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의 플래그십 SUV 모델인 G4 렉스턴. 사진 쌍용차
쌍용자동차의 플래그십 SUV 모델인 G4 렉스턴. 사진 쌍용차

국산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시장에서 쌍용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지난 9월까지 쌍용차의 누적 판매를 기준으로 할 때, 전체 판매 대수 7만872대 중에서 순수한 SUV는 4만6241대로 약 60%를 차지한다. 이는 같은 기간 33만6000여대가 팔린 전체 국산 SUV에서 약 14%에 해당한다. 작은 숫자로 보이지만 국내 완성차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SUV 시장에서 쌍용차의 존재감이 뚜렷하다. 콤팩트 SUV 부문에서는 티볼리가 항상 1위를 지키고 있고 대형 SUV에서는 G4 렉스턴이 경쟁 모델이라고 할 기아자동차의 모하비보다 두 배 넘는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물론 국내 SUV 시장에서 볼륨이 가장 큰 중형 SUV(싼타페·쏘렌토·QM6·이쿼녹스) 부문에 마땅한 모델이 없는 것과 준중형 SUV(투싼·스포티지) 시장에서 코란도C가 맥을 못 추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렉스턴 스포츠와 코란도 스포츠가 약 3만대 정도 팔리는데 이들도 대부분 레저용으로 쓰이는 상황이다 보니 실질적으로는 이 숫자도 SUV에 편입시키는 것이 맞다. 결국 2300대 정도가 팔리는 코란도 투리스모를 제외하면 쌍용차 판매량의 대부분이 SUV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말에 브랜드의 유일한 세단 모델인 체어맨 W를 단종시키고 픽업과 SUV에 집중한 결과로는 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SUV 시장 주도한 쌍용차

숫자로 승부하는 티볼리와 코란도C, 국내 유일의 레저용 픽업 트럭이라는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렉스턴·코란도 스포츠 모델이 있지만, 어쨌든 쌍용차의 핵심은 플래그십(Flagship) 모델인 G4 렉스턴이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쌍용차의 SUV는 항상 조금 더 크고, 비싸며 그에 딸려온 고급스러움을 내세워 시장에서 상당한 지배력을 발휘했다. 벤츠의 파워트레인과 시대를 이끌었던 디자인의 결합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무쏘는 쌍용차에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4기통 엔진의 진동과 소음을 ‘박력’으로 포장했던 시절, 벤츠에서 가져온 5기통 엔진과 변속기는 부드러웠고 전자식 스위치가 달린 4WD 시스템은 첨단이었다. 이후 상위 모델로 나온 렉스턴도 마찬가지였다. 전자식 AWD와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 등 첨단 기능으로 플래그십의 이미지를 지켰다. 덕분에 아직도 쌍용의 SUV를 ‘정통’이자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차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체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 지금의 G4 렉스턴은 작년 3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보디 온 프레임(Body on Frame) 타입의 SUV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뼈대인 프레임이다. 위와 아래를 막은 네모난 틀 안에 두 개의 보강재를 덧댄, 4중 구조다. 여기에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의 구동계는 물론 서스펜션을 모두 고정하고 그 위에 차체를 볼트로 조여 고정하는 방식이다. 좀 더 승용차에 가까운, 그래서 최근의 도심형 SUV들이 많이 사용하는 섀시와 차체가 일체형인 모노코크 방식과 비교할 때 장단점이 분명하다. 힘을 받는 부분인 뼈대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견인을 하거나 차체가 비틀어질 경우가 많은 험로 주행에는 유리하다. 하지만 서스펜션이 프레임에 고정돼 사람이 타고 있는 보디와의 일체감은 떨어진다. 승용차처럼 차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느낌은 줄어들지만 SUV라는 용도에 충실한 셈이다. 튼튼한 섀시는 최대 3t의 트레일러를 끌 수 있는 견인 능력으로 증명된다.

지난 10월 초에 나온 2019년형 G4 렉스턴 모델은 기존의 2.2L 4기통 엔진에 벤츠에서 직수입한 7단 자동변속기는 그대로지만 강화된 유로6d 규제에 맞춰 SCR(선택적 촉매 환원장치)을 달았다. 디젤 엔진이 뿜는 오염 물질 중의 하나인 NOx(질소산화물)를 줄이기 위해 요소수를 분사한다. 경쟁 모델인 모하비가 무려 260마력/57.1㎏.m의 힘을 내는 V6 3.0L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단 것과 비교하면, 187마력/43.0㎏.m의 출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4WD 5인승을 기준으로 할 때 G4 렉스턴이 2170㎏이고 모하비는 2240㎏으로 성인 남자 한 명 정도(70㎏) 무게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절대적인 출력 격차 때문에 둘 사이에 달리기 성능 차이는 크다. 모하비가 시원스럽게 달린다면 G4 렉스턴은 적당히 달리는 정도다. 1600~2600rpm에서 최대 토크가 나오는 엔진과 힘 손실이 거의 없는 변속기가 열심히 큰 덩치를 달리게 한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7명이 모두 타고 짐을 잔뜩 실었을 때는 어떨지 궁금할 뿐이다.

실내는 광활하다. 특히 국내 SUV에서 최대 사이즈인 9.2인치 내비게이션 화면이 달린 센터 페시아는 시원스럽다. 금속성 소재의 버튼들은 큼직하고 비슷한 기능끼리 모아두어 쓰기 편하다. 사실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막내급인 티볼리는 복잡한 디자인에 여기저기 흩어진 버튼들 때문에 헷갈렸다. 중간급인 마제스티 트림부터 들어가는 나파 가죽 시트와 동급 최대인 20인치 휠, 키를 가지고 차 뒤에 3초 이상 머물면 자동으로 트렁크를 열어주는 스마트 트렁크, 하이패스, 여러 가지 주행 보조 장치 등이 기본으로 값 대비 가치에서 뛰어나다. 더욱이나 5년 또는 10만㎞ 무상 보증은 동급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게 분명하다.


첨단 안전 기능은 미흡

G4 렉스턴에서 아쉬운 것은 플래그십다운 첨단 안전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아직 유압식 스티어링 휠 보조 기능을 쓰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운전대를 돌려 차선을 유지해주는 기능이 없다. 또 이 정도 가격이라면 당연히 기본으로 달리거나 혹은 옵션으로라도 선택할 수 있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도 없다.

현재 있는 기능들, 그러니까 후측방 경보 시스템, 차선 이탈 경보 시스템, 사각지대 감지 시스템, 차선 변경 경보 시스템 등은 모두 ‘경고’를 하는 일차적인 안전 보조 기능이지 적극적으로 차의 방향을 바꾸거나 제동을 거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이 있어 전방 추돌 경보 시스템과 함께 정면 충돌 가능성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다행이다.

가격은 G4 렉스턴 럭셔리 트림이 3448만원이고 헤리티지 트림이 4605만원이다.

이렇게 살펴본 G4 렉스턴은 큰 차체에서 오는 여유로운 공간과 탄탄한 섀시, 편의장비를 갖추고 적당한 수준의 가격표를 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G4 렉스턴이 쌍용차의 플래그십이라는 점이다. 플래그십은 브랜드의 모든 역량이 집약된 최고의 기술과 최신 장비를 갖추고 시장을 이끌어야 한다. 현재는 모하비와 G4 렉스턴 등 두 차종만 있지만, 내년이 되면 현대·기아차에서 새로운 대형 SUV가 나올 예정이다. 그때에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 그게 플래그십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