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면옥 평양냉면
영업 시간 매일 11:30~21:00, 월요일 휴무
대표 메뉴 차돌박이 수육과 평양냉면

자매네
영업 시간 광명시장 여는 시간에 맞춰서 영업 광명시장은 매일 10:00~21:00
대표 메뉴 윤기 흐르는 김치전과 푸짐한 제육볶음

원조튀김
영업 시간 자매네와 마찬가지로 광명시장에 맞춰 영업
대표 메뉴 신선한 기름에 튀긴 갖가지 튀김들


면의 메밀 함량 80%를 고수하는 정인면옥의 평양냉면. 사진 김하늘
면의 메밀 함량 80%를 고수하는 정인면옥의 평양냉면. 사진 김하늘

‘정인면옥 평양냉면’

광명사거리역 8번 출구 앞 행길, 가구점이 즐비한 이 거리엔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다 꽁꽁 얼어버린 가구들로 빼곡하다. 호객을 할 요량으로 밖으로 나온 상인들은 공연히 입으로 허연 공허함만 내뿜는다. 물건 한 점에 눈길이라도 주면 상인들의 눈빛이 쨍그랑 빛난다. 헛된 희망을 주지는 않을까 방향을 틀어 골목으로 들어선다. 정강이까지 덮는 롱패딩, 기모가 촘촘히 박힌 방한 바지, 목이 길고 두꺼운 부츠로 시린 겨울을 빈틈없이 방어했다. 냉면 먹을 준비를 마친 것이다. 저만치 냉면집 푸른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냉면 먹을 생각에 마음이 녹아 날뛴다.

“물냉 하나에 차돌 소짜 하나 주세요.” 분홍 립스틱을 곱게 바른 조선족 종업원은 따끈한 면수 한 컵을 내며 상냥하게 주문을 받고 금세 상을 차린다. 마침 전날 거하게 마신 탓에 목구멍 밖으로 손이 튀어나와 면수가 담긴 컵을 획 낚아챈다. 후후 불어 입안에 머금다 넘기니, 심해에서 퍼 올린 규조토처럼 식도와 내장이 면수를 쫙쫙 빨아당기고 쌓인 술기운을 밀어낸다.

온수매트에 물이 끓고 전기 장판에 뜨거운 전기가 통하듯 온몸에 열기가 퍼진다. 기름이 흥건하게 흐르는 차돌박이 수육 한 접시와 맑은 냇물 위에 붉은 꽃잎이라도 흩어진 듯한 자태의 평양냉면 한 그릇이 상 위에 오른다.

“이 집은 북어 같은 어포를 넣고 육수를 낸 게 분명해요!” “아니 맛만 보고 재료를 맞출 수 있어요?” “그럼요! 저는 뭐든 먹어보면 뭐가 들어갔는지 다 알아요!” 어째 한 술 뜨려는데 뒤통수가 피곤하다. 뒤편 두 남자의 대화가 귀에 걸린다. 서로를 아무개님이라 호칭하며 냉면에 와인을 나눠 마시는 그들은 자신을 미식가라 자부한다. 마치 혓바닥에 리트머스 시험지라도 단 것처럼, 육수의 염도가 어떻고 면발이 어떻고 사사건건 들먹이며 냉면 한 그릇을 샅샅이 분해한다.

정인면옥을 창업한 원주인은 여의도로 이사를 갔다. 현재 주인 부부가 가게를 인수받아 장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6년째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 양지에 갖가지 채소를 더해 육수를 낸다. 멸치 한 마리도 물에 빠뜨린 적이 없다. 가게를 인수받으며 냉면 레시피도 전수받았지만, 매일 같은 맛을 내야 하는 표준을 잡기엔 주인 부부에게 레시피가 체화되지 못함을 깨닫고 새로이 맛의 기준을 세워나갔다. 국내와 일본을 오가며 혀를 단련시켰다. 인맥도 동원했다. 평양냉면 애호가였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식사를 담당하던 지인을 셰르파 삼았다. 음식을 할수록 답은 재료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양지건 차돌이건 들어오는 날마다 맛이 다르고, 날씨와 계절에 따라 메밀면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재료에 더욱 더 집착했다. 매일 직접 메밀을 제분하고 주문이 들어 오는 대로 반죽을 하고 면을 뽑는다. 면의 메밀 함량은 정확히 80%를 유지한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겨울에는 순면도 주문이 가능하다.

