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여성 마르타의 초상(왼쪽). 사진 밑에는 마르타가 경험했던 낙태에 대해 적혀있다. 오른쪽은 마르타가 낙태를 위해 입었던 원피스와 태아의 사진. 사진 김진영
폴란드 여성 마르타의 초상(왼쪽). 사진 밑에는 마르타가 경험했던 낙태에 대해 적혀있다. 오른쪽은 마르타가 낙태를 위해 입었던 원피스와 태아의 사진. 사진 김진영

연말이 되면 각종 분야에서 시상식이 개최된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방송사 시상식이다. 그 외에도 잘 생각해보면 뮤직 어워드 등 각종 분야에서 한 해에 돋보이는 활약을 한 인물이나 팀, 혹은 작업에 상을 수여한다.

국내에는 없다 보니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해외에는 사진집 시상식도 열린다. 대표적인 시상식으로는 ‘파리포토페어’와 함께 개최되는 ‘파리포토/아페처(Aperture) 북어워드’ ‘아를(Arles) 사진 축제’와 함께 개최되는 ‘아를(Arles)포토 북어워드’ ‘카셀(Kassel)포토 북페스티벌’과 함께 개최되는 ‘카셀(Kassel)포토 북어워드’ 등이 있다. 한 해에 출간된 사진집 가운데 후보작을 선정해 전시하고 그중 수상작에 상과 상금을 수여한다.

이 가운데 가장 큰 행사는 매년 11월 파리 그랑팔레(Grand Palais‧파리 8구에 있는 박물관 겸 전시장)에서 열리는 파리포토 북어워드다. 1997년부터 시작돼 가장 규모가 큰 사진 페어로 자리 잡은 파리포토엔 세계 각국의 갤러리와 출판사가 참여한다. 파리포토 기간에는 사진가, 출판사, 갤러리, 사진 애호가 등 사진을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이 파리로 모인다. 필자 역시 새로운 사진을 보기 위해 매년 파리포토 기간에 파리를 방문한다.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개최된 이번 파리포토에서 사진집 상은 세 부문으로 나눠 수상자를 발표했다. 첫 번째는 올해의 도록(圖錄) 부문(The Photography Catalogue of the Year Prize)으로 전시와 함께 발간된 책이 후보에 오른다. 이 부문에선 아르메니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의 국경지대와 폐허에서 30여 년간 사진을 찍은 우르슬라 슐츠 돈버그의 ‘경계의 땅(The Land in Between)’이 수상했다. 두 번째는 올해의 데뷔작 부문(The First PhotoBook Prize)으로 처음으로 공식 유통되는 책을 낸 작가의 사진집이 후보가 된다. 이 상은 미국에서 흑인의 삶을 작가의 사진, 아카이브 이미지, 텍스트를 혼합해 만든 스탠리 울루카우 와남브와의 ‘하나의 벽면(One Wall a Web)’이 수상했다.

음악 시상식으로 치면 올해의 음반상, 영화 시상식으로 치면 올해의 작품상 같은 부문은 바로 세 번째인 올해의 사진집(The Photo Book of the Year Prize) 부문이다. 이 상의 영광은 여성의 임신, 낙태와 관련한 역사적 자료와 동시대 여성의 경험을 담은 라이아 아브릴의 ‘낙태에 대하여(On Abortion)’가 수상했다.

라이아 아브릴은 거식증, 무성애(타인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거나 현저하게 낮은 경우) 등 여성의 성(性)과 관련된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온 스페인 작가다. 그녀는 자신이 여성이 처한 열악한 성적 현실에 관해 언급할 때마다 ‘오늘날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반응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라이아 아브릴은 ‘정말 그럴까’라고 반문한다. 그녀는 오히려 오늘날의 상황을 과거보다 나아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그녀는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끝내기 위해 ‘불법 낙태’를 선택해야만 하고, 이 과정에서 노출되는 위험으로 인해 매년 4만7000명이 죽고 있다고 말한다.


파리포토 북어워드에서 사진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 김진영
파리포토 북어워드에서 사진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 김진영

과거의 자료로 오늘날의 현실 보여줘

그녀는 낙태를 중심으로 한 과거와 오늘날의 연속성을 어떻게 사진집에 담았을까. 우선 그녀는 이 사진집에 낙태와 관련된 역사적 자료 이미지를 포함시켰다. 대표적으로는 오스트리아 빈의 피임 낙태 박물관(Museum of Contraception and Abortion)의 자료 이미지가 있는데, 이 이미지는 과거 낙태 수술을 할 때 사용했던 가정용 기구들을 보여준다. 태아를 끄집어내기 위한 긴 가위나 액체가 담긴 병 등을 보면, 이 도구들이 낙태 수술에 사용됐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과거의 자료가 오늘날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동시대를 사는 다양한 여성들의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한 사례를 보자. 폴란드에 사는 28세 마르타의 사진 아래에 그녀의 경험이 적혀 있다. 폴란드는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낙태가 불법이어서 그녀는 슬로바키아에서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15시간을 이동했다.

사진집을 보는 이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을 가득 태우고 낙태 전문 클리닉으로 가던 차량의 여정이 담긴 지도, 마르타가 수술 때 입기 위해 가져간 평소 싫어하던 원피스 사진 등과 함께 그녀의 진술이 담긴 텍스트로 간접 경험을 한다. 마르타는 낙태를 반대했고 현재는 헤어진 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가 (차량의) 숨막히는 답답함을 말했더니 그는 대답했다. ‘그게 맞아. 살인자는 가축처럼 대우받아야 해’.”

마르타가 중절 수술을 받을 때 사용된 기구는 박물관에 보관된 기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라이아 아브릴은 낙태를 소재로 과거의 자료와 현재 여성의 경험을 효과적으로 연결한다. 그녀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여줌으로써 여성의 성적 상황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분명하게 개선되지 않음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도록 했다”고 말한다.

이번 파리포토 북어워드의 대상을 받은 이 사진집은 사람이 기꺼이 보고 싶어 하는 것과는 먼 것을 다뤘다. 아름답거나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 피하고 싶고 껄끄러운 무언가 말이다. 이는 상이라는 제도의 순기능 중 하나일 것이다. 포토 북어워드에 후보로 오르거나 선정되는 사진집들은 베스트셀러는 아닐지라도, 주목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물론 상이 전부가 아님은 두 말할 것 없을 것이다. 큰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좋은 사진들은 많다. 그래서일까. 연말이 되면 해외의 사진가나 큐레이터 등은 각자가 꼽은 올해의 베스트 사진집을 발표한다. 때로는 그 리스트가 겹쳐 어떤 한 책이 북극성처럼 그 해 가장 밝게 빛나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책이 어느 한 사람만의 리스트에 자리 잡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관심과 사랑이 더해져 사진집의 우주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