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목화식당
영업 시간 매일 07:30~20:00
대표 메뉴 선지와 곱창, 양 등이 듬뿍 들어간 소내장탕

목월빵집
영업시간 매일 10:00~19:00 일요일 10:00~15:00 매주 월요일 휴무, 마지막 주는 월·화요일 휴무
대표 메뉴 직접 만든 견과류 기름을 사용한 누룽지빵과 고소한 단호박허브크림치즈빵

카페 티읕
영업 시간 매일 13:00~20:00
대표 메뉴 직접 로스팅한, 다양한 메뉴의 드립커피


지난달 화엄음악제를 보러 남편과 지리산에 올랐습니다. 매년 음악제에 왔다는 그는 올해 저와 함께 와서 감회가 새롭다고 했습니다. 음악제 마지막 날, 우리는 서울로 떠나기 위해 버스 터미널이 있는 전남 구례 읍내로 내려갔습니다. 그가 저와 같이 오고 싶었다는 식당으로 가 늦은 아침식사를 했고, 빵도 사고 커피도 마셨습니다. 그리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봉성산에 올랐습니다. 1년 전 그곳에서, 그때를 돌아보며 지금을 말하는 남편을 보며 나이 든 남자와 젊은 남자의 모습이 교차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두 남자와 두 번 아차산에 갔던 영화 속 옥희와 반대로, 한 남자와 봉성산에 오른 한 번의 경험을 가상으로 둘로 쪼개 글로 써봤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주름이 주는 안식과 그의 빛나는 눈동자가 주는 가벼운 흥분이 대비되어, 저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1. 나이 든 남자와 함께한 내장탕 한 그릇

우리는 봉성산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나이 든 남자는 입구에 서있는 꽃나무를 보며 감탄했습니다. 그는 오르막을 오르며 울타리처럼 핀 빨간꽃을 가리키며 ‘상사화’라 알려줬습니다. 중턱쯤 올랐을 때 빨간 벤치가 보였습니다. 그는 벤치에 앉아 잠깐 쉬며 얘기를 나누자고 했습니다. 그는 산 밑을 내려다보며 사람 사는 게 이제 조금 보인다고, 이젠 마음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습니다. 유난히 그의 눈가에 잡힌 주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는 내년에도 꼭 이곳에 같이 오자고, 혹시나 힘든 일이 생겨 함께 이곳에 오지 못해도 여기에서 서로 기다리자고 했고 나는 알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더는 산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며 이대로 내려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를 정말 사랑한다고 느끼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낮은 시멘트 벽 위로 어울리지 않게 맞배지붕이 솟아있었습니다. 그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에는 주방이, 중앙에는 단이 있는 마루가, 오른쪽에는 방이 있었습니다. 구조로 보나 천장의 일부분이 나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걸로 보나 외관과 다르게 양식 주택을 개조한 것 같았습니다. 건넌방에도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뚝배기에 얼굴을 파묻고 한창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나이든 남자는 허기가 지는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내장탕 두 그릇을 시켰습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옆 부부식당에서 다슬기 수제비를 먹는데, 나는 꼭 이 집에 와. 양념 퍼붓지 않은 맑은 소내장탕은 흔치 않거든. 너랑 꼭 오고 싶었어. 이렇게 같이 오니까 정말 좋다.” 깍두기, 배추김치, 깻잎장아찌, 부추무침, 양파와 고추, 된장, 다대기, 그리고 펄펄 끓는 뚝배기가 상에 놓였습니다. 뚝배기엔 맑은 국물 위로 새파란 부추가 둥둥 떠 있고, 그 아래로 검붉은 선지와 곱슬거리는 양이 한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나는 선지를 건져 먹기 좋게 숟가락으로 슴벙슴벙 잘랐습니다. 그는 젊은 여자가 선지를 꺼리지 않는 게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는 또랑또랑한 국물을 온전하게 지켜주고 싶다며 국물에 다대기도 깍두기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훼손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가만히 깻잎장아찌를 떼어내 내 밥공기에 얹어 주었습니다. 소주도 시켰습니다. 국물과 소주를 성수처럼 마셨습니다. 청아한 소주와 맑은 국물을 모두 다 마시면 우리도 깨끗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사명처럼 뚝배기와 잔을 모두 비웠습니다.


봉성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구례군. 사진 김하늘
봉성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구례군. 사진 김하늘

2. 젊은 남자를 따라 찾은 빵집과 카페

젊은 남자는 꽃나무건 풀꽃이건 잘 보지도 않고 지나쳤습니다. 빨간 벤치도 지나쳤습니다. 나는 숨이 가빠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며 나를 채근했습니다. 드디어 정상에 있는 봉성루에 올라 구례의 속살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화엄사와 노고단도 보였습니다. 그는 나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뽀뽀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키스를 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남자와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언젠가는 헤어지겠다는 느낌을 받으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허기가 졌습니다. 어디에선가 갓 구운 빵 냄새가 났습니다. 작은 빵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갓 구운 빵이 오븐에서 나오는 대로 족족 집어댔습니다. 나도 빵을 한아름 사 안고, 봉투에 담긴 빵을 꺼내 그와 나누어 먹었습니다. 따끈한 빵 안에는 커다란 크림 치즈 덩어리와 노오란 단호박 조각이 아낌없이 박혀있었습니다. 파삭한 빵껍질을 부수고 보드라운 속살을 입에 넣으니 구수한 향이 밀려 들어오고 진한 달큰함이 입 안에 퍼졌습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젊은 남자가 말했습니다. "부부가 구례로 이주하고 차린 빵집인데, 아버지가 농사지은 밀을 아들이 직접 빻아서 빵을 만든대. 인기가 좋아서 게으름 피우면 사먹기도 힘들고. 목 마르지? 커피 마시러 가자.”

그가 안내한 카페는 그림이 그려진 정사각형의 간판부터 이미 평범함을 거부하는 곳 같았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언뜻 보이는 카페는 호기심 천국이었습니다. 문을 열면 만화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처럼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부는 온통 오래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카페 한편에는 오래된 LP들이 빼곡히 쌓여있었습니다. 젊은 남자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극장용 스피커 아래에 앉았습니다. 우리는 주인이 직접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습니다. 라디오에서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상은의 ‘공무도하가’가 흘렀습니다. 젊은 남자는 화장실에 다녀 온다고 했습니다. 창 밖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조급해져 갔습니다. 나는 결국 카페를 나와 봉성산에 올랐습니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