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옥
영업 시간 10:00~22:00, 일요일·명절 휴무
대표 메뉴 주문하자마자 양념에 무쳐 나오는 불고기와 꾸리살을 쓰는 쫄깃한 육사시미

대복상회
대표 메뉴 비밀스러운 수퍼 뒤편에서 마시는 술과 각종 안주


장래희망란에는 차마 적을 수 없는 희망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정육점이나 수퍼집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었다. 육절기에 편편이 잘려나가는 얇고 널따란 고기 한 조각이 만 원짜리보다 값지고, 오와 열을 맞춰 천장까지 쌓아 올린 과자와 캔디는 놀이공원보다 더한 흥분을 안겨줬다. 시도 때도 없이 고기타령을 하고 용돈은 온통 군것질에 갖다 바치는 딸내미를 위해서, 나의 부모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기를 끊어오고, 생일 때마다 종합과자선물세트를 선물했다. 그리고 늘 이담에 커서 꼭 푸줏간집 아들한테 시집가라는 진심 어린 우스갯 소리를 했다. 하지만 끝끝내 ‘한우 탄 왕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푸줏간집 며느리는 그저 장래희망으로 남겨둬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푸줏간집 사위를 알게 됐다. 서울식 불고기의 명소, ‘보건옥’의 사위였다.

보건옥은 40여년 전, 보건 정육점을 인수하며 시작했다. 현재는 ‘우래옥’과 골목 하나 사이를 두고 이웃해있지만 처음엔 같은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서울식 불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보건 불고기 센터’로 상호와 용도를 변경해 운영하다가,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지금의 ‘보건옥’으로 자리잡았다. 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굽는 손님들에게 미안해 선풍기와 에어컨을 빵빵하게 돌리다 화재가 나기도 했다. 여건이 되는 한 늘 손님들의 편의를 먼저 생각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고기 냉장고가 주방 밖으로 나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육 식당의 형태다. 여사장은 이 부처(Butcher·정육점)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고기를 썰어 내보내고, 일하는 이모님들은 주방을 오가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백발에 중절모를 쓴 남사장은 주방 앞 테이블 두 개를 모두 차지하고 양은 주전자에 서울막걸리를 쏟아부으며 사람들을 모은다. 올해로 일흔 넷의 남사장은 그제나 이제나 을지로 골목의 대장이다. 산으로 바다로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오고 나물도 캐와 주변인들과 나눈다. 세월이 새긴 무늬가 역력한 그의 친구들은 점잖게 잔을 나눈다.

“가게 초기에는 아버지께서 직접 남원으로 가셔서 소도 고르셨는데, 이젠 연세가 드셔서 부위별로 좋은 것만 받아 써요. 저희 집은 갈비를 쓰지 않으니 예전에는 우래옥에 갈비부위만 팔기도 했죠. 육회나 육사시미도 홍두깨살이 아니라 꾸리살(갈비 바깥쪽과 앞다리 견갑골 사이에 있는 근육)을 써요. 그래서 더 쫄깃쫄깃하죠.” 사위는 그의 장인을 아버지라 부르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가게의 역사와 자랑을 읊어나간다. “저도 요즘엔 육사시미를 먹습니다. 불고기는 배부르잖아요”라는 복에 겨운 소리와 함께.

“불고기 세 개에 옛날 불판으로 주세요.” 그는 보건옥 불고기를 즐기는 방법은 불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고 했다. 전골냄비처럼 얕고 넓은 신판과 가운데가 볼록 올라와 있는 구판이 있다. 끓여서 먹을 것이냐 구워서 먹을 것이냐의 문제다. 대개 단골들은 구판을 따로 요청해 구워 먹는다. 고깃집 상이지만 서운하지 않다. 갓 따온 것처럼 싱싱하고 아삭한 상추와 깻잎은 물론이거니와 늘 인심 좋게 수북이 담겨 나오는 고추장 멸치 볶음, 콩나물 무침, 푸른색 나물, 겉절이 배추 김치까지. 무엇보다 폭 익힌 쪽파김치가 단골을 만든다.

