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최인훈 작가 빈소에 초상화가 놓여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바다의 편지’ 외에도 ‘광장’ ‘회색인’ ‘구운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이 있다. 사진 연합뉴스
7월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최인훈 작가 빈소에 초상화가 놓여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바다의 편지’ 외에도 ‘광장’ ‘회색인’ ‘구운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이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바다의 편지
최인훈 지음|삼인출판사|2만5000원|592쪽

7월 23일 타계한 소설가 최인훈의 문학엔 늘 ‘관념적’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광장’을 제외하곤 소설 ‘회색인’ 등 대다수 작품이 관념 독백의 에세이를 떠올리게 하거나, 환상적 기법의 사고실험(思考實驗)을 펼쳐 보인다. 사실 ‘광장’도 엄밀한 의미에선 인물과 사건 중심의 소설이 아니다. 한반도 분단 상황을 광장·밀실의 대립 구조로 설정한 작가의 의식과 사변이 이야기보다 더 도드라진 소설이다.

소설이 철학과 구별되는 것은 추상과 개념의 성찰이 아니라 생활의 구체성을 묘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최인훈의 관념 소설에 대해 리얼리즘 혹은 민중문학을 표방하는 평론가들이 ‘자의식 과잉’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인훈에게 관념은 삶의 현실에서 벗어난 언어유희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현실적 의미를 지닌 ‘마음의 행동’이었다. “사람은 경험한 것만으로 살 수 없으므로 관념의 도움이 필요하고, 사람이 현실에서 자기 문제에 더 깊이 천착할수록 관념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작가였다. 역사를 이해하려면 경험 세계를 굽어보는 역사철학도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최인훈은 사관(史觀) 숭배를 거부했다. 사관 숭배는 망원경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고 일갈했다. 결국 그의 문학은 이데올로기 비판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만큼 소설가라기보다 사상가(思想家)다운 발언을 자주 내놓게 됐다.

최인훈 사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으론 그의 산문 중 대표작을 골라 모은 ‘바다의 편지’가 꼽힌다. 최인훈 소설 중 독립적 산문으로 읽힐 부분도 따로 떼어내 수록했다. 특히 맨 앞에 실린 산문 ‘길에 관한 명상’은 최인훈의 사고방식과 언어 감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숱하게 문학에 활용된 단어 ‘길’을 놓고 자연과 인간, 지식과 문명, 종교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담론을 참신하게 펼치는 솜씨가 매혹적이다.


역사의 길, 인간의 길을 말하다

‘길’이 인간의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한 과정을 최인훈은 문명의 역사로 봤다. 고대인에게 천체 궤도는 ‘하늘의 길’이었고, 강물은 ‘물의 길’이었다. 짐승이 ‘물 마시러 오는 길’은 사냥하기 좋은 ‘길목’이었기에 ‘사람의 길’이 됐다. 인간은 점차 자연의 길을 인간의 감각 내부에 들어앉도록 길들였다. 고대 영웅들의 ‘길 떠나기’ 신화는 인간 집단의 연결을 낳았고, 인간이 말을 사용하면서 ‘길’은 마음속에서 ‘진리’를 뜻하게 됐다. 이로써 인간은 짐승과 공유하는 첫 번째 길에 이어 언어를 통해 만들어낸 지식의 길을 갖게 됐다. 최인훈은 여기에 세 번째 길로 ‘환상의 길’을 추가했다. 종교와 예술을 가리킨다. 지식의 길과 달리 환상의 길인 까닭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와 예술이 제시하는 해결은 ‘환상의 해결’이고, ‘마음=자연’이라는 관념의 실체화가 이뤄진다는 것. 하지만 종교가 그 실체화를 현실이라고 주장한 반면, 예술은 이 실체화를 ‘비현실’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예술은 비현실을 현실로 통용함으로써 생기는 유희니까.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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