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래픽 어페어’란 영화가 있다. 1999년에 개봉된, 벨기에 출신 감독 프레데릭 폰테인이 연출한 작품이다. 영화는 성적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해 포르노 잡지에 광고를 낸 적이 있는 여자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제목과는 달리 영화는 선정적인 장면이나 성적 판타지의 실현에 집중하지 않는다. 나이도 이름도 모르고 오직 성적 결합을 위해 만난 중년 남녀의 예기치 않은 사랑 이야기에 가깝다.

도시 한복판, 정해진 호텔방에서 남녀는 만난다. 서로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교환하지 않은 채 사랑만 나눌 것을 전제로 한 만남이다. 영화는 두 남녀의 잠자리보다는 두 사람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추적한다. 이 영화에 대해서 ‘유혹의 학교’라는 제목으로 필자가 낸 책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을 적은 글이다. 이번에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나를 오래도록 지배해 왔던, 평온의 판타지에 관해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숨겨진 방을 찾는 꿈을 계속 꿨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나만의 방을 갖고 싶었다. 어른이 돼서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을 나누고 성적 쾌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됐을 때부터는 온전히 몸으로 연결된 관계에 관한 판타지가 있었다. 실제 생활에서는 그와 같은 경험을 쉽게 할 수 없었지만, 20대를 온통 쏟아서 보았던 수많은 영화에서는 가끔 만날 수 있었다.


몸보다 마음의 결합 중요

고립된 공간에서 별다른 대화 없이 몸으로 지치지 않고 소통하는 연인을 그려내는 장면을 보며 상상했다. 고통스럽거나 과장된 몸짓이 아닌, 자유로우나 존중이 있고 구도의 자세처럼 감각에 집중해 내적 고요를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몸과 몸이 만나서 이뤄내는 집중, 나와 너 모두의 ‘최선’을 향한 노력, 그러니까 쾌락이 선이 되고 몸의 기쁨과 해방이 마음의 평온과 함께 찾아오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온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지극한 상승과 아늑한 추락까지, 그 높이와 깊이를 오가면서도 아찔함이 위기가 되지 않는 상태를. 존재의 끝없는 불안을 격렬한 몸짓으로 잠재우는 행위의 기적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굴곡을 잘 견디지 못하던 나는, 몸을 통해 얻게 되는 고요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동안 품어 보기도 했다. 모범생 기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인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나로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판타지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연애를 하게 되면 반드시 의식처럼 치르는 단계가 있었다. 바로 정해진 기간을 두고 몸에만 집중하며 보내는 일이었다. 그와 같은 시기를 함께 보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지독한 결핍을 느꼈다. 연인 관계도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사실은, 사랑을 나누는 것은 진지한 관계가 되기 전에 먼저 나눠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함께 잠자리를 나눠 보면 바로 알게 되는, 많은 것들이 있다. 미래를 약속한 이후에는 사랑을 나누는 것의 무게가 지나치게 커져 정직한 판단이 힘들어진다. 잠자리를 하면서 알게 되는 많은 정보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즐거움을 대하는 자세,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인생관과 가치관까지 전부 다 보인다. 친밀한 순간에 보여주는 모습, 들려주는 말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기나긴 잠자리의 연속과 그 안의 평온은, 함께하는 두 사람이 여러모로 비슷한 선상을 달리고 있기에 가능할지 모른다. 몸에 대한 가치관은 상당히 많은 것을 포괄하므로, 몸을 다루는 자세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참 많은 것을 파악한다. 두 몸이 만나 지극한 행복과 평온을 이루려면 아주 드문 결합이 일어나야 한다. 몸의 결합만이 아닌, 사람을 대하는 자세의 결합, 쾌락을 대하는 태도의 결합, 감각을 수용하는 방법, 자유로움을 어디까지 용인하고 진부함에 어느 정도까지 머무르고자 하는지에 대한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


엉망진창인 나를 편안하게 했던 그

살면서 잊지 못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있다면 그들 모두 내게 몸을 통한 온전하고 평온한 순간을 안겨 준 상대다. 몸의 결합이 이뤄진 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닮았는지 알게 된 상대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몸을 아무런 거부감이나 이물감 없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듬고 비비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알게 한 이들이기도 하다. 그의 몸과 몸 안에서 올라오는 온갖 체취가 오히려 달콤하고, 공기 입자처럼 당연한 상태가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안전을 느낀다. 평안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내가 평생토록 사랑하는 이들이 됐다.

그중 한 남자와 우리가 맨 처음 사랑을 나눈 방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제 막 겨울을 향해 가는 도시의 높은 방, 창밖으로는 쨍한 하늘이 서늘하게 떠 있고 미처 가리지 못한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온 하얀 침대 위, 온몸이 땀에 젖고 침대마저 축축해질 때까지 함께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나는 편안했다. 아침이 그렇게 지나갔다. 겨우 침대에서 탈출해서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갔을 때, 바깥세상에서 마주하는 서로의 모습이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둘 다 사실은 아주 내향적이었고 살갑게 타인을 맞이할 줄 모르는 이들이었다. 도시의 알싸한 추위가 둘 사이를 어색하게 맴돌 때 우리는 거리를 헤매듯 함께 걷다 헤어졌지만, 또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열흘을 꼬박 보낸 방을 함께 기억하며 말했다. 언젠가 되돌아갈까. 나는 다시 돌아가도 새벽이면 눈을 떠서 자꾸만 도시의 바깥 풍경을 향해 걸어가게 될까. 도시의 밤 풍경으로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가는 나를 남자는 자꾸 붙잡았다. 나는 기억조차 없건만, 그는 말했다. “당신의 뒷모습이 너무 위험해 보였어.”

긴 여행과 불면으로 엉망진창이 된 채로 그에게 도착한 나를 두고, 그는 나를 불시착한 영혼 같다고 했다. 오랜만에 누리는 평온이었다. 그의 품에서 나는 비로소 잠이 들었고 그 잠의 기억은 그를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말했다.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안전하다고 느껴. 세상의 고아처럼 둘 다 외로운데, 손을 이렇게 맞잡고 있으면 그저 안전해. 참 이상도 하지. 그렇지 않아?” 그와 나는 한때 온전한 연인으로 존재의 안팎을 누렸다. 나는 그와 함께 안전했다. 잊지 못할 평온함에 대한 기억이다.


▒ 이서희
서울대 법대를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학교 ESEC 졸업, 파리3대학 영화과 석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