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네포차
영업 시간 17:00~02:00
대표 메뉴 매콤달콤한 양념에 짙은 깻잎 향과 센 불의 맛이 어우러진 오돌뼈

갈데포차
영업 시간 17:30~손님이 모두 나갈 때까지
대표 메뉴 박속 탁탁 썰어넣은 시원한 박속연포탕


학교 뒤편엔 루체른 호수가 흘렀다. 난 루체른 호수의 깊고 널따란 품에 반해, 매일 끝에서 끝으로 걷고 걸었다. 아침 호수의 안개구름은 깃털 이불처럼 나를 어루만지고 포개고 감쌌다. 바람의 입김이 일으킨 호수의 투명한 파동은 내 마음까지 흘러 나부꼈다. 선명한 햇볕에 호수가 빛날수록, 잘려 나간 내 영혼의 그루터기가 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호수 위엔 흰 백조가 떼를 지어 흐르고 나뭇잎을 닮은 나룻배와 통통거리는 외륜선이 떠다녔다.

저녁이 내리면 강 너머 산자락에 올라 앉은 집들이 불을 밝혔다. 어둠이 누적될수록 빛은 늘었다. 자라난 내 영혼의 줄기는 저 너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꽃을 피웠고 꽃잎으로 서신을 보냈다. 이름 모를 그리움을 떠나 보내고 이름 모를 이에게 안녕을 바랐다. 차곡차곡 쌓인 불빛들이 하나 둘 꺼지면, 나는 나의 작은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났다. 늘 그렇듯 가을이 왔다. 어느새 잎새들은 물들어 한숨처럼 땅으로 제 몸을 떨군다. 망각했던 그리움은 발 밑에서 바스락 비명을 낸다. 그래, 소주를 마셔야지. 호숫물만큼 마시면 저 너머 너에게 가 닿을까. 술기운에 계속 걷다 보면 우연히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또다시 전망 없는 미래를 그릴 재간이 없어 마음을 잠근다. 소주를 마셔야지. 소주를 막 마셔야지.


이모네포차의 석화. 바다향기가 물씬 난다. 사진 김하늘
이모네포차의 석화. 바다향기가 물씬 난다. 사진 김하늘

만장일치 오돌뼈, 이모네 포차

잠원역 4번 출구, 네모난 불빛이 켜켜이 쌓인 아파트 단지에 어울리지 않게 외딴섬처럼 자리 잡은 작은 포장마차가 있다. 회색 천막을 뒤집어 쓴, 변변치 않은 행색이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날 기다려 온 것만 같다. ‘비니루’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주 한 잔에 온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빼곡히 둘러 앉아 있다.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수족관엔 전어와 오징어가 노닌다. 백색의 종이 위에 쓰여진 ‘연중무휴’ 네 글자에 근면한 기개가 느껴진다.

소주병의 목을 조른다. 처음 석 잔은 마중물처럼 마신다. 그다음부터는 알아서 가속도가 붙는다. 투명하게 헤엄치던 오징어는 토막이 났다. 수평선을 가르던 전어의 지느러미는 불에 타버렸다. 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죽는 것일까. 그때 가지지 못한 그는 기억 속에 묻히고, 물 속을 가르던 그들은 내 뱃속에 묻혔다.

외풍이 벽에 스민다. 계절이 가슴에 엄습한다. 연거푸 퍼붓는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석화와 오돌뼈에 소주 한 병 추가. 웬만한 외투보다 소주 한 잔이 더 뜨겁다. 다시는 그때처럼 뜨거워지지 못할 테니까, 마시고 또 마신다. 두껍고 거친 껍데기 안에 담긴 굴은 마치 안전하고 안락한 요람에 안긴, 영롱하고 보드라운 갓난 아이를 보는 것 같다. 젓가락 끝으로 생굴을 끌어내 입 속으로 호로록 당겨 넣는다. 융단으로 된 면발을 집어 삼키는 것처럼 부드럽다. 바다를 품은 짜릿한 감칠맛이 소주를 당장에 끌어온다. 껍데기만 남은 석화에 소주를 붓고 남은 굴의 체취를 악착같이 긁어 마신다. 빨갛고 빛나는 오돌뼈는 열이면 열 모두 만장일치시킬 만큼 명료하다. 매콤하고 달콤한, 질펀한 양념에 짙은 깻잎 향과 센 불의 맛이 덧씌워졌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다.

가이바시(조개관자), 오도리(보리새우)부터 치킨변하우스(닭똥집), 닭발, 삼계탕까지 이모가 만드는 안주는 대략 50여가지에 달한다. 사람들의 에누리 없는 구미를 맞추려면 이쯤은 돼야 한다. 끝 모르는 허기를 채우려면 이쯤은 돼야 한다. 메뉴에 없는 것들도 찾으면 있다. 김가루가 듬뿍 얹어진 우동, 계란 풀린 꼬들꼬들한 라면에 묵은 김치까지. 게다가 소주가 3000원. 소주를 마시자. 막 마시자.


갈데포차의 박속연포탕. 말갛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사진 김하늘
갈데포차의 박속연포탕. 말갛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사진 김하늘

‘씨원씨원한’ 박속연포탕, 갈데포차

사랑할수록 미워지고, 미워할수록 사랑하게 되는 게 어디 사람뿐이랴. 만나고부터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후회해봤자 늘 2% 부족하다. 딱 한 잔만 더 하자.

나뭇잎으로 치장하고 알전구로 불을 밝히고 락카로 간판을 갈겼다. 허름하다 못해 못내 주저앉을 것 같지만 가마솥도 걸렸다.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박속낙지, 연탄 꼼장어, 가마솥 통닭, 만두, 찐빵 등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메뉴 구성이다. 칸칸이 얽어낸 듯한 가게 안에는 주렁주렁 박이 열렸다. 가게 한 구석엔 난로가 끓고 있다. 주인은 살갑고 친절하다. 몸이 녹는다. 마음이 녹는다.

메뉴 앞에서 고민할 것 없다. 나박나박 썬 박속을 우린 ‘씨원씨원’하고 개운한 국물에 꿈틀대는 가을 산낙지를 통째로 넣은 연포탕, 박속낙지 한 냄비를 시킨다. 모자란 배를 채우고 남은 주력을 돋우고 해장까지 당겨 할 수 있다. 끓어오르는 맑은 국물에 힘이 뻗치는 산낙지를 투하한다. 그대여, 아무리 힘주어 발버둥쳐봐도 소용없다. 네 처연한 죽음에 소주 한 잔을 바친다.

먹물이 국물을 해치지 않도록 머리는 따로 잘라둔다. 말간 국물을 후후 불어 한 입 떠먹으면, 내장 구석구석에 낀 때가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조개 따위도 거들 필요없다. 소주로 휘갈긴 속에 박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소주 일 병을 더한다. 낙지 머리에 일 병, 몸통에 일 병, 다리에 일 병을 더한다. 자꾸 자꾸 마신다. 자꾸 자꾸 보고 싶다. 소주를 마셔야지. 소주를 막 마셔야지.

늘 그렇듯 가을이 왔다. 꽃으로 흘려 보낸 서신이 낙엽이 돼 날아왔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