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30여 년간 1만2000여 명의 속마음을 듣고 나누었다. 사진 김지호 객원기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30여 년간 1만2000여 명의 속마음을 듣고 나누었다. 사진 김지호 객원기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의 책 ‘당신이 옳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의 책 ‘당신이 옳다’.

하루가 멀다고 ‘엽기적 갑질’이 사회면 뉴스를 도배하고,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정신과에서 발부받은 ‘우울증 진단서’를 면죄부로 들이민다. 공감과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관계를 단절하고 ‘존재를 꺼버린’ 정신적 사망자는 날로 늘고 있다. 바야흐로 모두가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듯한 집단 히스테리의 날들이다.

최근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출간한 정혜신을 만났다. 정신과 의사로서가 아닌 이 사회 응급의학과 전사로서다. 그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상담하고 약물을 처방하는 일괄적인 방식으로 이 사회의 ‘곪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었다. 정혜신은 ‘자신의 고통을 진지하게 대해 주길 바라는 개별 욕구’에 집중하면,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는 걸 알았다.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사람의 마음을 만져 정체성을 회생시키는 이 기법을 그는 ‘심리적 심폐소생술’이라고 이름 지었다.


‘자기 소멸’을 겪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희미해진 나’라는 표현이 크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런 공기에 덮여 있지 않나. 실패한 사람, 성공한 사람, 다 마찬가지다. 가만 보면 사회적 성공은 ‘자기 억압’의 결과다. 성공한 사람은 다른 말로 나를 지우고 조직에 부응하는 촉을 발달시킨, 일종의 뛰어난 생존자다.”

사회적 성공이 치러야 하는 혹독한 대가가 ‘자기 소멸’인가.
“그런 셈이다. 나는 지난 15년 동안 병원이 아닌 ‘상담 공간’에서 대기업 CEO, 정치인, 법조인 등 수많은 사회 지도층의 속마음을 들었다. 고도의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일관된 패턴이 있다. 처음엔 리더십 등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다 점점 자신의 부족함에 직면한다. 그다음엔 부부 갈등이고, 결국 ‘자식과 갈등’이라는 공통분모에 이른다. 아이러니한 게 성공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은 공통으로 ‘자기 소멸’의 위기를 겪는다.”

정혜신은 성공한 부모를 둔 자식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분노와 좌절을 느끼지만, 혜택받은 자들은 또 그 내부에 자기 고통이 있다는 거다. 그는 “부모가 가진 게 많아서 자기가 희미해져 버리는…. 외형적으론 행복해 보여도 한 존재로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셈”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다. ‘금수저’를 만드느라 애썼는데 정작 아이는 자신을 ‘투명 수저’로 느끼다니.
“장성한 아이가 부모와 맞서거나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취한들 뭐하나. 사회적 성공은 외형일 뿐, 존재 그 자체는 아니지 않나. 그런데 그 외형으로 상대를 흔들고, 상대는 그것에 압도당하니 서로가 안전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거다. 결국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다 피해자다. 존재 그 자체에 집중하지 못해서다.”

당신 자녀들은 어떤가. 케임브리지대에 들어간 아이, 고졸에 전자제품 판매원을 하는 아이, 대졸에 무직인 아이…. 세 자녀의 삶이 다양해서 놀랐다.
“큰아이는 대학에 안 가겠다고 하더라. 그 애는 살면서 책 읽는 걸 못 봤다(웃음). 지금 전자제품 판매 일을 하는데, 사는 데 지장 없고 사회적 상식이 충분하고 균형 감각이 좋다. 케임브리지대에 합격한 막내는 지적인 욕구가 많고 공부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 막내는 어릴 때 자폐아가 아닌가 할 정도로 사회성 발달도 느리고 말도 느리고 친구도 없었다. 영국의 ‘서머힐학교’가 건강한 공동체라고 하기에 거기에 보냈는데 4~5년간 수업에 안 들어가고, 그네 타고 나무 타고 놀더라. 오죽하면 열두 살에 한국에 와서도 패밀리 레스토랑 메뉴에 있는 ‘애플 주스’를 못 읽었다. 거기 선생님이나 나나 기대치를 낮추고 그냥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그 아이가 늦게 트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친구를 사귀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세상에 호기심을 갖더라.”

