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족발
영업 시간 매일 12:00~22:00
대표 메뉴 족발, 순대국

소문난감자탕
영업 시간 매일 00:00~24:00
대표 메뉴 감자국 식사, 감자탕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영업 시간 평일 18:00~1:00
대표 메뉴 맥주 ‘첫사랑’, 풍기크림 파스타


성수동에 왔다. 칠 벗겨진 공장 지대와 낮은 주택가가 혼재하고, 그 사이로 예리한 센스와 문화적 기호로 무장한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하다. 주류에 대항하는 홍대의 펑크와 히피 기수와는 다른 성수동 힙스터들은 주류와 공존하며 자신의 상품과 상점을 통해 가치관을 표현한다. ‘(서울)숲세권’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층 아파트의 신흥 부촌이 형성되고, 공장 사이로 신축 건물이 들어서며 겹겹이 쌓인 골목의 멋이 실종되고 있지만, 내실을 다지거나 흐름을 개혁한 곳엔 어김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흐르는 성수족발. 사진 김하늘
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흐르는 성수족발. 사진 김하늘

1차, 씹는 맛의 희열 ‘성수족발’

1000원짜리 핫도그, 2000원짜리 노가리, 5000원짜리 즉석 짜장면. 불경기를 여실히 읽어주는 듯한 박리다매 저가형 식당들이 들어찬 이 골목에 유일하게 줄이 끊이지 않는, 36년째 성업 중인 족발집 ‘성수족발’이 있다. 가게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기 전에 입구 옆 화이트보드에 이름을 적는 것이 먼저다. 퇴근하자마자 족발집으로 출근한 직장인들, 주문과 동시에 해시태그를 생성할 것 같은 인스타그래머 등 이미 칠판은 족발 하나로 한 곳에 모인 낯선 이름들로 빼곡하다. 순서가 돼 호명되는 이들은 마치 선발대 선수가 교체 투입으로 필드에 뛰어드는 것처럼 모가지를 풀고 어깨를 들썩이며 가게 안으로 입장한다.

돼지가 족발물에 빠진 날, 족발의 온기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그 위로 팔뚝만한 뼈와 살점이 차곡차곡 담겨 오른다. 그을린 듯 까무잡잡한 피부색, 복원력이 훌륭한 탄성, 기름을 바른 듯한 윤기가 흐르는 살점은 마치 근육 자랑 대회에 나간 남자의 큰 가슴 근육 같은 모습이다.

김을 내뿜지 않지만 포근한 온도의 살점을 입 안에 담는다. 치아로 살코기를 다지고 지방을 녹이고 피부를 자르며 눈썹으로 브레이크 댄스를 춘다. 이것은 과연 저작활동의 희열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야만적인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당해도 어쩔 수 없다. 따뜻한 온도를 담보하되, 살점을 씹기 전에 기름이 먼저 녹아 흘러 버리는 족발을 먹었을 때 그 실망감을 아는가. 감정이 과한 가수가 곡의 클라이맥스 전에 먼저 울어 버려서 관객이 감동할 기회를 앗아갈 때, 그 ‘김샘’과 같다. 터져야 할 때 터져야 한다. 녹아야 할 때 녹아야 한다.

새우젓 양념을 찍은 살코기에 무생채 세 줄을 집어 상추 위에 얹는다. 마늘과 청양고추 한 조각에 쌈장을 푹 찍어 더한다. 옴팡지게 쌈을 싸서 입안에 욱여 넣는다. 수분을 뿜으며 아삭하게 씹히는 상추쌈에 맑은 콩나물국 한 모금, 한 모금을 함께 목 뒤로 밀어 넣는다.

