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히사 토미야스의 사진집 ‘TTP’. 운동장 한구석의 탁구대를 배경으로 벌어진 5년간의 일을 담았다. 사진 김진영
하야히사 토미야스의 사진집 ‘TTP’. 운동장 한구석의 탁구대를 배경으로 벌어진 5년간의 일을 담았다. 사진 김진영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체인점이 아니었던 그곳은 그 지역, 그 장소에 단 하나뿐이었고, 학교 근처이다 보니 일하는 사람이나 손님 대부분이 내가 다니던 학교 학생이었다. 심심하면 가곤 했던 그 카페에서 나는 다양한 사람을 구경했다. 동네 카페에서 무슨 큰일이 벌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나는 그저 서로 이야기 나누는 방식이나 옷차림 같은 것을 기웃거리는 시선으로 보았을 뿐이다.

사진집 ‘TTP’는 유학생이던 작가가 다니던 학교 근처의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담은 책이다. ‘2018 포토 런던(Photo London)’에서 ‘맥 퍼스트 북 어워드(MACK First Book Award)’를 수상하며 책으로 출간됐다. 매년 5월, 포토 런던 행사와 함께 열리는 퍼스트 북 어워드는 사진집을 한 번도 출간한 적없는 신인작가들의 작업 가운데 하나를 수상작으로 선정해 책으로 출간한다. 이와 유사한 사진집 시상식이 매년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어, 신인작가들이 작품활동을 이어 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독일 라이프치히 미술 아카데미에서 유학하던 하야히사 토미야스는 그가 머물던 기숙사 8층 창문을 통해 운동장 구석에 놓여 있는 탁구대를 보게 됐다. 그에 따르면, 그가 시선을 처음 뺏긴 것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의 다람쥐였다. 언제 또 그 다람쥐가 지나갈지 몰라 바라보고 있던 그는 운동장 한구석에 놓인 탁구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보게 됐다. 독일어로 탁구대를 뜻하는 ‘Tisch Tennis Platte’에서 앞글자를 딴 제목의 사진집 ‘TTP’는 이 탁구대를 배경으로 벌어진 5년간의 일들을 담았다.

아이들은 이 탁구대를 오르내리며 놀고, 어떤 이는 밥을 먹거나 빨래를 널기도 하고, 어떤 이는 위에 올라가 책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탁구가 아닌 다른 운동, 이를테면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탁구대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뿐이랴. 탁구대를 작업용 책상 삼아 연을 만드는 사람, 태닝하는 남자, 아이 기저귀를 갈아입히는 부모, 개털을 빗겨주는 주인 등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다.

하야히사는 탁구대에서 재미난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아서 창밖을 바라보느라 약속 시간에 늦는 일이 제법 있었다고 회고한다. 사람들이 들뜨는 크리스마스 같은 날, 그는 창밖을 봐야만 했기에, 어디 가지 못하고 방에 있었다고 한다. “작가의 꾸준한 호기심 덕분에, 사람들의 행동이 보여주는 습관, 유머, 독특함을 우리는 관찰하게 된다”는 심사평을 들은 이 사진들은 마치 하야히사에게 탁구대를 보게 해 준 기숙사 창문처럼 우리로 하여금 그 창문 너머 탁구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그냥 바라보는 행위와 사진으로 기록하는 행위는 두 가지 차원에서 다르다. 첫째, 바라보는 행위는 인간 눈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눈의 능력을 넘어선 것은 볼 수 없다. 그와 달리 사진은 카메라라는 장치에 의존하기 때문에 카메라 능력이 제공하는 범위까지 시각이 확장된다. 둘째, 바라보는 행위는 일시적이고 바라본 장면은 반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은 표면에 상을 고정해서 우리의 시선이 언제고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하야히사 토미야스의 사진집 ‘TTP’.
하야히사 토미야스의 사진집 ‘TTP’.

초상권 침해 논쟁도 불거져

탁구대를 오고 간 ‘TTP’ 속 사람들은 자신이 사진 찍히는 줄 모르는 상태에서 하야히사의 망원 렌즈에 의해 이미지로 고정됐다. 고사양 카메라가 생겨나면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찍힌 동시대 많은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도촬이나 초상권 침해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즉, 이러한 작업은 예술가의 촬영과 도촬의 경계, 예술가의 권리와 초상권의 대립과 같은 다양한 쟁점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날 현재 진행 중인 이 문제에 정해진 답은 없다. 많은 사진가들은 여전히 이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고, 비판 혹은 고소에 맞닥뜨리더라도 자신의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홍콩의 아파트, 일본의 지하철, 미국의 빌딩 속 사람들을 담아온 사진가 마이클 울프(Michael Wolf)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간에는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고, 이 점에서 나의 작업은 사회적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항변했다. “나는 그저 내가 본 것을 찍을 뿐이다. 집들이 서로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2013년 사례는 더욱 흥미롭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아르네 스벤슨(Arne Svenson)은 이웃으로부터 사생활 침해로 고소당했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건너편 건물 창을 통해 보이는 이웃들의 모습을 500㎜ 망원렌즈로 찍어 작업한 ‘이웃들’ 연작을 근처 갤러리에서 전시했다. 이웃 중 두 사람이 자신의 아이가 사진에 담겨 있는 것을 보고 그를 고소한 것이다. 법원은 ‘표현의 자유’ 조항에 근거해, 이러한 예술은 만들어지거나 팔리기 위한 사전 동의가 요구되지 않는다며 사진가의 손을 들어줬다.

아르네 스벤슨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삶의 연출 없는 무의식적 측면이 사진 찍기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해석에, 내러티브에 가장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극적인 순간은 행동을 유발하는 힘을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작게 연결된 순간을 통해 지구상에 시간을 표시하며 살아간다. 단어 자체보다 단어 사이의 숨을 기록하는 것에 훨씬 더 흥미가 있다.” 그가 말하는 ‘단어’가 극적인 순간이나 큰 사건이라면, 단어 사이에 들이쉬는 ‘숨’은 평범한 순간이나 소소한 사건들을 가리킨다. 그의 관점에서 ‘숨’은 단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자 단어를 말하기 위한 전제조건과 같은 것이다.

아르네 스벤슨이 아파트 공간을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은 것과 달리 하야히사 토미야스는 탁 트인 운동장을 들여다보며 찍었다. 그럼에도 두 작업에서 모두 이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사진 찍힌다는 사실을 모르고 행동한다. 이와 같은 작업 방식은 아르네 스벤슨이 말한 ‘단어 사이의 숨’, 그러니까 굵직한 사건을 담은 사진, 아름답게 연출된 사진이 담지 못하는 그사이의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실 우리의 일상은 바로 화려하지도 않고 큰 의미도 없는 그사이의 것들로 구성돼 있다.

유학 시절 내가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곤 했던 그 카페는 한참 후 문을 닫았다. ‘TTP’의 마지막 사진은 탁구대가 철거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소소한 사건들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