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맛집
영업 시간 매일 9:00~19:00 (첫째, 마지막주 화요일 휴무)
대표 메뉴 멍게유곽비빔밥, 생선구이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인생뿐이 아니다. 서울, 서울, 서울. 서울 또한 그렇다. 미세먼지 폭격에 어질러진 불투명한 시야를 가르고 이른 아침부터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4시간을 누워 달렸다. 이윽고 경상남도 남해안의 중앙, 통영에 당도했다. 서울의 공기를 씻어내야 한다. 쌓인 피로를 풀어야 한다. 통영항 근처에 있는 ‘통영해수랜드’로 향했다. 걸친 옷가지를 모두 벗어던지고 태초의 모습으로 욕탕에 들어앉는다. 아지매들의 앙칼진 경상도 사투리가 자글자글 끓어오른다. 찜통 사우나에서 육수를 빼고 때가 부들부들 잘 불도록 뜨끈한 해수탕에 고개만 내놓고 앉는다. 요리로 비유하면 수비드(sous vide ․ 진공포장한 재료를 미지근한 물에 오랫동안 가열해 맛, 향,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는 조리법) 방식이다. 뽀얗게 불어난 육신의 때를 말끔히 벗기고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욕탕을 나선다.


‘통영맛집’의 별미 ‘멍게유곽비빔밥’. 사진 김하늘
‘통영맛집’의 별미 ‘멍게유곽비빔밥’. 사진 김하늘

초고추장 없이 멍게 산미 살려

동그랗게 구슬려진 바다가 마치 강의 시작점처럼 보여서 이름 지어진 강구안(江口岸) 항구. 통영 여행의 시작은 매번 여기서 부터다. 푸른 바다 수면 위로 태양은 밝고 잔잔하게 일렁인다. 부두 건너 동쪽 비탈 벽화 마을 풍경은 액자처럼 걸리고, 새벽 바다를 담아 온 고깃배들은 어깨를 맞대고 곤히 낮잠을 자고 있다. 손대면 톡 하고 봄이 올 것 같은 온순한 날씨는 여행의 기대감과 위장의 공백을 부풀린다.

한 꺼풀 벗겨낸 몸과 마음으로 바다를 삼킬 차례다. 바다 내음을 깊숙이 들이 마시며 걷는다. 발길을 붙잡는 식당이 있다. ‘멍게유곽비빔밥’과 ‘통영맛집’. 걸어 놓은 메뉴와 가게 이름부터 호기심을 일으킨다. 키워드의 난립이 분간을 흩뜨리는 요즘 같은 시대에 불리해도 한참 불리한 이름이다. 하지만 한번 맛본 관광객들은 계절의 절정에 입맛을 다시며 돌아오고, 미각의 잔뼈가 굵은 지역 공무원들은 철 모르고 이 집을 찾는다. 현재 주방을 지키는 남자 주인은 과거 멍게 농사를 지었다가 수억을 바다에 빠뜨렸고, 그 이후로 그의 아내가 하던 식당을 맡아 하게 됐다. 음식은 손을 타기 마련이지만,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한 아내 못지않게 야무진 손맛을 자랑한다. 상시 판매하는 메뉴는 멍게유곽비빔밥을 비롯해 모둠생선구이와 조림, 잡어와 볼락매운탕 등이다. 봄에는 도다리쑥국, 여름엔 갈치호박국과 성게비빔밥, 가을엔 전어구이 그리고 겨울엔 물메기탕, 굴파래국, 생대구탕을 판다.

“뜨끈한 숭늉 한 잔 먼저 드이소.” 됫박에 담긴 숭늉을 잔에 옮겨 찬기가 서린 몸을 데우니, 허기가 보풀처럼 오른다. 곧이어 반건조적어구이, 병어회, 호래기무침, 멸치볶음, 톳두부무침, 파래무침, 깍두기, 묵은지 등 10가지 반찬이 깔린다. 회는 기본이고 나물부터 김치까지 상에 오르는 것 어느 하나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없다. 말린 적어구이는 꾸덕꾸덕한 감칠맛이 돌고, 병어회는 차지고 달며, 갓 무쳐 나온 호래기 무침은 연하고 시원하다. 겨울이 이렇게 달았던가 하며 정신없이 젓가락으로 상 위를 누빈다.

