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뜨거운 여름 한때, 토마토에 푹 빠져든 적이 있다. 과일인지 채소인지 알 수 없는 저 빨간 녀석이 왜 내가 좋아하는 열매들 목록에서 제외됐는지 의아해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하굣길 충동적으로 사들인 10개의 토마토를 집에서 마음먹고 먹기 시작했다. 의식이라도 치르듯 경건한 자세로 그중 제일 빨갛고 눈에 띄는 녀석을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껍질이 터지는 순간 흘러나오는 과즙. 달다고 하기에는 무겁고 시다고 하기에는 두꺼운 맛. 탄력 있는 껍질 너머 자리 잡은,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은 육질. 그 안에서 몽글몽글 떠오르는 말랑한 알갱이들.

하나, 둘, 먹어 치워가고 배가 어느새 불러오고 있는데도 토마토가 맛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붉고 가지런한 토마토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갔고 어느덧 기묘한 변화가 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토마토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 밥 먹는 것이 버거워질 정도로 토마토를 먹어댔다. 그렇게 한 달을 토마토와 함께하자 토마토를 향한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당분간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고 그것은 일종의 안도감을 불러왔다. 한동안은 토마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으리라.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 사람과 담배

그리고 담배. 내가 담배를 배운 것은 나의 첫 남자친구를 통해서였다. 그의 권유로 처음 그것을 빨아 폐 속으로 넣었을 때 뒤로 고꾸라졌다. 어처구니없이 무너지고 만 내 모습이 낯설어서, 의연해질 때까지 피워주겠다고 결심했다. 담배를 피울 때마다, 나의 친구들은 “야, 서희야, 너 담배 피우는 거 안 어울려”라고 거듭 말했지만, 나는 더 꿋꿋하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금세 시들해졌지만 말이다.

담배 피우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 건 프랑스 유학을 시작하면서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료한 일상에 점차 숨이 막혀오던 어느 날 문득, 호흡 불가능한 지점을 쉼표처럼 찍고 넘어갈 도구로 담배를 떠올렸다. 지루한 일상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덤덤하고 싱거운 나날을 진심으로 즐겼다. 말간 흰죽에 매콤한 후춧가루를 뿌려주듯, 담배를 피웠다. 프랑스의 유난히 비싼 담뱃값 덕분에 깊은 숨을 한 번에 몰아쉴 수는 없었지만. 대신 담배 한 대를 두세 번에 나눠서 피우곤 했다. 담뱃갑에서 희고 말끔한 담배 한 대 꺼내서 불을 붙이고는 서너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가 조심조심 불을 꺼서 보관했다. 몇 시간 후 다시 생각이 나면 차갑게 식어버린 담배 끝에 다시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눅눅하고 텁텁한 맛이 목에 턱 걸리듯 느껴졌지만, 두어 모금 빨아들이다 보면 괜찮아졌다. 더는 연기를 빨아들일 수 없을 만큼 짤막해진 꽁초는 운동장에서 시구라도 하듯 거리로 내버렸다. 파리의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 중 가장 짜릿한 부분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꽁초가 내 손목의 가벼운 스핀을 받고 훨훨 날아가 버리는 찰나, 해방의 느낌이 불꽃처럼 터졌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면 그만, 나도 담배도 서로를 충분히 소비한 채 각자의 길을 가 버리는 셈이었으니까. 그렇게 담배는 일탈과 자유의 동의어가 됐다.

무료한 잿빛 나날이 구분 없이 이어질 무렵, 나는 토마토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 잊을 만하면 등장해서 내게 빨간 핏빛과 같은 충격을 던져주었던 그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했다. 첫 마주침부터 그를 이미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 느낌에 시달렸다. 맨 처음 만난 곳을 알 수 없어 골몰하게 했던 그를 1년간에 걸쳐 학교와 극장, 또 버스정류장에서 거듭 마주쳤다. 세 번째 마주친 날 그는 내게 말을 걸었고 그날 밤 우리는 첫 번째 산책을 했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오래전 만난 적이 있지 않으냐고. 너무 뻔한 접근으로 여겨질까 끝끝내 묻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늘어나면 날수록 그를 처음 만난 곳을 떠올리려 했던 것이 그의 얼굴을, 그의 시선을, 손길을, 마음을 거듭 생각하게 했다.

알 수 없는 것은 내게 종종 치명적 존재로 변했다.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이나 기호가 정리될 때까지 몰입해야만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같이 등장하는 존재는, 바로 토마토였다. 그 알 수 없는 맛만큼 치명적인 것이 있을까. 알 수 없으니 초조했고 또 맛보아야만 했다. 나의 토마토맨은 그와 같은 모호함과 무심토록 위험한 붉은빛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시작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 붉은빛이 나의 무채색 세상에 차츰 번지고 있었다.

나는 토마토맨을 생각하며 담배를 피우곤 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의 중독은 토마토맨보다는 담배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담배를 쑥 빨아들일 때면, 목구멍이 다소 쓰라린 느낌은, 긴 여행 중에서의 우연한 하차, 혹은 수신인이 바뀐 편지, 그러나 한 편의 시처럼 가슴에 꽂히는 사랑의 말과 같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중독되고 빠졌던 것은 토마토맨이 아닌 담배의 기다림이었다.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 아슬아슬하지만, 하늘과 땅 사이를 뒤집듯 오가는 주문을 기도하듯 되뇌면서 나는 계시와도 같이 떨어질 선명한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스물여섯 살의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의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었다. 그와 내가 행복한 것은 내가 그를 어디에서 맨 처음 만났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이 내 손을 감싸 쥐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녹아들 듯 달콤하고 아늑한 기분이었다.


나의 전부이지만 사랑은 뜨겁고 허무해

행복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길이 어느새 눈앞에서 뚝 끊겨 있었다. 다리가 부러지듯 동강이 난 길 앞에서 우리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할 수 있어? 우리가 만난 곳은 바로…” 미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는 길이 끝나는 지점 너머의 아득한 허공 속으로 빨려 들듯 사라졌다. 나는 그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첫 만남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꿈의 시작부터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믿었던 우리의 첫 만남조차 감쪽같이 잊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눈을 뜨니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고 밤은 여전히 지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뚫고 지나갈 수 없을 것같이 깊고 빽빽한 밀림처럼 밤은 내 앞에 놓여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창을 열고 희고 깨끗한 새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어야 했다. 사랑은 가끔 계시처럼 찾아온다. 어마어마한 진리 혹은 내 전부를 둘러싸고 있는 절대자의 존재처럼 홀연히 알게 된다. 나는 그때, 알아버렸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뿐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어느덧 토마토맨에게도 무심해졌다. 그를 사랑하는지 않는지가 이제는 내 삶에서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무심함이 극복을 의미하지 않듯, 눈앞에 붉게 잘린 토마토를 보면 깜빡 잊은 숙제처럼 먹어버리듯, 그에게 어쩌다 연락이 올 때면 며칠을 참지 못하고 답을 보낸다. 살면서 혼란스러울 때면 무심코, 깊고 허탈한 담배의 감각을 떠올리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혼돈과 기다림의 반복 속에서 토마토와 담배를 내 유전형질 속에 각인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뜨겁고도 허무한 지난 감각과 함께.


▒ 이서희
서울대 법대를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학교 ESEC 졸업, 파리3대학 영화과 석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