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 전경. 밀라노는 이탈리아 최대 산업 도시이면서 명품 디자이너들의 본거지이지만 성악을 전공한 음악인들에게는 세계 최대 오페라의 도시다.
이탈리아 밀라노 전경. 밀라노는 이탈리아 최대 산업 도시이면서 명품 디자이너들의 본거지이지만 성악을 전공한 음악인들에게는 세계 최대 오페라의 도시다.

“나는 커서 프리마돈나로 ‘라 스칼라(La Scala)’ 극장에서 꼭 데뷔할 거야!”

중학생이었던 필자가 성악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종종 들었던 말이다.

으레 악기를 전공하는 친구들은 뉴욕 카네기 홀, 베를린 필하모니, 런던 위그모어 홀 같은 눈부신 대가들이 거쳐 간 장소에서 연주하는 걸 꿈꾼다. 그에 반해 성악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라 스칼라’ 극장에 대해 자주 말하곤 했다. 당시엔 귀를 스쳐 지나간 이 극장 이름을 오페라에 관심을 가졌을 때쯤엔 귀에 못이 박이게 들을 줄이야.

시간이 흘러 유학 중 찾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이 극장을 보며 떨리는 마음으로 공연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극장의 연표를 살펴보며 왜 이곳이 음악 역사적으로 중요한지, 여기에서 공연한다는 것이 음악가로서 어떤 의미인지 더 잘 이해하게 됐다.

1776년 밀라노에서 발생한 화재로 메인 오페라 극장인 ‘테아트로 레지오 두칼레(Teatro Regio Ducale)’가 전소됐다. 당시 이탈리아인의 삶에서 오페라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새로운 극장의 건설을 강하게 요구했다. 시민들의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당시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 지역을 통치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으로 당시로써는 믿을 수 없는 단 23개월이란 빠른 공사 기간에 극장을 개장하게 됐다. 이때 부지 조성을 위해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성당(Santa Maria Della Scala)을 해체한 연유로 이 성당의 이름을 이어받아 ‘라 스칼라 극장(Teatro Della Scala)’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1778년 8월 3일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연적(戀敵)으로 알려진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오페라 ‘유럽의 발견(L’Europa riconosciuta)’을 초연하며 성대하게 개관했다.

라 스칼라는 3000석이 넘는 객석과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무대 그리고 당시로써는 초현대적인 무대 장치로 유럽에서 대단한 화젯거리였으며, 살리에리의 스펙터클한 연출과 화려한 기교가 곁들어진 개관작으로 인해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의 오페라 ‘유럽의 발견’은 고전시대를 통틀어 성악가에게 가장 어려운 수준의 기교를 요구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자주 연주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 목록을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로 화려하다. 19세기에는 벨리니의 대표작 ‘노르마(Norma)’를 비롯해 ‘해적(Il Pirata)’ ‘이국의 여인(La Straniera)’, 곧이어 도니체티의 ‘파리의 우고 백작(Ugo, conte di Parigi)’ ‘루크레치아 보르자(Lucrezia Borgia)’ 그리고 베르디의 ‘나부코(Nabucco)’와 ‘오텔로(Otello)’ 등이 이곳에서 초연됐다. 또 20세기 초반에 초연된 푸치니의 명작 ‘나비부인(Madame Butterfly)’과 ‘투란도트(Turandot)’도 이 극장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초연된 명작을 열거하려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이런 역사를 거치며 라 스칼라 극장은 밀라노를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극장이 됐고 현재는 이 공연장에서 공연 이력이 성악가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됐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 극장은 1778년 8월 3일에 개관한 이후 수많은 명곡이 초연되는 역사적인 장소가 됐다.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등도 이곳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 극장은 1778년 8월 3일에 개관한 이후 수많은 명곡이 초연되는 역사적인 장소가 됐다.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등도 이곳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음악이 도시의 삶을 바꿔

라 스칼라 극장이 있는 밀라노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탈리아 명품 디자이너들의 본거지일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최대 산업 도시로서 중요한 경제적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밀라노는 산업 도시가 주는 공업 단지 느낌이 아닌 라 스칼라 극장과 함께 오페라의 유려한 선율로 가득 찬 ‘음악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 극장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음악 팬들을 보며 음악은 한 도시의 삶을 바꿀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지난 12월 초 새로운 공연 시즌이 시작된 만큼 지금 밀라노는 오페라 성수기라 할 수 있다. 라 스칼라 관객석 중앙에 있는 19번 박스석에서 가장 좋은 전망과 음향을 즐길 수 있다. 또 약간의 시간적 지체에 관대한 이탈리아의 분위기와 달리 라 스칼라 극장은 정시에 공연이 시작된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라 스칼라 극장의 명반들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의 ‘노르마(Norma)’

아리아 ‘정결한 여신(Casta Diva)’의 아름다운 멜로디로 많은 대중이 기억하는 작품이다. 1831년 12월 초연됐으며 1948년 마리아 칼라스라는 현대 오페라 역사상 최고의 여가수를 만나 비로소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됐다. 이후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주 목록으로 자리 잡았다.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의 ‘투란도트(Turandot)’

파바로티가 부른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중 특히 마지막 ‘난 승리하리라’라는 가사와 함께 클라이맥스로 솟구치는 전율은 우리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극적이면서 아름다운 선율로 사랑받는 곡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작품이며, 사후인 1926년 4월 25일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