살점이 다 사라지면, 두 손으로 발목이 잘려 나간 발을 부여 잡고 쫄깃한 피부를 치아로 뜯고, 드러난 뼈마디를 끊어 족에 배인 단물을 샅샅이 빼먹는다. 어느새 흰 접시에는 돼지의 빈 뼈만이 유골처럼 남았다. 그리고 콩나물국이 채워주지 못하는 빨간 국물의 빈자리도 남았다. 이 길만 건너면 감자탕이 있다. 뻘건 국물에 돼지 등뼈와 우거지가 끓는 감자탕이 있다.


깊지만 무겁지 않은 국물 맛이 일품인 소문난감자탕. 사진 김하늘
깊지만 무겁지 않은 국물 맛이 일품인 소문난감자탕. 사진 김하늘

2차, 참을 수 없는 맛 ‘소문난감자탕’

‘소문난감자탕’은 1983년에 문을 연 성수동의 터줏대감이자, 주당들의 음주 집결지, 해장의 메카다. 이 곳에서 단 한 번도 소주병의 목을 조르지 않은 적이 없다. 빼곡히 자리 잡은 테이블마다 빠짐없이 사람들이 가득 찬 가게 내부는 시장통을 연상시키며, 술맛을 복작복작 돋운다. 콧속으로 퍼지는 매운 냄새는 족발의 단맛을 금세 잊어 위장 한편을 늘린다. 그 맛을 알기 때문이다. 냄비받침을 위장한 인덕션 위에 감자탕 한 냄비를 얹고 끓인다.

빨간 국물을 뼈에 붙은 살점 위로 연거푸 부으며, 데우고 적신다. 뻘건 기름이 냄비 위로 오르고 살점이 툭툭 떨어져 나올 때쯤, 살코기는 냄비에 떨구고 뼈는 건져 사이사이에 남은 살과 골을 집요하게 파 먹는다. 국물을 한 수저 뜨면 같이 건져지는 살코기에 입꼬리가 당겨 올라간다. 그 빨갛고 풍요로운 한 숟갈을 먹자 마자 몸이 우르르 풀린다. 포슬포슬하게 익은 감자는 건빵 속 별사탕처럼 각별하다.

젓가락 끝으로 쪼개 입안에 넣고 후후 식혀 입천장으로 뭉개 삼킨다. 우거지는 자르지 않고 길게 찢어 두세 번 접어 먹는다. 응축된 배추의 단맛과 감자탕 육수를 뿜는 우거지 또한 탁월하다. 하지만 이 집 감자탕의 별미는 따로 있다. 10시간 끓인 육수에 마늘, 고춧가루, 들깨를 넣어 깊지만 무겁지 않은 국물에 직접 뜬 얇은 수제비를 넣어 먹거나 밥을 볶아 먹는 것이다. 밀가루 반죽을 숙성시켜 꽃잎처럼 한 장 한 장 뜬 수제비는 쫄깃하게 씹힌다.

볶음밥을 주문하면 네 가지가 나온다. 공깃밥, 다진 깻잎, 김가루 그리고 방앗간에서 갓 짜온 참기름이다. 참기름 맛이 나는 기름이 아니다. 진짜 참기름을 넣어 볶은 밥은 향긋하고, 짭조름하며, 고소하다.


3차, 끝 입가심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씹고 빼먹고 볶아 먹는 데 체력을 다했다. 입안은 복잡다단하다. 일과를 마친 후 샤워를 하듯, 입가심이 필요하다. 2차의 고비를 넘어 3차까지 부단히 달려왔다. 대단원의 입가심이 필요하다.

1959년에 지어진 공장을 개조해 만든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탭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일 아침 30 종류의 맥주가 양조된다. 자몽의 쌉싸름한 맛과 오렌지의 싱그러운 향이 산뜻하게 넘어가는 성수동 페일 에일 한 잔으로 입가심을 시작한다. 다음은 서울숲 페일 에일, 다음은 연무장 앰버 에일. 수제 맥주로 성수동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샤워가 아니라 목욕이 필요했던 것일까. 욕조에 맥주를 가득 담아 몸을 담근다. 성수동의 밤은 길다. 대단원의 막은 내릴 줄 모른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