은색의 구판이 화구 위에 오른다. 판의 가장자리에는 설렁탕 육수가 담긴다. 곧 이어 싱싱한 한우에 달큰한 간장 양념을 갓 무쳐 나온 불고기가 상에 오른다. 그 위엔 결대로 썬 대파와 양파, 당근, 팽이 버섯이 소복이 쌓였다. 연육(軟肉)작용을 하는 양파나 배를 넣은 양념에 푹 재우는 불고기는 육질보다 양념에 치중해 있어 밥이 없으면 얼마 먹지 못하고 금세 질린다. 그러나 주문 하자마자 양념에 바로 무쳐 나오는 보건옥의 불고기는 고깃결이 녹지 않아 씹는 맛이 좋을 뿐 아니라,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봉긋하게 올라온 판의 봉우리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면, 상추와 깻잎의 물기를 탈탈 털어 손바닥 위에 펼쳐 놓고 젓가락을 부여잡는다. 양념과 불의 맛을 한껏 빨아들인 불고기를 크게 집어 쌈 위에 얹고, 쌈장을 콕 찍은 맵싸한 마늘 한 조각 그리고 쪽파 김치 한 뿌리를 곱게 접어 얹고 쌈을 싼다. 입을 크게 열고 턱을 아래로 당겨 입안으로 쌈을 찬찬히 밀어 넣는다. 그 어떠한 재료도 이 북적이는 맛을 헤집지 않는다.

“국수 하나에 계란 하나 주세요.” 이 집은 애당초 불고기에 당면을 불려 내지 않고, 고기를 다 먹은 후 남은 불고기 양념을 냄비에 털어 넣어 국수를 만다. 날계란 한 알을 탁 깨서 남은 고기와 채소, 국수 위에 엉겨 붙도록 익힌다. 날계란 하나는 공짜고, 두 개부터는 유료다. 계란이 단단하게 굳기 전에 면을 한 젓가락 떠서 후후 불어 입 안에 날름 넣는다. 뭉근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온몸에 퍼진다. 송글송글 맺혔던 땀이 후두두 떨어진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보건옥의 불고기. 사진 김하늘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보건옥의 불고기. 사진 김하늘
을지로4가의 비밀스러운 수퍼, 대복상회. 사진 김하늘
을지로4가의 비밀스러운 수퍼, 대복상회. 사진 김하늘

평범한 수퍼, 비밀스러운 공간

푸줏간집 사위는 입가심을 하자며 자그마한 구멍가게로 이끈다. 몇 걸음 걸어 닿은 가게 안은 담배, 술, 통조림, 과자 등이 벽장에 빽빽하게 박혀 있다. 사람들은 그 아래 작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가벼운 안줏거리에 초록색 소주와 갈색 맥주를 마시고 있다. 짧은 커트머리에 각진 뿔테 안경, 야무지게 립스틱을 바른 여주인은 간단한 인사로 맞이하곤, 뒷문을 열어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우릴 안내한다. 가게 뒤편으로 자그마한 싱크대와 화장실을 지나 다락방 문이 열린다. 빛 바랜 자색 ‘골덴’ 벽이 펼쳐지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온다. 오래됐으나 낡지 않았다. 화려하지만 단정하다.

술만 주문하고 나머지 안주는 직접 집어온다. 요리가 필요하면, 주문도 가능하다. 크래커 사이에 슬라이스 체다 치즈를 두 겹씩 쌓아 만든 ‘치즈 샌드’, 골뱅이 골목을 비웃는 빨간 ‘골뱅이 무침’이 대표적이다. 을지로의 ‘스피크이지(입구가 입구같지 않게 숨겨져 있는, 비밀의 장소 같은 바)’다. 별도의 커버 차지(자릿값)는 없다.

을지로 4가, 4번 출구. 그림자의 변죽도 멈춘 까만 저녁, 좁고 낮은 골목으로 올해의 끝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2018년이 저문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