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식이네집
영업시간 11:30~21:30 명절 당일 휴무
대표메뉴 직접 키우고 절이고 담그고 숙성한 열가지 반찬, 구수하면서도 걸쭉한 청국장

닭내장집
영업시간 10:30~22:30 첫째주·셋째주 목요일 휴무
대표메뉴 대파와 깻잎순이 잔뜩 올려진 닭내장탕과 청양고추향이 풍기는 닭발

신흥떡볶이
영업시간 매일 10:00~20:00 재료소진시 조기마감
대표메뉴 1인분에 2500원 밀떡 떡볶이

전통모래내갈비
영업시간 12:00~23:00 명절 휴무
대표메뉴 달착지근하면서도 촉촉하고 부드러운 돼지갈비


한줄기 비가 내렸다. 공기는 가뿐하고 걸음은 사뿐하다. 점심을 먹으러 동네를 옮겨 가좌역에 내렸다. 모래내시장으로 향한다. 낡은 리어카 위엔 눈깔만한 사탕들이 한 바구니씩 담겨 있다. 파라솔 밑엔 살구·산딸기·참외 등 여름 과일들이 단내를 풍긴다. 시장 구경은 뒤로 하고 먹자골목 입구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잔치국수부터 우동·돼지갈비·설렁탕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 않고 찾는 곳이 있다.

‘전라도 식이네집’, 이름만 들어도 침샘이 차오른다. 가게 앞으로 마음이 달음박질친다. 목구멍에서 손이 툭 튀어 나와 젓가락을 쥔다. 청국장·비지찌개·추어탕·갈치조림·묵은지두루치기·홍어삼합·옻오리백숙 등 메뉴가 30가지에 달한다. 결혼 전, 이 집의 20년째 단골인 남편과 마음과 입맛을 맞췄다.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도장이라도 깨는 듯 모든 메뉴를 섭렵했다. 섭섭지 않은 양과 농후한 맛으로 그 어떤 메뉴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집에서 상을 차릴 땐 갖은 양념 없이 간결한 맛을 뽑아내려고 유난을 떨지만, 나는 결국 귀향하듯 이 집을 찾는다. 40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주인의 정성과 그 손맛을 입안에 담으면, 방학을 맞아 시골 외가에 온 것만 같다.

“엄마!” 처음부터 그렇게 불렀다. 정확히 말하면 청국장을 먹고 난 뒤부터다. 서울에서 맛본 청국장은 색채가 없는 풍경처럼 멀겋고 냄새가 나지 않아 매번 탐탁지 않았다. 공격적이지 않지만 코리면서도 구수한 냄새와 걸쭉한 식이네 청국장은 딱 그리워하던 정도의 그것이었다. 

푹 퍼진 메주콩과 두부, 그사이에 감칠맛을 품고 있는 바지락까지. 소탈하지만 꼼꼼하다. 청국장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담가 폭삭 묵힌 김장김치와 쪽파김치, 갈치속젓에 쏙쏙 박은 고추지, 여름의 청량함을 앙다문 오이소박이, 쫄깃한 꼬막살 무침, 물컹한 즙을 품은 가지 무침, 알싸한 도라지 무침, 건새우가 곁들여진 마늘쫑 볶음, 푸르고 향긋한 깻잎순 무침 등. 7000원짜리 식사메뉴든 술안주든 기본으로 깔리는 찬만 열 가지에 달한다. 직접 키우고 절이고 담그고 숙성한 것이 절반 이상, 나머지는 그때그때 무쳐낸 것이다. 머나멀고 아득하지만 번뜩이고 견실하다.

“요즘은 한가한가벼?” 마늘 꼭지를 다듬던 엄마의 무던한 안부 인사에 삼겹살 2인분을 주문한다. “바빠 죽겄는데 엄마 상추쌈이 먹고 싶어 왔지.” 곧이어 식탁 위에 무쇠 솥뚜껑이 얹히고 양파와 버섯, 마늘과 함께 두꺼운 삼겹살이 나온다. 살과 비계 그리고 껍질이 쫀쫀하게 붙어 있는 모습이 삼겹살보다 오겹살에 더 가깝다. 