그 어리바리하던 아이가 서서히 자기 일상을 건사하더니, 혼자 집을 구하고 대학을 알아보고 진로를 찾았다. 대학을 졸업한 둘째 딸은 비정기적인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하며 구직 중이라고 했다.

놀랍긴 하지만 일반적인 사례는 아닌 듯하다. ‘자율성’을 우선한 대안학교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와 혼돈을 겪는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렇지 않다. 충분히 그 존재를 인정받고 사랑받은 아이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기성 사회가 힘들고 부당하다고 느껴도 피난처가 있는 아이는 현실을 피하지 않는다. 어떤 모습이든 ‘네가 옳다’라고 충분히 인정받고 자라면, 세상을 견딜 에너지가 충분해진다. 나는 진짜 오래 막내를 기다렸다.”

오래 기다린 보상을 받은 건가.
“어쩌면 기다렸다기보다는 그 아이 자체로 자기 모습을 찾은 거다. 지금 이런 모습이 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나는 상관없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아이들 때문에 에너지가 소모되지는 않았다.”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해준 말은 무엇인가.
“말해주지 않았다(웃음). 묻고 들어줬다. 요즘 네 마음이 어떠니? 어떻게 지내니? 불편한 건 없니? 등등.”

정혜신은 대화 중에 ‘에너지가 남는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에너지가 남는다’는 말은 ‘지갑에 돈이 마르지 않는다’는 말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그렇게 나누고도 에너지가 남는다면 체력과 정신력이 남다른 건가.
“(웃으며) 다들 자기 기가 빨리는 소모처가 있다. CEO들은 자식과 전쟁을 치르며 투쟁하듯 산다. 어떤 사람은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고. 나는 그럴 일이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하고 정리해야 에너지 낭비가 없다. 그 비결이 ‘존재’ 그 자체에 주목하는 거다.”

존재란 무엇인가.
“내 마음, 내 느낌, 끊임없이 변하는 나의 감정이다.”


자기 존재를 민폐로 인식하는 청년들이 의외로 많다. 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스펙이 감정이다. 정혜신은 감정이 존재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사진 김지호 객원기자
자기 존재를 민폐로 인식하는 청년들이 의외로 많다. 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스펙이 감정이다. 정혜신은 감정이 존재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사진 김지호 객원기자

재미 철학자 전헌 선생도 ‘자기 감정을 아는 것이 철학의 전부’라고 했다. 서양 철학자 스피노자는 48가지 감정을, 동양 철학자 퇴계는 ‘희로애락애오욕’7가지 감정을 핵심으로 인간을 설명했다. 하지만 철학이 아닌 정신의학을 전공한 당신이 ‘네 존재가 곧 감정이다’라고 하는 말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근원적 코드는 존재에 대한 주목이다. 존재는 감정이고 ‘감정이 옳다’는 건 생각이나 행동이 옳다는 말과는 또 다르다. 풀이하면 ‘네가 그럴 땐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 즉 ‘네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이다. 어린 시절에 학대받은 사람은 부모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연민도 있다. 적개심과 무력감이 동시에 오는 거다. 마음은 상호모순적이다. 날씨처럼 예보도 힘들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본질이다. 그렇게 변화무쌍한 게 사람 마음이고, 그 모든 게 그 사람의 삶이다. 그 존재,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관계에 평화가 온다. 그저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이렇구나’라며 추궁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존재가 살아난다.”

병명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의료 전문인인 당신이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2003년쯤부터 진료실을 벗어나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환자가 아닌 상처받은 사람을 만난 건 나에게 도전이자 축복이었다.”