계란 모자는 제쳐두고 면타래를 흩뜨린다. 차디찬 냉면 그릇을 두 손으로 떠받들 듯 들어올려 아랫입술에 가져다 댄다. 입술에 닿는 차디찬 스테인리스 그릇의 맛 또한 겨울 냉면의 맛이다. 진공청소기처럼 육수를 삼킨다. 댐에 가둔 물이 강으로 쏟아지듯 견고한 감칠맛과 고운 은은함이 입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메밀 잎사귀로 풀피리 부는 작은 소녀가 커다란 소의 등줄기 위를 노니는 것 같은 상상이 펼쳐진다. 이제서야 피가 도는 것 같다. 냉면 육수가 숙취로 죽어가는 이 한 목숨을 살렸다.

소기름을 흠뻑 앙다문 차돌박이 수육을 여릿한 간장 소스에 찍어 한 입 먹는다. 자취만 남긴 채 사르르 사라진다. 냉면이 휩쓸고 간 자리에 고소한 소기름을 떨구니 젓가락은 안달이 난다. 직접 담근 된장은 중후한 그 맛으로 도돌이표를 그린다. 무절임과 얼갈이김치는 스타카토를 찍어 겨울 면식을 마지막까지 경쾌하게 이끈다. 물냉면 8000원, 차돌박이 수육 소짜 1만6000원. 팔아서 크게 남기지 못하는 가격이지만, 주인은 대를 이어갈 아들과 딸 내외에게 운전대를 넘겨주며 말한다. “부자가 되는 법이 아니라, 최선의 한 그릇으로 사람들에게 베푸는 법을 알려주는 게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선입니다.”


광명전통시장 ‘자매네’

정인면옥을 나와 왼쪽으로 죽 걷다 보면 광명시장에 다다른다. 냉면을 먹고 배를 두드리면서도, 어느새 전 한 장과 막걸리 한 병을 비우기 위해 전집에 들어앉아 있다. 석유 난로 하나면 가게 안이 후끈해질 정도로 규모가 작지만, 손님이 붐비지 않으니 옆집처럼 전을 미리 부쳐 쌓아 둘 일이 없다.

“내가 여기 다닌 지 벌써 10년이 다됐지.” 혼자 와서 막걸리를 마시는 아저씨 손님의 제육볶음이 탐이 나 그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김치전 반쪽을 내주고 두꺼운 고깃덩어리를 얻었으니 꽤나 괜찮은 거래다. 그는 끼니와 술 한잔 나눌 친구가 마땅치 않으면 으레 이 집에 들른다고 했다. 젊은 여자와 단골 손님이 나란히 앉아 말을 섞으니, 그 모습을 본 여주인은 깔깔 웃으며 찌그러진 막걸리 잔을 내밀며 말한다. “내가 이 맛에 장사를 못 끊지.”


할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원조튀김의 튀김들. 사진 김하늘
할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원조튀김의 튀김들. 사진 김하늘

광명전통시장 ‘원조튀김’

기름냄새가 진동하는 곳은 전집뿐 아니다. 커다란 튀김 솥 두 개를 걸어놓고 쉴 새 없이 기름 솥 위를 바삐 오가는 할머니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걸음을 또 한 번 멈춘다. 당면과 고기로 속을 채운 튼실한 고추 튀김, 매끈하고 하얀 속살을 감춘 오징어 튀김, 매일 아침 직접 마는 김말이 튀김, 그 밖에 고구마, 야채, 새우튀김까지. 집게로 집어 바구니에 담아 할머니에게 건네니, 할머니는 튀김 하나를 얼른 더 집어 얹는다. 올해로 23년째 튀김솥 앞을 지키고 있는 할머니의 고맙다는 인사에 단골의 대를 잇고 싶은 마음이 왈칵 차오른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