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기적
김주영 지음|문학과 지성사|100쪽|1만원

김주영 작가. 사진 조선비즈 DB
김주영 작가. 사진 조선비즈 DB

소설가 김주영은 올해로 우리 나이 여든한 살을 맞았다. 예전엔 소설가 정년이 팔십 세라고 했다. 그 나이가 되면 슬그머니 문단 활동을 중단하는 작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주영은 “소설가 정년이 팔십이란 건 옛날얘기”라며 신작 소설 ‘아무도 모르는 기적’을 냈다. “글을 계속 써야 내 감수성과 상상력을 유지할 수 있다”라면서.

신간 소설을 읽어보니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다. 기억의 갈피를 헤집었더니 김주영이 몇 해 전 고향 청송에서 독자 80여 명과 함께했던 자리가 생각났다.

김주영은 그때 대하소설 ‘객주’ 애독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저는 어릴 적에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동네 머슴들이 모파상의 소설보다 더 뛰어난 이야기를 구술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며 머슴에게서 들은 옛날이야기를 풀어놨다.

“일제 시절 시골길을 가던 목탄차(木炭車)가 호랑이를 만난다. 승객들은 각자 윗도리를 벗어 던져 호랑이가 고른 옷의 임자를 호랑이 밥으로 내놓기로 한다. 그런데 호랑이가 어린 소년의 옷을 문다.

어른들은 울며불며 애원하는 소년을 매정하게 호랑이 앞으로 던진 뒤 황급히 차를 몰아 떠난다. 그런데 호랑이는 소년을 해치지 않고 산으로 돌아간다. 목탄차는 얼마 못 가 계곡 아래로 떨어져 승객 전원이 사망한다.”

김주영의 신작 ‘아무도 모르는 기적’은 그 이야기에 여기저기 살을 붙여 한 편의 소설로 완성한 것이다. 책 부피가 얇은 것은 원고가 중편 소설 분량이기 때문이다.

요즘 소설이 점차 얇아지는 추세인 것을 나름 감안한 작가의 전략이기도 하다. 작가가 몇 해치 중단편을 모아 책으로 내던 관행에서 벗어나 시대의 속도에 맞춰 기동성 있게 중편소설도 단행본으로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앞으론 도깨비와 나무에 얽힌 민담도 중편 소설로 탈고하는 즉시 출판할 계획이다.

소설 ‘아무도 모르는 기적’은 민담이 소설로 거듭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야기는 전달과 설명을 중시하지만, 소설은 형상과 묘사에 초점을 맞춘다. 소설가 지망생들이 읽어볼 대목이 많다. 김주영은 이야기 속에 등장한 목탄차를 소설로 옮기면서 다음과 같이 그려냈다.

“적재함 뒤에서 일어난 흙먼지는 사람들 머리 위를 뒤집어씌울 듯이 덤벼들었다. 그런가 하면 질주하는 트럭의 속도에 따라 먼날치로 흩어졌다가 다시 허공으로 뽀얗게 부풀어 올라 매달리면서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때로는 그 흙먼지가 트럭의 속도를 저만치 앞질러 나가 마술처럼 뽀얗게 피어오를 때도 있었다. 그래서 적재함에 타고 있는 장꾼들 눈썹에는 흡사 새벽 서리 맞은 것처럼 뽀얀 흙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어서 작가는 시골 장터의 북새통을 문자로 재현해냈다. “거칠고 천박한 말투가 오가는 장마당의 갑작스러운 소동으로 겁에 질려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암소를 몰고 나타난 사람, 멧돼지 네 다리를 새끼로 꽁꽁 묶어 짊어지고 오는 사람, 잎담배를 겨드랑이에 끼고 오는 사람, 미역과 말린 가오리 짐을 지고 나타난 건어물 장수, 대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오는 아낙네, 땔나무 짐을 지고 나타난 늙은이, 돗자리를 어깨에 메고 팔러 오는 사내, 지게에 곡식 자루를 짊어지고 오는 사람, 강정이나 떡을 시루에 담아 오고 있는 아낙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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