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의 대안으로 삼기에 충분한 도요타 캠리. 사진 한국토요타
그랜저의 대안으로 삼기에 충분한 도요타 캠리. 사진 한국토요타

올 9월까지 국산차 베스트셀링카는 현대자동차 그랜저다. 그랜저는 1~9월 8만3454대가 팔려 1위를 차지했다. 지난 3월 신형 모델 출시 이후 7개월 동안 싼타페에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1~9월까지 누적 판매 대수는 아직 그랜저가 싼타페를 3677대 앞선다. 그렇다면 지난해 국산 베스트셀링카는? 역시 그랜저다. 지난해 그랜저 판매 대수는 13만1080대로, 2위 싼타페의 판매 대수(51661대)를 두 배 이상 뛰어넘었다. 그랜저는 이미 누적 판매 대수 20만 대도 훌쩍 넘었다. 그랜저가 지금 가장 잘나가는 국산차라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세단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요즘, 그랜저의 이 같은 성적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그랜저는 왜 이렇게 국내에서 인기가 좋을까. 왜 이렇게 잘 팔릴까. 상품성이나 브랜드 가치, 가격을 따졌을 때 대적할 만한 경쟁 상대를 찾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나 역시 그랜저를 꼼꼼히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급스러운 실내와 넉넉한 실내 공간, 풍성한 편의장비, 적당히 나긋나긋한 승차감과 크게 흠잡을 것 없는 성능…. 움직임이 조금 가볍다는 게, 스티어링휠이 쫀쫀하지 않고 헐렁한 느낌이 든다는 게 아쉽지만 4000만원 안팎의 패밀리 세단으로 이 정도면 훌륭하다는 생각이다(가장 윗급의 익스클루시브 스페셜 모델은 후진하면 뒷유리에 달린 햇빛가리개가 자동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막상 그랜저를 산다고 하면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랜저에 버금가는 편의장치와 안전장비를 갖춘 혼다 어코드의 실내. 사진 혼다코리아
그랜저에 버금가는 편의장치와 안전장비를 갖춘 혼다 어코드의 실내. 사진 혼다코리아

그랜저 위협하는 수입 세단

일단 너무 흔하다. 오늘 출근길에서도 20대가 넘는 그랜저를 도로에서 만났다. 그중에는 택시도 꽤 있었다. 내 차가 흔하디 흔한 차로 취급받는 건 싫다. ‘아저씨’ 이미지가 강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어릴 적 그랜저는 동네에서 돈 좀 있다고 거드름 피우는 사장님들이 주로 타는 차였다. 나에게 그랜저는 그런 이미지로 둘러싸인 차다. 그런데 그런 차를 내가 탄다고? 아이고! 그렇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차로 눈을 돌려야 할까. 그랜저 말고 어떤 대안이 있을까. 다행인 건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꽤 괜찮은 수입 패밀리 세단이 국내에 출시됐단 사실이다. 값도 4000만원 언저리로 그랜저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도요타 캠리는 그랜저의 대안으로 삼기에 충분한 자질을 지녔다. 특히 하이브리드 모델은 배터리를 시트 바닥으로 옮겨 무게중심을 낮추고 트렁크 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했다. 하이브리드 모델만 놓고 보면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트렁크 공간까지 배터리가 파고들어 좁고 형편없지만(골프백 4개는 어림없는 수준이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넉넉하다 못해 광활할 지경이다. 움직임도 그랜저보다 좀 더 또렷하다. 구불구불한 길에서 멍청하게 꽁무니를 흘리거나 심하게 비틀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편의장비는 그랜저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뒷자리엔 열선 시트도 없다. 하지만 실내 공간은 그랜저만큼 아주 여유롭다. 보닛을 40㎜ 낮춰 앞 시야를 확보한 덕에 운전석에 앉았을 때 시야가 좋다. 무엇보다 시트가 푸근하다. 캠리의 운전석 시트는 국산차와 수입차를 통틀어 가장 푸근한 것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몸을 착 감싸는데,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불편한 곳이 없다. 아, 아직 캠리 하이브리드의 비장의 카드를 말하지 않았다. 복합연비가 리터당 16.7㎞다. 덜덜거리는 진동과 갸릉갸릉 하는 디젤엔진 소리를 겪지 않고도 이 정도의 복합연비를 누릴 수 있다.

지난 5월 국내에 출시된 혼다 어코드는 그랜저에 버금갈 만한 편의장비와 안전장비를 갖췄다. 센터패시아 아래에는 스마트폰 무선 충전패드가 놓였고, 2.0 터보 모델은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켜면 센터패시아 모니터에 옆 차선 상황이 자동으로 뜨는 래인와치 시스템도 챙겼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차선 유지 보조장치가 있어 어느 정도 준자율주행이 가능하다. 변속레버를 버튼으로 대체한 덕에 센터콘솔도 넉넉하다. 하지만 2.0 터보 모델의 가장 큰 강점은 달리기 실력이다. 엔진이 꾸준하게 힘을 토해내며 차체를 힘차게 밀어주는데, 달리는 맛이 시원하고 경쾌하다. 운전대를 잡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짜릿한 기분이 샘솟는다. 3000만~4000만원대 패밀리 세단 중에서 이런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차는 단언컨대 어코드 2.0 터보뿐이다. 그랜저의 헐렁하고 나긋한 움직임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어코드에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앞자리를 위한 편의장비는 풍성하지만 뒷자리를 위한 배려는 부족하다. 뒷자리가 좁은 데다 시트가 전반적으로 단단해 부모님을 뒷자리에 오래 태운다면 한참 미안해질 수 있다. 뒷자리에 열선 시트는 있지만 승객을 위한 USB 포트는 없다. 그래도 ‘즐거운 드라이빙’이란 글자엔 그랜저보다 어코드 2.0 터보가 가깝다.


잘 팔리는 차가 원하는 차 아닐 수 있어

잘 팔리는 덴 이유가 있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니까. 하지만 자동차를 선택하는 이유가 단지 ‘잘 팔리기 때문’은 아니었으면 한다. 차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나와 가족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다. 이렇게 보면 잘 팔리는 차가 꼭 내가 원하는 차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내 선택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러니 모두들 덮어놓고 잘 팔리는 차에 눈을 돌리지 말고 옳은 선택을 하시길. 참, 한 자동차 전문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아반떼에서 쏘나타 그리고 그랜저로 이어지는 ‘카라이프’는 너무 심심할 것 같아. 정해진 그대로의 삶을 사는 것 같잖아.” 나 역시 그의 말에 동감이다.

서인수 모터트렌드 코리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