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사진 BBC
영국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사진 BBC

3월 29일은 영국 클래식 음악계의 ‘운명의 날’이다. 백스톱(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간 통관 자유의 보장) 조항 없는 영국의 유럽연합(EU) 자동탈퇴(노딜 브렉시트)가 이날 현실화할 경우, 영국 클래식계는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아티스트의 연주료에 부과되는 세금이 어떻게 적용될지가 문제다. 공연 3~5년 전에 미리 개런티 협의를 끝낸 연주자 계약에서 세금 부과 논의가 재개될 것이고, 아티스트의 불만에 따른 공연 취소가 빈번할 것이다.

아울러 악단의 역외 이동 시 오케스트라 악기가 제시간에 통관을 거쳐 공연 예정 시간 안에 제대로 홀에 도착할지도 불확실하게 된다. 특히 북아일랜드에 있는 얼스터 오케스트라는 백스톱과 브렉시트를 동시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더라도 영국에 잔류하겠다고 주장하는 알린 포스터 북아일랜드민주연합당(DUP) 대표를 그대로 따랐다가는 얼스터 오케스트라는 국제 시장에서 ‘갈라파고스’ 취급을 받게 된다. 영국 기업이 백스톱을 이용해 북아일랜드를 통해 EU 시장에 우회 접근하려는 ‘체리 피커(cherry picker)’ 전략도 클래식 시장에선 불가능하다.

영국 오케스트라 협회(ABO)는 미증유의 참사가 예견되는 브렉시트를 주제로 지난 1월 북아일랜드에서 연례 총회를 했다. 모임을 통해 유럽 대륙의 반영 정서가 얼마나 강한지 재확인했고, 영국 음악 기관의 국제 경쟁력 회복을 위한 아이디어에 골몰했다.

과거처럼 적은 개런티에도 런던을 찾았던 명성 있는 연주자들이 다시 영국을 찾는 횟수가 급감할 것이다. 비자와 이중과세 방지를 위한 기본 서류의 재작성을 요청하는 영국 이민국의 선제적 조치에 따라, 스타를 보유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들이 이미 잘게 쪼개졌고, 여러 에이전시가 유럽으로 향했다. 시장 참여자 대다수가 영국 작곡가 헨델(1685~1759) 시절부터 이어온 ‘클래식 수도, 런던’의 몰락을 방관하는 상황이다.

반면 영국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는 곳도 있다. 스코틀랜드 독립당(SNP) 대표 니콜라 스터전은 영국 의회가 백스톱 논의로 한창이었던 2월,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공연장 파리 필하모니에서 프랑스 대표 예술단체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페스티벌 사이의 유대 강화를 선언했다. 프랑스 제1의 악단인 파리 오케스트라를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 초청해, 영·불이 아닌, 스코틀랜드·프랑스의 친선을 예술로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브렉시트를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제2의 분기점으로 삼으려는 SNP의 전략이 음악 분야에서 시작된 것이다.

여름철 최대의 영국 클래식 축제인 런던 BBC 프롬스에 참여하는 유럽 본토 악단은 격감할 전망이지만,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유럽 대륙의 음악 단체에 문호를 더 개방할 예정이다.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 근거한 BBC 웨일스 내셔널 오케스트라, 웨일스 오페라 등 웨일스 대표 예술단체는 상대적으로 브렉시트의 충격에 둔감하다. 그동안 EU 펀딩을 통해 재정 지원을 받았지만, 국민투표에서 웨일스 주민은 EU 탈퇴에 찬성을 표했다. 고립에 익숙했던 과거의 역사처럼 브렉시트에 따른 고난도 곧 지나가리라는 수동적인 입장이다.

영국을 빠져나간 클래식 아티스트를 선별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곳은 네덜란드다. 런던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필하모니아에 주로 출연하던 저명 지휘자들과 협연자들의 향후 스케줄을 세계 최고급 악단,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로테르담 필하모닉을 비롯한 네덜란드 소재 악단들이 나눠 갖는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무티, 주세페 시노폴리, 다니엘레 가티, 지아난드레아 노세다처럼 전통적으로 남부 유럽의 정서를 감독 기용으로 보충했던 영국 악단을 대신해, 이제는 네덜란드 오케스트라가 젊은 이탈리아 지휘자들을 주시한다. 런던의 손실은 곧 암스테르담의 이득이 됐다.

유럽 입장에선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해도 본토의 오페라하우스나 아트센터의 제작 방식에 큰 변화는 없다. 런던 로열 오페라와 공동 제작을 이어온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프랑스 파리 오페라, 독일 바덴바덴 축제 극장은 브렉시트로 로열 오페라가 빠져나가도 신작 프로덕션에 참여했던 파트너가 주춤할 뿐 예술적, 재정적 구조에 타격은 미미하다.


브렉시트 방지 원하는 영국 공연계

유럽 내 클래식 인력과 자금 흐름의 변수는 브렉시트보다 5월 유럽의회 선거 결과다.

반이민 정서를 공유하는 극우 정당이 EU 의회에 늘어날수록, 예술을 통한 각국 협력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베를린과 파리의 클래식 시장은 은근히 런던의 몰락을 즐기는 분위기다.

영국 공연 예술 시장이 우선적으로 바라는 그림은 유럽단일시장(EEA) 잔류와 노딜 브렉시트의 방지다. 3월 29일 이후 관세와 비자 협정을 개별적으로 맺어서라도 유럽과 영국의 교류가 재개돼야 하고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EEA에서 배제되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행정 비용을 줄일 방법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기술적으로 영국과 유럽 사이에 라디오 전파 월경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과금과 과세 대상국 지정에 대한 세심한 개별 협상이 요구된다. 음반과 영상물에 대한 저작권과 라이선싱 기존 논의 역시 브렉시트를 계기로 정비될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파운드화 폭락을 틈타 로컬 프로모터들은 파운드 결제를 유도하겠지만, 영국 오케스트라 입장에선 해외 투어의 개런티 입금은 현행대로 유로화와 달러화를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 통관에서 악기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차제에 스위스를 포함한 전 유럽권에 ‘유럽악기여권(European Musical Instrument Passport)’의 적극적 사용이 권장된다.

영국 공연 예술 시장의 수뇌들은 영국이 유럽의 중심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은 공유하지만, 틈만 나면 유럽 통합 반대를 일삼던 영국 정치권의 행태를 향해 자정의 목소리를 제때 내지 못한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 한정호
에투알클래식 & 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