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 해에 타계한 박경리(사진 왼쪽)와 이청준. 사진 조선일보 DB
2008년 한 해에 타계한 박경리(사진 왼쪽)와 이청준. 사진 조선일보 DB

박경리와 이청준
김치수 지음|문학과지성사|1만8000원|308쪽

어느덧 소설가 박경리(1926~2008년)와 이청준(1939~2008년)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됐다. 박경리는 2008년 5월, 이청준은 7월 각각 타계했다. 한국 현대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두 작가의 10주기를 맞아 그들의 문학 세계를 재조명하는 행사가 이미 치러졌거나 곧 열릴 예정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문학평론가 김치수(1940~2014년)가 남긴 평론집 ‘박경리와 이청준’을 다시 뒤적이게 됐다.

김치수는 이 책을 1982년에 냈다. 당시 김치수는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를 지내던 중 전두환 정권에 의해 정치적 이유로 해직됐다. 그는 해직 이후 분노와 좌절을 다스리기 위해 두 해 동안 박경리와 이청준에 대한 비평을 여러 차례 썼다. 그는 두 작가의 소설에서 ‘고통’과 ‘부끄러움’이란 화두를 찾아내 그것을 붙잡고 나름 문학적으로 정진했다고 한다. 박경리는 “고통이여 오라, 내가 상대해주마”라며 글을 썼고, 이청준은 4·19세대 지식인들이 소시민으로 살면서 느낀 시대적 부끄러움을 글쓰기의 원천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2016년 ‘김치수 문학전집’ 중 하나로 재출간된 ‘박경리와 이청준’을 다시 들여다보니 한 비평가가 소설 읽기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얻어낸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치수가 생전에 “소설 읽기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 현실의 숨은 구조를 이해하는 정신의 활동”이라고 역설한 것도 새삼 기억난다.

김치수는 서문을 통해 박경리와 이청준이 서로 다른 개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의 공통분모를 ‘한(恨)의 언어화’라고 요약했다. “이들은 한의 여러 가지 양상을 통해서 삶을 자동화된 지각으로 느끼고 있는 우리의 의식의 잠을 깨우고 있으며, 언어의 탐구를 통해서 억압 없는 반성의 미학에 도달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용서해야 자유로워”

김치수는 책의 뒷부분을 두 작가와의 대화로 꾸몄다. 박경리와 이청준이 자신의 문학에 관해 설명한 부분 중 인상적인 대목을 꼽으라면 다음과 같다.

“제목을 ‘토지’라고 정한 것은 대지도 땅도 아닌 것, 즉 땅이라고 하면 순수하게 흙냄새를 연상하게 되고 대지라고 하면 그냥 광활하다는 느낌만 들어 그 밖의 것을 찾다가 나온 겁니다. 이것은 제 느낌입니다만 ‘토지’라고 하면 반드시 땅문서를 연상하게 되고 ‘소유’의 관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유라는 것은 바로 인간의 역사와 관련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박경리)

“저는 소설을 쓰는 강렬한 충동이라든가 하는 것을 복수심 같은 데에서 많이 찾습니다. 물론 점잖게 얘기하면 지배욕이라든가 자유에 대한 욕망이라든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중략) 지금 말한 복수심이 얼마나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느냐 하는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자유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은밀하게 효과적으로 잘 감춰져 있느냐 하는 말이 될 테니까요. 자유 아니면 용서할 수도 없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 아닙니까?”(이청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