굴미역국과 멍게유곽비빔밥 그리고 맑은 물메기탕 한 그릇이 오른다. 통영에서 멍게비빔밥은 항구 근처 식당이라면 흔하게 걸려있는 음식이다. 보통 밥 한 덩이, 김가루와 해초, 양배추 등에 참기름과 초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도록 나오지만, 이 집은 다르다. 초고추장으로 멍게의 쌉싸름한 산미(酸味)를 능욕하지 않는다. 조밥에 유곽, 멍게, 새싹, 석모, 김가루, 참기름, 깨소금을 골고루 섞는다. 밥 한 술을 떴을 때, 그 어느 쪽으로 치우쳐서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도록 썩썩 비빈다. 대합조개로 만든 양념인 유곽과 조개 농축액이 더해져 간지럽게 올라오는 멍게의 향을 보다 묵직하고 그윽하게 살린다. 바다를 그대로 건져온 것 같은 맑은 굴미역국으로 입과 숟가락을 헹구고, 물메기탕에 숟가락을 담근다. 물메기탕은 주문을 받자마자 건너편 다찌집 활어차에서 물메기를 꾸어와 채소 육수에 넣고 끓여 냈다. 겨우내 웅크렸던 무와 배추의 단맛이 녹아든 국물과 선도 물메기의 살 한 점을 떼어낸 한 입이 목구멍으로 미끄러진다. 겨울의 땅과 바다로 만든 푸딩의 맛이다. 힘없이 물컹거리는 물메기의 살점은 오늘 아침 목욕탕 거울에 비친 나의 뱃살을 닮았다며 자조한다. 그 쓰임의 가치는 과연 물메기의 완승이다.


반건조적어구이, 병어회, 호래기무침 등 10가지 반찬이 ‘통영맛집’의 밥상에 오른다. 사진 김하늘
반건조적어구이, 병어회, 호래기무침 등 10가지 반찬이 ‘통영맛집’의 밥상에 오른다. 사진 김하늘

통영 사람만 아는 파래굴국

“굴국밥은 관광객이 만든 음식 아입니꺼.” 굴파래국이 뭐냐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유명 굴 산지인 통영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팔기 시작한 관광객용 음식이라는 거다.

통영 사람들은 무 약간, 굴 몇 알 빠뜨린 초라한 굴국이 아닌, 새봄이 새순을 뻗는 찰나에만 나는 보드라운 파래를 넣은 풍성한 파래굴국을 즐긴다. 국용 파래는 반짝하고 더 이상 나지 않으니, 한 번에 잔뜩 사두었다가 꽁꽁 얼려 저장했다 꺼내어 겨울 특미 메뉴로 낸다. 아는 사람들만 찾는 메뉴다.

“웬만하믄 생선은 지리로 드시고, 매운탕을 묵을라카면 여럿이 와서 시키소. 적게 와가 시키면 미원을 더 넣을 수밖에 없다 아잉교.” 머무는 동안 한 번만 오기 아까운 식당이라, 메뉴판을 훑으며 주인에게 시시콜콜 물으니 돌아온 말이다. 주인의 노골적인 솔직함에 매운탕을 시킨다. 또 건너 다찌집에서 손바닥만 한 생선들을 몇 마리 건져온다. 얼마 있지 않아 부루스타와 얕은 매운탕 한 냄비를 내온다. 쏨뱅이와 열기가 통째로 담겨 냄비 안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다. 국물이 졸아들며 생선 기름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빨간 국물 위로 빼꼼히 나온 쏨뱅이 머리에 국물을 끼얹으며 기다림을 달래본다. 조기를 턱턱 썰어 삭힌 무김치가 상 위를 비집고 오른다.

“크아아….” 매큰한 국물이 숙취의 모공을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고여드는 감칠맛은 그의 최선이리라, 칼칼하게 빗질한 위와 간을 새것으로 다스린다.

강구안 골목길 구석구석에는 해물뚝배기로 아침의 허기를 달래는 새집식당, 갖가지 회가 나오는 회정식으로 식탐을 챙길 수 있는 한산회식당, 건물메기찜이 유명한 이중섭식당 등 쟁쟁한 식당들이 몰려있고 고즈넉한 카페가 이따금씩 숨어 있다. 느리게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길의 자락 자락을 톺아본다. 그리고 세어본다. 하나, 두울, 세엣…하룻밤 더 묵어야겠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