Région Hauts-de-France)’ 전체가 그렇다. 매년 7월 말이 되면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피아노 페스티벌 ‘레 피아노 폴리에(Les Pianos Folies)’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로 복수 정관사 ‘Les’와 피아노 ‘Pianos’, 미친·광란·익살 등을 뜻하는 ‘Folies’가 합쳐진 이 페스티벌의 이름을 한국어로 직·번역하기엔 어려움이 있는데, 현지 언어에 담긴 유머러스한 뉘앙스를 고려한다면 ‘익살스러운 피아노’ ‘피아노에 미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르 투케 파리 플라주에서는 약 열흘간 50회가 넘는 연주회가 개최된다. 연주를 하는 콘서트장은 2만여 명이 넘는 관객으로 가득 채워진다.

음악회는 작은 마을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는 음악제 감독 이반 오브로아(Yvan Offroy)의 꿈이 파리에 편중된 문화 행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지역 관청의 뜻과 일치해 시작됐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피아니스트를 발굴해내는 일이 음악제의 과제이기도 하다. 필자도 이곳에 초대받아 2013년과 올해, 두 번 연주를 다녀왔다. 방문할 때마다 음악제의 성공을 위해 많은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음악회 장비와 피아노를 운반하는 차, 아티스트가 공연을 위해 이동하는 차 등이 수시로 동네를 오가는 모습 역시 이채로웠다. 연주회가 열리는 장소는 무척 다양하다. 콘서트홀에서부터 성당, 미술관, 시청을 넘어 빌라, 정원, 마을 한복판, 시장, 카페, 레스토랑 심지어 백사장 등 피아노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연주회가 열린다. 필자도 실내 테니스 코트에서 열린 한 러시아 동료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독주회)을 감상했다. 연주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두 눈을 조용히 감은 채 손을 꼭 잡고 음악을 감상하던 노부부, 손뼉 치고 환호하던 젊은 관객을 바라보면서 클래식 음악의 미래는 꼭 정규 콘서트홀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다채롭게 펼쳐질 수 있다고 확인할 수 있었다.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계단에 앉아 카페 앞에서 열린 연주회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 레피아노폴리에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계단에 앉아 카페 앞에서 열린 연주회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 레피아노폴리에

세계적 피아니스트도 교류하는 장

앞서 언급했듯이 하루에 5개가 넘는 크고 작은 연주회가 열리고 방송 및 라디오 중계를 비롯해 마을 인구의 8배가 넘는 2만 명의 관객이 다녀간다고 하니 과연 음악을 향한 그들의 관심과 열정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아티스트로서 이 음악제에 참여한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 음악제에 초대된 아티스트는 모두 주최 측에서 마련한 근사한 빌라에 투숙하게 되는데 체류하는 동안 함께 식사도 하고 연습도 하며 음악적 교류를 할 수 있다. 러시아 유명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와 보리스 베레좁스키 같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배움의 기회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늦여름 프랑스 음악축제를 떠올리며 함께 들어볼 명반

그리고리 소콜로프
잘츠부르크 리사이틀

그리고리 소콜로프는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만큼 그가 관찰해내는 악곡의 가능성, 또 그것을 극한의 장인정신으로 완벽하게 끌어내는 그의 능력은 많은 동료 음악인조차 그의 연주회 티켓을 구매하게 만든다. 소개하는 음반은 잘츠부르크 여름 음악제 실황인데, 여기에 수록된 곡 상당수가 2014년 이곳 르 투케 파리 플라주에서 열린 ‘레 피아노 폴리에’에서 연주돼 관객의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악곡이 끝난 후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를 듣고서야 이 음반이 실황임을 알게 되는 음반이다.

보리스 베레좁스키
텔덱 레코딩 전집

보리스 베레좁스키는 레 피아노 폴리에 음악제를 찾는 단골 아티스트다. 1990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피아니스트로 그의 거대한 키와 몸집에 걸맞은 청중을 압도하는 소리와 카리스마로 종종 ‘피아노의 사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개하는 음반에 수록된 거의 대다수의 곡이 이 음악제에서 연주됐다. 특히 연주자에게 현란하고 정교한 기교를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밀리 알렉세예비치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는 올해 연주돼 청중의 기립박수를 끌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