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클래식카 매니아들은 층이 다양하고 탄탄하다. 사진 황욱익
일본의 클래식카 매니아들은 층이 다양하고 탄탄하다. 사진 황욱익

필자가 처음 클래식카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상당히 오래전이다. 태생적으로 반골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최신 기능을 탑재한 흔한 물건에 대한 흥미는 지금도 없는 편이다. 한 가지 물건을 사면 오래 사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귀찮더라도 고쳐서 사용하는 습관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클래식카는 1975년 이전 만들어진 차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금까지 필자가 소유했던 자동차는 손에 꼽을 정도다. 물론 자동차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많은 종류의 자동차를 경험해 봤지만, 그 시각적인 분석이나 판단은 늘 남들과 달랐다. 자동차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주 업무는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가 대부분이었다. 그 안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을 경험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실 자동차에서 클래식카는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면 그 모델이 가진 성능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어떤 혈통을 가지고 있는지도 차를 판단할 때 중요한 요소다. 케케묵은 옛날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철학과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남들과 다른 특별함과 독특함은 자동차 마니아들(일반 소비자가 아닌)에게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통 클래식카 하면 어렵고, 비싸고, 복잡하고, 귀찮으며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의 취미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완전히 틀리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별함과 독특함을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고, 반대로 정말 희소가치가 있는 특별한 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없이 많은 클래식카 애호가와 수집가들을 만났지만 이들 역시 이런 생각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자동차의 경제적 가치에 비중을 두는 경우도 있지만 자동차 그 자체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았다.

현재 국내에는 클래식카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다. 용어 자체도 일본식 용어인 올드카와 함께 사용되면서 단순히 오래된 차를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 삼성교통박물관에서 주관했던 클래식카 페스티벌의 기준을 차용하면, 1989년 이전에 생산된 차로 한정하는 게 그나마 보편적인 기준이 될 것이다. 반면 해외는 국가별로 다양한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클래식카 시장이 가장 크고 체계적이라는 유럽은 국제클래식카협회에서 정한 기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 기준에 따르면 1913년까지 생산된 차를 베테랑카, 1913년부터 1930년까지 생산된 차를 빈티지카, 1931년부터 1957년까지 생산된 차를 빈티지 클래식카, 1958년부터 1975년까지 생산된 차를 클래식카라고 부른다.

반면 같은 유럽이라고 해도 자동차 역사가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비해 짧은 독일은 단종 연도 기준 25년을 전후로 올드타이머와 영타이머로 구분하기도 하며 미국 역시 비슷한 기준을 두고 있다. 올드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일본은 주로 1975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기도 하는데 이 역시 국제 클래식카 시장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다. 클래식카 시장에서 1975년(혹은 1972년)은 매우 중요한 시점인데 본격적인 환경 규제가 시작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MPI(간접 분사 방식) 엔진을 가진 차들이 그 기준이다. 쉽게 설명하면 1975년 이전에 출시된 카뷰레터 엔진을 가진 차들이 보편적인 클래식카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단순히 오래되기만 했다고 모든 차가 클래식카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역사적인 족적을 남겼거나 인류의 자동차 문화를 바꿨거나, 기술적인 진보가 있었던 차들이 높은 가치를 지닌다. 여기에는 생산 대수에 따라 가치도 변하게 되는데 주로 이탈리아나 영국 같은 다품종 소량 생산 차가 대량 생산 차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반면 비교적 생산 대수가 많은 오스틴 미니나 MG의 로드스터 시리즈, 폴크스바겐 타입 2(비틀), 시트로엥 2CV 같은 차는 당시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었고 클래식카 시장이 넓어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대량 생산이 일찌감치 자리 잡은 미국의 환경은 또 다르다. 이미 1930년대에 20만 대 이상 생산한 모델이 있었을 만큼 시장이 큰 미국은 유럽의 고상함에 비해 대중적이지만 폭발적인 성능과 독특한 디자인을 내세운 차들이 클래식카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포드 머스탱, 쉐보레 콜벳이나 벨에어, 캐딜락 엘도라도나 패커드 같은 차를 보면 확실히 유럽 중심의 클래식카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중 몇몇 모델은 현재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생산되고 있다.

일본 역시 미국만큼 스펙트럼이 넓다. 초창기 소형차와 경차로 시장을 키운 일본의 클래식카 시장은 지금도 몇몇 모델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우리가 잘 모르는 소형차가 많다. 물론 마니아층이 다양해 유럽 차와 미국 차를 전문으로 다루는 시장도 있지만, 오래된 소형차와 경차의 인기가 높은 편이다. 현재 일본 차 중에 국제 클래식카 시장에서 인정받는 차종은 닛산 스카이라인 2000GT(하코스카 GTR), 1세대 페어레이디 Z, 도요타 2000GT, 마쓰다 코스모 스포츠 정도다. 그러나 그 외 시장이 워낙 탄탄해서 가장 독특한 시장을 구성하고 있다.


일본의 클래식카 시장에선 소형차와 경차의 인기가 높다. 사진 황욱익
일본의 클래식카 시장에선 소형차와 경차의 인기가 높다. 사진 황욱익

남들과 다른 경험 통해 독특한 문화 형성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지역에서 클래식카 시장은 꾸준한 입지를 다져왔다. 단순히 오래된 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지금은 가질 수 없는 그 시절의 향수를 즐기고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지나온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클래식카는 차종이나 가치를 떠나 멈춰진 시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얘기할 때가 많다. 지금까지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수집가나 마니아 중에는 클래식카를 가리켜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많았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고 그 안에서 미래를 보기 위해서 클래식카만큼 친숙한 존재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클래식카를 타는 사람들은 자동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에 이런 문화가 아직은 전무하다는 점이다. 국적을 알 수 없는 튜닝과 커스터마이징이 혼합되고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하기보다 사용자의 편의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근본 없는 반쪽짜리 문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이제는 자동차 생산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 다양한 자동차 시장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그 질적 성장에 대해서는 반드시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또 이를 위해 법률적인 손질과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