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안녕하시다
성석제 지음|문학동네|전 2권|각 권 1만4500원

소설가 성석제. 사진 조선일보 DB
소설가 성석제. 사진 조선일보 DB

조선시대 숙종 임금은 열네 살에 즉위해 46년간 장기 집권을 했다. 그가 통치한 시대는 정쟁의 연속으로 이름 높다.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신권을 자주 교체하는 이른바 환국을 여러 차례 감행했다.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고, 또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가운데 진행된 양반 사대부의 권력 투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잔혹극을 빚어냈다.

숙종은 일부러 당파 싸움을 유도했다. 변덕이 심한 임금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 변덕은 결혼생활에서도 불거졌다. 그는 조강지처를 쫓아내고 첩을 들여앉혔다가 후회한 끝에 부인을 복귀시킨 뒤 이번엔 첩을 박대해 원한을 사고, 저주의 굿판을 벌이게 해놓고서는 그 모든 책임을 첩에게 뒤집어씌워 독살했다. 이 이야기는 지금껏 숱하게 사극으로 제작됐다.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이 주연을 맡았다. 게다가 숙종 시대는 잇단 자연재해로 피해도 컸다.

그런데 묘하게도 인구가 늘어났다고 한다. 약 1000만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먹고살 만했다는 얘기다. 역사학자들은 상업과 무역이 활발했다고 평가한다. 상공업이 진흥하면서 화폐경제의 지평이 열렸다 한다. 숙종은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조하도록 해 조선 후기에 화폐경제가 정착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떳떳 상 평할 평 통할 통 보배 보 자/ 구멍은 네모지고 사면이 둥글어 땍때굴 굴러간 곳마다 반기는구나/ 어쩌다 조그만 쇳조각을 머리가 터지도록 다투거니 나는 아니 좋아라”

숙종 시대에 유행한 시조라고 한다. 상평통보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유통된 상황을 희극적으로 노래했다. 소설가 성석제가 최근에 낸 장편소설 ‘왕은 안녕하시다’에도 인용됐다. 숙종은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정치 체제를 왕권 중심으로 주도하면서 경제 부흥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권력을 쥔 세력이 부패하거나 오만해지면 정쟁을 유도해 엄하게 처벌한 측면도 있다. 물론 숙종은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음흉한 짓을 서슴지 않은 군주이기도 했다. 소설가가 보기에 숙종 시대는 풍성한 이야기보따리가 아닐 수 없다.

동인문학상(2002년) 수상 작가 성석제의 ‘왕은 안녕하시다’가 바로 그 숙종 시대를 200자 원고지 3000여 장 분량으로 그려냈다. 숙종을 비롯해 송시열, 윤휴, 김만중, 박태보 등 실존 인물의 언행(言行)이 사실적으로 재현됐다. ‘숙종실록’과 ‘연려실기술’에 전해오는 기록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현대적 언어로 다듬었다. 흔히 역사소설은 작가의 전지적 시점에서 서술되지만, 성석제는 보기 드물게 ‘나’를 화자로 등장시켜 1인칭 주관적 서술의 역사소설을 시도했다. ‘나’는 유명 기생집을 운영하는 할머니를 둔 덕분에 청춘을 흥청망청 보내는 날건달이다. 숙종이 세자 시절에 ‘나’를 우연히 만나 의형제를 맺곤, 즉위한 뒤 비밀 측근으로 활용했다는 것이 소설이 지닌 상상력의 뼈대를 이룬다. 역사소설 형식을 취한 정치소설이면서 건달소설과 무협소설의 변형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세상 경험이 많은 건달 ‘나’가 실물경제에 밝아 어린 임금 숙종에게 상평통보 제조를 주청한 것으로 묘사한다. 사료에 충실한 소설이되, 실록에 없는 건달을 통해 사료의 여백을 현대적 관점에서 메우려는 작가의 입심이 지어낸 픽션인데, 비평 용어 ‘대체(代替)역사소설’을 갖다 붙일 수도 있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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