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광주식당
영업시간 매일 7~22시,
대표메뉴 눅진하고 꼬릿한 청국장과 양은냄비밥

도착︱고향집 아바이왕순대
영업시간 8시 10분~22시, 일요일 휴무
대표메뉴 참기름과 참깨 솔솔 뿌린 아바이순대


“구두에 구정물 튄다. 여길 왜 따라와.”

엄마는 도매 시장에 따라오는 것을 늘 못마땅해 했다. 당신은 매일 식당 일에다 잦은 제사로 손에 물 마를 일이 없으면서도, 시집도 가지 않은 딸이 장에 나서거나 부엌 일을 거드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높아진 하늘은 완연한 감청색을 띠고, 두껍고 뜨거웠던 바람은 엷어졌다. 걸음 걸음에 괜스레 추억에 침잠한다. 그렇게 엄마 생각에 나부끼다 노인들이 빼곡히 들어앉은 1호선을 타고 청량리 청과물 시장까지 흘러와 버렸다. 농익은 가을 과일들이 골목에 단내를 풀풀 풍긴다. 허기를 채우려 작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간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두건으로 머리를 싸맨 한 아주머니가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노곤함을 털어내듯 한껏 기지개를 켜고는 작은 문 속으로 사라진다. 그녀를 뒤따라 통로처럼 좁고 긴 주방 속을 힐끗 훔쳐보니 선반에는 찌개가 담긴 뚝배기가 잔뜩 쌓여있고, 화구 위에는 구겨진 양은냄비가 줄지어 놓여 있다. 쿰쿰한 청국장 냄새가 콧속을 격파한다. 구수하고 진한 찌개 냄새에 허기가 턱 끝까지 차 오른다.

“청국장 하나 주세요.” 두 시가 지난 시각, 막 전쟁을 치른 듯 어수선하지만 종업원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살뜰하게 주문을 챙긴다. 곧 이어 여섯가지 반찬과 부글부글 끓는 청국장 뚝배기가 상 위에 깔린다. 고등어조림, 콩나물무침, 무장아찌, 무생채나물, 부추김치, 배추김치. 벽에 걸린 메뉴판을 다시 확인했다. 6000원. 이 가격을 한 번 더 의심하게 만드는 또 한 가지, 양은냄비밥. 은백색의 냄비에는 흰 쌀밥이 김을 내뿜고 있다. 길고 날씬한 밥알 하나하나가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밥김에 금세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종업원은 밥을 설설 섞고 스테인리스 그릇에 소복이 담아준다. 만원이 넘는 돌솥밥집에서도 받을 수 없는 서비스다.

문을 연 지 15년이 다 된 광주식당이다. 여전히 주인이 가게 문을 열고 닫는다. 새벽 5시 반에 나와 장사 준비를 하고 아침 7시부터 손님을 받는다. 쉬는 시간 없이 쭉 영업을 계속해 밤 10시가 돼서야 문을 닫는다. 방송도 적잖이 타서 외지 사람들이 줄을 서지만 본래 시장 상인들을 위한 밥집이었으니, 영업시간도 변함없는 게 당연하다. 출근하자마자 쌀을 깨끗이 씻어 불리고, 반찬을 만들고, 청국장을 끓여 뚝배기에 담아 놓는다. 이튿날 먹는 김치찌개, 카레가 입에 더 착 달라붙듯, 감칠맛을 졸여서 빨리, 더 맛있게 내기 위함이다.

김이 솔솔 피어나는 밥을 크게 한 술 떠 입에 넣는다. 온기가 달아나는 게 아까워 뜨거운 밥을 한가득 물고 “허-” 하고 입 속에서 식혀 먹는다. 센 불의 향이 코끝을 스친다. 살그미 눌러 붙은 누룽지의 향이 겹친다. 눅진한 청국장을 입에 넣는다. 옳다! 이거다! 어릴 땐 외삼촌에게서 나던 발 냄새 같아 학을 떼었던 그 꼬릿함! 냄새 없는 청국장은 청국장이 아니다. 청국장을 ‘거세’한 것이나 다름없다. 먹어 놓고 안 먹은 척 호박씨를 까는 얌체들이나 먹는 것이다.