솥뚜껑이 달궈지기도 전에 열 가지 기본 찬과 직접 간장에 절인 무쌈과 양파, 대파의 흰 대만 채쳐 고춧가루로 묻힌 파절이, 그리고 아침에 꺾어온 상추와 고추가 얕은 접시에 수북이 담겨 나오고 곧 이어 부글부글 끓는 청국장 뚝배기가 상에 오른다. 고기가 구워질 때까지 안달할 필요도 없고, 기다림이 지루할 틈도 없다. 야들야들한 상추 위에 잎이 뾰족한 삼각추를 얹고 갖가지 반찬을 얹어 싸 먹는다.

‘전라도 식이네집’의 푸짐한 한 상. 사진김하늘
‘전라도 식이네집’의 푸짐한 한 상. 사진김하늘

젓갈처럼 감칠맛이 진한 쌈장을 고추 끝에 푹 찍어 씹으면 귓속에서 아삭함이 경쾌하게 울린다. 솥뚜껑 아래로 기름이 흐르고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면 반찬 접시를 골고루 순회한다. 접시가 다 비워져 갈 때쯤 밥 한 공기를 시킨다. 빈 반찬 그릇마다 남은 양념에 밥을 쓱쓱 비벼 입에 넣는다. 그렇게 모든 그릇이 바닥을 드러내면 물 한 잔으로 입가심하고 느긋하게 자리에서 엉덩이를 뗀다. 엄마는 주방에서 바지런히 갈치를 손질하고 있다. 손목이 남아날 것 같지 않을 만큼,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오랫동안 함께 이 식당을 지키는 도우미 이모 할머니들과 함께 작업한다. 중식도로 갈치 속을 가르고 턱턱 토막을 낸다. 큰 것은 조리고 작은 것은 튀겨 서비스로 낸다. 대가리와 내장, 꼬리는 갈치속젓으로 재탄생한다. 숙성의 과정을 거쳐 복잡하고도 풍성해진 그 맛은 밥을 부르고 또 밥을 부른다.


돼지갈비에서 떡볶이까지 다양한 먹거리

“맛나게 묵었냐?” 엄마의 인사에 코가 무릎에 닿도록 고개를 숙이고 가게를 나선다. 모래내시장에는 갈 만한 식당들이 많다. 종류를 불문하고 값에 비해 양도 푸지다. 멀겋고 말간 음식들보다 맛이 짙고 선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라도 식이네집을 비롯한 ‘전통 모래내 갈비’ ‘닭내장집’ ‘신흥떡볶이’ 등은 늘 인기다. 식이네집을 비스듬히 마주하고 있는 전통 모내래 갈비는 국내산 양념돼지갈비를 판다. 메뉴는 오로지 그것뿐이다. 간판에 아로새겨진 ‘since 1976’에서는 터줏대감의 연식이, 휑하도록 간단한 메뉴판에서는 의기양양함이 드러난다. 뜨겁게 달궈진 무쇠 불판 위에 뼈가 붙은 고기와 감자를 함께 익혀 먹다가 뼈에 붙은 고기까지 샅샅이 발라 먹어야 좀 먹은 것 같다. 

모래내시장 ‘닭내장집’의 푸짐한 닭발. 사진 김하늘
모래내시장 ‘닭내장집’의 푸짐한 닭발. 사진 김하늘

메인 골목의 작은 곁가지로 파고들어가면 빨간 유혹에 사로잡힌다. 50년 전통을 앞세운 닭내장집은 닭내장탕·닭내장백반·닭발·소허파를 판다. 가게 입구 철판에 깔린 시뻘건 닭발은 당장 시선과 식욕을 잡아끈다. 그 강렬한 그로테스크함에 여러 번 발목을 잡혔다. 고불거리는 내장과 노란 알집, 콜라겐을 가장한 그것의 발까지. 수 마리의 닭을 탈탈 털어 먹으며 소주잔 역시 탈탈 비운다. 

또 하나의 빨간 맛, 신흥떡볶이. 길고 낭창낭창한 밀떡을 쓴다. 붉은 양념에 비해 그 맛은 몹시도 얌전하다. 함께 나오는 따뜻한 콩나물국은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준다. 의외의 찰떡궁합이다. 이곳은 책가방을 어깨에 멘 학생부터 장 바구니를 팔에 낀 아주머니와 할머니들까지 단골층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능히 서울 5대 떡볶이로 꼽힐 만하다.

부른 배를 안고 장을 보기 시작한다. 모양과 크기는 균일하지 않지만 부드럽고 선연한 텃밭의 잎채소, 개량되지 않은 토종의 열매채소, 전구가 아닌 햇빛에 제 색을 발하는 과일까지. 양손 가득 검은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이제야 할 일을 다한 것 같다. 배도 마음도 부르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