어떤 계기로 의사가 진료실을 나왔나.
“IMF 때 대규모 실업에 관한 보고서를 쓴 게 계기가 됐다. 당시에 나는 실직자가 아니라 직장에 살아남은 생존자에게 초점을 맞췄다. 전쟁터에서 동료가 죽고 살아남은 자들은 심각한 죄의식과 불안에 시달린다. 남은 자들은 생존에 더 치열해진다. 새벽부터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자기 안전에 절대적인 에너지를 쏟는다. 마구 달린 다음엔 수순처럼 냉소가 찾아온다. 그 보고서를 발표한 후, 기업으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남은 사람들의 심리를 살펴봐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때부터 진료실의 환자가 아닌 보통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정신과 상담 경험을 글로 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인기다. 전문가의 책보다 일반인의 에세이가 더 환호받는 이유가 뭘까.
“환자들은 대기실에 앉아서 듣는 정보를 가장 신뢰한다(웃음). 따지고 보면 의사와 환자는 반치유적인 구도다. 나는 전문가가 치유하는 게 아니라 치유하면 전문가라는 생각을 한다.”

정신과 전문의가 듣기엔 불편한 발언일 수 있다.
“요즘의 정신의학계는 문제가 많다. 정신 산업과 연계돼 문턱이 낮아졌고 과잉 진단도 잦다. 미국표준진단체계(DSM-5)에 따라 체크리스트 몇 개에 해당하면 쉽게 우울증 진단을 내린다. 잠 못 자고 입맛이 없고 좀 불안하다고 하면 우울증이라는 거다. 진단 해악이 미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현실에선 우울증 병력의 범죄자들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진단이 휴지통이 돼 버렸다. 몇 해 전 독일 항공사 부기장 루비츠가 비행기를 추락시키는 바람에 150명이 죽었다. 그 원인을 우울증으로 내렸다. 난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150명을 죽인 사람이나 끔찍한 흉악범이나 소심한 불면증 환자가 다 우울증인가? 말이 안 된다. 마음의 감기도 마음의 암도 다 우울증이라면 그건 정말 게으르고 변별력 없는 진단이다.”

그럼 우울증 진단은 어떻게 내려져야 하나.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없어지길 바란다. 우울은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모든 인간은 그 위에 개별적인 존재이고 감정은 날씨처럼 움직인다. 존재의 개별성에 주목하지 않으니 소외가 생기는데, 의사들이 핵심은 외면하고 우울증약만 처방해준다. 그래서 의사에게 화가 난 사람들이 스스로 책을 쓰고 자신을 위로한다. 나 자신이 포함된 한국 정신의학의 현주소다.”

프로이트가 오면 지금 이 상황을 뭐라고 할까.
“글쎄. 뭐라 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의 좌절에 대해 들어줄 참이다. 듣기 시작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니까.”

하지만 또 그 듣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듣다가 못 참고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욕구가 발동해서 그렇다. ‘충조평판’만 안 해도 성공이다. 끊지 않고 들어주기만 하면, 상대가 다 알아서 정리한다. 말하는 사람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내 마음을 궁금해하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은 치유된다고 했는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 주변에 없더라도 그런 존재를 떠올리고 인식하는 것만으로 치유가 시작된다. 만약 없다면, 내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돼주라. 보통은 내가 가장 먼저 자신에게 가혹한 타자가 되기 쉽다. 스스로 ‘왜 슬프지?’ ‘그랬구나’라고 묻고 들어주라.”

‘옳다’라는 말은 ‘괜찮다’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옳다’라는 말은 체중을 실은 말이다. 온몸으로 존재를 덥석 안는 거다. 부모가 못나도 죄를 지어도 아이는 평가하지 않는다. ‘엄마 아빠 좋아!’ 하면서 끌어안는다. 그래서 열등감으로 시선을 피하는 사람도 아이 눈은 쳐다본다. 안전하다고 느끼니까. ‘괜찮다’가 엄마의 시선이라면 ‘옳다’는 아이의 시선이다. 부모는 아이를 버려도 아이는 부모를 못 버린다. ‘당신이 옳다’라는 믿음은 그만큼 강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