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곽재구. 사진 조선일보 DB
시인 곽재구. 사진 조선일보 DB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곽재구 지음|문학동네|156쪽|1만원

곽재구 시인은 전남 순천에 산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광주일고와 전남대를 다니며 문학 수업을 한 시인은 순도(純度)가 높은 남도 사람이다. 2001년 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임용된 뒤 그곳에 터를 잡곤 순천만을 끼고 흐르는 물결과 포구의 불빛으로 제 언어에 자양분을 공급해왔다. “사람들은 이 도시를 순천(順天)이라 부른다. 하늘의 뜻을 따름.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감탄한 시인은 순천을 가로지르는 샛강 동천을 날마다 거닐며 시를 떠올렸고, 자동차를 타고 순천만으로 가선 노을 지는 바다에 녹아들거나, 해안도로를 타고 여수로 가며 멀고 가까운 섬들을 힐끗 보곤 했다.

시인은 유난히 포구를 사랑했다. 전국의 포구를 찾아다니며 쓴 책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지난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했을 때 선정된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권’에 오르기도 했다.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는 순천의 동천에 바친 시편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물을 보면 좋아요/ 흐르니까요”라며 강물의 노래를 받아 적듯이 시를 썼다. “두 손을 모아 강물을 받아요/ 그 물로 얼굴을 비벼요/ 물고기 냄새와 달빛 냄새나네요/ 아침 해가 강물에게 들려준 얘기를 느낄 수 있어요”라는 시인의 노래는 강물을 통해 우주 만물의 운행에 교감하는 순간을 세수(洗手)에 빗대 영혼의 정화 작용을 그려냈다. 시인은 강물을 가리켜 “승천하는 푸른 용이고, 현자(賢者) 같다”고 했다. 시의 젖줄이자, 시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시인은 동천에 놓인 징검다리에 쭈그리고 앉아 시를 여럿 떠올렸다. “강물 위에 초승달이 떴다/ 강물이 다가올 때마다 징검다리는 가슴이 뛰었다/ 강물이 초승달을 데려다주면 함께 세상 끝까지 갈 것 같았다”라는 시행에서 징검다리는 끝없이 확장되는 길이 된다. 영혼의 도약을 꿈꾸게 한다. 시인은 동천에 놓인 한 쌍의 징검다리에 저마다 ‘미르’와 ‘미리내’란 이름을 남몰래 지어주었다. “미르에 앉으면 이 사랑스런 징검다리가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느낀다”라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시집 해설 대신 시인이 쓴 산문이다. 200자 원고지 160장이나 되는 분량이다. 시인의 시론(詩論)이 담겨있지만, 읽다 보면 산문시(散文詩) 같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강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해가 잠드는 바닷가 마을에 이른다. 마을 이름이 와온(臥溫)이다. 노을 무렵에 선창에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마을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느낄 수 있다. 와(臥)는 누워 있음을 뜻한다. 온(溫)은 철학적이다. 물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 피가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산문을 통해 시인은 김소월, 정지용, 백석, 윤동주의 시를 필사했던 젊은 날을 되새기면서 시어(詩語)로 말하는 한글의 남다른 세계를 펼쳐 보인다. “모국어는 아름다움의 외연이며, 숨길 수 없는 고통의 심연”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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