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의 새로운 3기통 엔진인 ‘E-터보’. 사진 쉐보레
쉐보레의 새로운 3기통 엔진인 ‘E-터보’. 사진 쉐보레

몇 년 전 볼보 S90을 몰고 고향 집에 간 적이 있다. 아버지는 듬직한 차체와 널찍하고 푸근한 뒷자리, 고급스러운 실내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 이 차 몇 시시(cc)냐?” 뒷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아버지가 물었다. “1969㏄예요.” 내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이렇게 말했다. “배기량이 3000㏄도 되지 않는 차를 어떻게 타냐?” 아버지는 아직도 대형세단은 3000㏄가 넘는 커다란 엔진을 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 볼보 차를 탈 일은 결코 없을 거다. 볼보는 이미 모든 모델에 4기통, 2000cc가 넘는 엔진을 얹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생각이 어떻든 지금 자동차 업계의 대세는 엔진 다운사이징이다. 쉐보레는 급기야 새로운 말리부에 1.35ℓ 터보엔진을 얹었다. 실린더 수도 4개가 아닌 3개다. 3기통이라니. 국내에서 팔리는 3기통 엔진 모델은 쉐보레 스파크, 한국GM 다마스와 라보, 기아자동차 모닝과 스토닉, 미니 그리고 스마트뿐이다. 경차 아니면 소형차란 말이다. 이로써 말리부는 국내에서 팔리는 중형세단 가운데 처음으로 3기통 엔진을 얹은 모델이 됐다.


르노삼성차 SM6에 탑재된 1.6ℓ 휘발유 터보 엔진. 사진 르노삼성차
르노삼성차 SM6에 탑재된 1.6ℓ 휘발유 터보 엔진. 사진 르노삼성차

쉐보레, 중형세단에 3기통 엔진 탑재

사실 쉐보레가 다운사이징 엔진을 준비한 건 꽤 오래전이다. 쉐보레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GM은 2014년 새로운 엔진에 관한 전략을 발표했다. 실린더 하나의 용량을 500㎖ 우유팩보다 조금 작은 447cc로 규격화하고 이 실린더의 수를 조절해 3기통, 4기통, 6기통 등으로 모듈화하는 전략이다. 실린더 3개를 묶으면 3기통, 4개를 묶으면 4기통 엔진이 된다. 부족한 출력은 직분사 기술과 터보차저로 보완한다. 연료효율을 높이기 위해 액티브 서멀 매니지먼트(Active Thermal Management)라는 능동형 열관리 장치도 덧붙였다.

쉐보레는 새로운 3기통 엔진에 ‘E-터보’라는 이름을 붙였다. ‘E’는 ‘일렉트릭(Electric)’이 아니라 ‘에코(Eco)’의 ‘E’다. 최고출력 156마력, 최대토크 24.1㎏‧m를 내는데, 이전 1.5ℓ 터보엔진과 비교하면 최고출력은 겨우 10마력, 최대토크는 1.4㎏‧m가 낮다. 주목해야 할 건 복합연비다. 16인치와 17인치 타이어를 적용한 E-터보 모델의 복합연비가 리터당 14.2㎞로, 1.5ℓ 터보 모델의 12.7㎞/ℓ보다 리터당 1.5㎞나 좋다. 더욱이 말리부 E-터보 모델은 3종 저공해차로 분류돼 공영주차장이나 지하철 환승 주차장, 공항 주차장 등에서 요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자동차세도 2.0ℓ 모델의 절반 수준이다. 찻값도 당연히 저렴하다. 옵션이 거의 없는 가장 아랫급 모델이 2000만원대 초반이다. 실린더 하나 줄였을 뿐인데 돌아오는 혜택이 꽤 많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실린더 3개로 힘을 뽑아내기 때문에 진동이 꽤 들이친다. 특히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나 신호를 기다리며 교차로에 서 있을 때 엉덩이로 전해지는 진동이 꽤 있다. 하지만 디젤엔진 모델만큼은 아니다. 2.0 터보 모델에 비하면 힘이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연비와 각종 혜택을 생각하면 부족한 힘쯤 눈감아줄 수 있다. 생각해보면 156마력이 그렇게 부족한 것도 아니다. 4기통 2.0ℓ 휘발유 엔진을 얹는 현대 쏘나타의 최고출력도 163마력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중형세단에서 다운사이징 엔진을 꽤 찾을 수 있다. 현대차의 쏘나타와 기아차의 K5에는 1.6ℓ 휘발유 터보엔진을 얹은 모델이 있고, 르노삼성 SM6에는 1.6ℓ 휘발유 터보엔진을 얹은 모델과 1.5ℓ 디젤엔진을 얹은 모델이 있다. 혼다는 새로운 어코드에 1.5ℓ 휘발유 터보엔진을 얹었는데 최고출력이 194마력이다. 2.0ℓ 휘발유 엔진을 얹는 국산 중형세단을 훌쩍 뛰어넘는 출력이다. 2.5ℓ 휘발유 엔진을 얹는 도요타 캠리의 207마력과 비교하면 겨우 13마력 부족하다.

그런데 자동차 회사는 왜 이토록 엔진 다운사이징에 힘을 쏟을까. 왜 커다란 차에 작은 엔진을 넣으려 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갈수록 엄격해지는 각 나라의 배출가스 등에 대한 규제에 맞추기 위해서다. 배기량이 적어지면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어진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저공해차 의무 판매 비율’이란 게 있다. 자동차 회사가 연간 판매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저공해차로 채워야 하는 규약인데,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과태료 자체가 비싼 건 아니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을 때 환경을 거스르는 회사로 낙인찍힐 수 있다. 스스로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은 회사는 없을 거다. 참, 저공해차에 관한 분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으로 따진다.


1.5ℓ 휘발유 터보 엔진을 장착한 혼다 어코드. 사진 혼다
1.5ℓ 휘발유 터보 엔진을 장착한 혼다 어코드. 사진 혼다

각국 배기량 적은 차에 다양한 혜택 부과

이 밖에 우리나라는 배기량으로 자동차세를 물리고 있다. 배기량이 적어질수록 세금도 적어진다. BMW i8의 경우 찻값이 2억원에 육박하지만 3기통 엔진에 전기모터를 더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기 때문에 3기통에 해당하는 자동차세를 낸다. 그러니까 배기량을 낮추면 그만큼 자동차세를 줄일 수 있다. 중국은 배기량이 아니라 찻값에 비례해 구매세를 물린다. 보통 찻값의 10%가 구매세로 부과된다. 이건 배기량과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중국은 2015~2016년까지 한시적으로 구매세 인하 정책을 시행했다. 1600㏄ 이하 엔진을 얹는 자동차에 부과하던 10%의 구매세를 절반으로 줄이는 정책이다. 그런데 올해 이 정책을 다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잘 살펴보면 각 나라에서 배기량이 적은 차에 주는 다양한 혜택을 볼 수 있다. 엔진 다운사이징을 독려하는 움직임이다.

커다란 엔진이 주는 자연스럽고 풍성한 질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엔진 다운사이징이 무조건 반가운 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다운사이징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포르쉐조차 718 박스터와 카이맨에 4기통 엔진을 얹었으니 더 말해 뭐할까. 이러다 2기통 엔진을 얹은 중형세단도 등장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