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제1차세계대전 당시 헝가리의 소년들이 모여서 책을 읽고 있다. 사진 김진영
1915년 제1차세계대전 당시 헝가리의 소년들이 모여서 책을 읽고 있다. 사진 김진영

가을이라는 자연의 주기와 독서라는 문화 행위를 연결 지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는 모른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저 표현의 힘 때문일까. 날씨가 쌀쌀해지고 낙엽이 질 때, 침실에 틀어박혀 책을 펼치고 싶은 것은 말이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30대는 주로 프랑스 파리에서, 40대 이후는 미국 뉴욕에서 인생을 산 1894년생 사진가 앙드레 케르테츠는 다양한 사진을 찍었다. 1920년대에는 유럽 각국의 잡지에 게재될 보도 사진을 찍었고, 1930년대에는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아 거울을 이용해 신체를 기이하게 변형한 ‘왜곡’ 시리즈를 찍기도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1940년대에는 상업사진, 보도사진 등을 찍었다. 평생 소형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은 거리의 사진가이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진을 찍었지만 케르테츠에게 ‘읽기’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던 것 같다. 그가 거의 일생에 걸쳐 시선을 두었던 대상이 바로 책 읽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1971년 초판이 발간된 사진집 ‘온 리딩(On Reading)’은 그가 50여 년간 찍은 ‘읽는’ 사람들의 사진을 모아 출간됐다. 현재는 2008년 재발간된 버전에서 그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이 사진집의 가장 오래된 사진은 1915년 제1차세계대전 당시 헝가리에서 찍은 세 아이의 사진이다. 세 아이는 서로 몸을 기대 책 한 권을 함께 보고 있다. 그중 두 명은 맨발이다. 맨발로 놀다가 책을 읽게 된 상황인지, 아니면 전쟁이나 가난과 같은 상황 때문에 맨발인 건지 사진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옹기종기 모여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파리와 뉴욕에서 찍은 사진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 중 하나는 공원이다. 파리의 룩셈부르크 공원과 뉴욕의 워싱턴 광장에서 찍은 사진들에서 사람들은 벤치, 계단, 풀밭, 때로는 그냥 땅바닥에 앉아 책의 세계에 빠져 있다. 이들은 바로 옆에서 누군가 낙엽을 바스락 밟고 가도 모를 것 같은 침잠과 몰입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거리에서 소형 카메라로 대상을 포착한 케르테츠는 특정한 정치적 의미를 드러내거나 큰 사건을 쫓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반짝이는 삶의 편린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이는 휴머니즘 사진의 특징이다. 바게트를 사서 해맑게 뛰어가는 아이를 찍은 윌리 로니스나 비 오는 날 자신은 비를 맞고 대신 첼로에 우산을 씌워준 음악가를 찍은 로베르 드와노 등이 대표적인 휴머니즘 사진가다. 케르테츠의 ‘온 리딩’은 그의 사진 가운데 이런 휴머니즘적 감수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읽는 사람들에 대한 케르테츠의 시선은 다른 사진가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우선 케르테츠의 ‘온 리딩’은 사진가 스티브 맥커리가 동명의 사진집 ‘온 리딩(On Reading)’을 내는 데 밑거름이 됐다. 스티브 맥커리는 30대 초반이던 1984년 뉴욕 5번가로 이주했는데 그가 살게 된 건물에는 마침 노년의 케르테츠가 살고 있었다. 스티브 맥커리는 2016년 자신의 사진을 모아 ‘온 리딩’을 펴내면서, 이 사진들에 대해 “케르테츠의 재능, 영향, 천재성에 대한 오마주(존경)”라 칭했다. 그는 스리랑카, 에티오피아 등까지 영역을 확장해 ‘읽기’ 행위가 인류 보편의 것임을 사진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읽기는 국적, 종교, 나이, 문화와 상관없는 보편적인 노력”이다.

또 다른 사진가 로런스 슈바르츠발트는 과거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70년대 초반, 아마도 1971년이나 1972년에 나는 케르테츠의 사진집을 보게 됐다. 그것은 당시 출간된지 얼마 안 된 책이었는데, 나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도시에서 읽는 사람들을 찍은 그의 흑백 사진에 감명을 받았고 또한 조금 질투도 났다.” 케르테츠에게 질투를 느낀 이 작가는 17년간 자신이 찍은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모아 2018년인 올해 ‘더 아트 오브 리딩(The Art of Reading)’이라는 사진집을 출간했다.


케르테츠의 사진집 ‘On Reading’. 사진 김진영
케르테츠의 사진집 ‘On Reading’. 사진 김진영

독서는 더 큰 세상으로의 몰입행위

1971년에 출간된 케르테츠의 이 사진집 한 권은 이처럼 다른 사진가들에게 작업의 영감과 동기를 심어주었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진가로 케르테츠를 중요하게 언급하는 또 한 명의 대가(大家)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케르테츠의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케르테츠가 먼저 했던 것이다.” 케르테츠가 대상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고 새로운 소재를 찾아나간 사진분야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칭송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진의 거장들에게 추앙받는 선구자 케르테츠가 사진 찍는 사람도 아니고 산책하는 사람도 아니고, 독서하는 사람을 이토록 많이 촬영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 대해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독서는 외관상 드러나는 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내적으로 몰두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표면을 찍는 사진 위에 포섭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읽는 이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대체 어떤 ‘다른’ 세상에 가 있는 것인가.

몰입해 있는 이들의 얼굴엔 어떠한 감정의 표현도 없다. 기쁘지도, 그렇다고 슬프거나 우울하지도 않은 얼굴. 그래서 마치 이들의 몸은 카메라와 동일한 현실 세계에 있지만, 정신은 책의 세계로 떠나 있다는 인상을 준다. 책을 읽는 사람과 다른 행위, 이를테면 친구와 대화하는 사람이 한 장의 사진 위에 나란히 찍혀 있을 때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현실을 망각하는 일은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거나 대화를 하는 일상의 행위에서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케르테츠가 책 읽는 사람의 모습에서 느낀 매력은 이러한 몰입 상태, 혼자이지만 더 큰 세상을 만난 모습이 아니었을까. 소설가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는 독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혼자이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케르테츠도 책 읽는 사람들을 렌즈에 담을 때 더 큰 세계로 떠나는 몰입을 경험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