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베르가모 풍경. 중세의 고풍스러운 거리와 성도 아름답지만, 오페라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베르가모 풍경. 중세의 고풍스러운 거리와 성도 아름답지만, 오페라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시원하게 뻗어있는 도로가 소실점으로 사라질 때쯤 그 위로 높이 솟아오른 옛 성곽이 탄성을 자아낸다. 고풍스러운 성의 탑 그리고 성당의 돔 지붕이 마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상시키듯 하늘에 붕 떠 있는 듯하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차로 약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베르가모다. 이웃 밀라노의 국제적인 유명세에 다소 밀려있지만, 이곳 구시가지가 주는 중세의 고풍스러운 거리 풍경과 성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 꼭 가봐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신이 오페라 팬, 특히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추종자라면….

현재 베르가모는 이 도시가 낳은 최고의 아들이라 할 수 있는 오페라 작곡가 도니체티에게 헌정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를 걷다 드문드문 마주하게 되는 도니체티 동상, 도니체티 음악원, 도니체티 극장, 도니체티 거리, 또 심지어 빵집에 맛깔스럽게 진열된 도니체티 케이크까지. 어쩌면 그가 이 도시의 수호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의 삶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빛났던 것은 아니었다. 1797년 가난한 전당포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난 도니체티는 베르가모 성 근교에 자리한 어두운 반지하 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음악가가 되기를 열망했지만, 집안 형편을 이유로 법률가가 되길 원했던 부모와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후에 그가 작곡가로 데뷔한 후 그의 오페라 공연뿐 아니라 심지어 결혼식에도 부모를 초대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부모의 후원 없이 홀로 직업군인으로 입대해 생계를 유지하며 학업을 이어 나갔다고 하니 음악을 향한 그의 열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베르가모 음악원에서 수학 후 볼로냐에서 작곡을 배우며 1816년 19세의 나이로 오페라 ‘피그말리온(Il Pigmalion)’을 발표하며 작곡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베네치아로 건너가 직업 작곡가로서의 데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오페라 ‘엔리코 디 보르고냐(Enrico di Borgogna·1818년)’를 발표했고 눈을 감기 전인 1848년까지 무려 71편에 달하는 오페라를 작곡해, 그중 상당수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특히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관람한 관객이 보여준 폭발적인 호응은 도니체티 자신뿐 아니라 당시 오페라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사랑의 묘약’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공연됐으며 1838년부터 1848년까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로 기록됐다고 한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받았던 직함과 동일한 당시 유럽 음악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합스부르크의 궁정음악가 칭호를 받았다고도 전해진다.


베르가모 도니체티 극장 앞에 있는 도니체티 동상.
베르가모 도니체티 극장 앞에 있는 도니체티 동상.

겨울마다 열리는 도니체티 페스티벌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유럽을 무대로 왕성히 활동했던 그는 오래 앓았던 성병인 매독 증세가 심해져 말년에는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베르가모로 돌아와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는데, 시간이 흐른 후 베르가모는 그를 기리기 위해 지금도 겨울 시즌에 도니체티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페스티벌에서는 앞서 말한 ‘사랑의 묘약’뿐 아니라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돈 파스콸레’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다채롭게 공연되기 때문에 오페라 팬으로서는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유려한 벨칸토 선율 도니체티의 명반

가에타노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

‘사랑의 묘약’은 당대 최고 인기작일 뿐 아니라 현대에도 자주 공연되는 작품으로 꼽힌다.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 짙은 멜로디 라인이 돋보이는 그의 음악은 아리아에서 단연 벨칸토 창법과 함께 도드라지는데,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이 그 예를 잘 보여준다. 영화, 드라마에도 쓰여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익숙한 노래다. 파바로티와 프레니의 음원으로 소개해본다.


가에타노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현대 오페라사에 길이 남을 두 명의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와 주세페 디 스테파노. 그들의 호흡이라니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그들의 벨칸토 창법에 담긴 감정은 마치 듣는 이의 심장을 삼켜버릴 것처럼 강렬하다. 도니체티의 걸작이면서도 이들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세계 평론단의 극찬을 받은 1955년도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