한참 환장하듯 식사를 하는데 종업원이 고추장과 참기름을 가져다 준다. 그리곤 남은 밥을 다 긁어모아 밥그릇에 옮겨주고는 누룽지를 끓여 오겠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곤 밥 공기에 무생채와 청국장, 고추장, 참기름을 넣고 썩썩 비벼 먹으니, 객줏집에라도 앉아 있는 듯 길 떠나기가 싫어진다. 끓인 눌은밥이 나왔다. 비빔밥과 함께 숭늉을 훌훌 떠 먹으니 고급 정찬이 부럽지 않다. 1000원짜리 여섯 장을 빳빳이 펴서 계산을 하고 나왔다.


광주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양은냄비밥. 사진 김하늘
광주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양은냄비밥. 사진 김하늘
참깨를 솔솔 뿌린 아바이순대. 사진 김하늘
참깨를 솔솔 뿌린 아바이순대. 사진 김하늘

대창 속 옹골차게 채운 ‘아바이순대’

골목을 빠져나오니 온통 냄비밥집이다. 광주식당이 개업했을 때만 해도 이 골목에 식당이라곤 한두 집뿐이었다. 갓 지은 냄비밥과 청국장으로 줄을 세우니 저렴한 가격에 냄비밥이나 솥밥을 내건 식당들이 꽤 생겼다. 꽤 괜찮은 경쟁이다. 청국장을 직접 띄워 찌개를 끓이고, 갓 지은 밥을 지어 내는 식당이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오히려 귀해졌다. 그리고 한 군데가 더 있다. 직접 순대를 만드는 아바이순댓국집, 고향집이다.

가게 앞엔 커다란 가마솥 두 개가 끓고 있다. 가게 입구에 들어서니 좁은 주방에서 순대를 만들고 있다. 돼지 대창에 꾸역꾸역 속을 넣으니 괜히 더 배가 부른 것 같지만, 흔치 않은 광경에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길고 긴 통로처럼 뻗어있는 내부는 한 줄로 입식 테이블이 죽 줄지어 있고, 안쪽에 좌식 공간이 분리돼 있다. 마음 같아서는 방바닥에 발 뻗고 앉아 벽에 등 기대고 푹 퍼져 먹고 싶지만, 겨우 혼자 와서 음식 나르는 사람만 괴롭히는 것 같아 의자에 앉았다.

순댓국 6000원. 나만의 물가 상승 체감 기준이 있다면 순댓국 가격이다. 9000원짜리 순댓국을 보고 경악했던 터, 손으로 직접 만든 아바이 순대국이 6000원이라니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모둠 순대 한 판과 막걸리 한 병을 주문한다. 잘 익은 배추 김치, 깍두기에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며 순대를 기다린다. 드디어 상에 오른다. 세숫대야만 한 그릇에 거대한 대창 순대가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돼지피, 당면, 찹쌀은 물론 견과류와 새송이 버섯을 버무려서 쫄깃한 대창 속을 옹골차게 채웠다. 뿐만 아니라 순대 주위엔 돼지 허파, 간, 뽈살 등이 꽃잎처럼 펼쳐져 있다. 특이한 점은 참기름과 참깨가 더해진 것이다. 있는 힘껏 입을 벌려 순대를 구겨 넣는다. 진한 맛에 간도 제법 센 편이라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 시장 상인들이 즐겨 찾는 메뉴는 무엇보다 순대 정식이다. 순댓국과 공깃밥에 작은 사이즈의 모둠 순대가 딸려 나온다. 새벽녘부터 쌓인 피로를 풀기 딱 좋은 반주구성으로 인기가 좋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다. 저 너머 어딘가에 붉은 노을이 내린다. 과일을 사러 가야겠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포도를 잔뜩 살 것이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