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1500여 건의 부검을 담당한 법의학자 유성호(47세). 그는 매주 월요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체를 보기 위해 출근한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사진기자
20년간 1500여 건의 부검을 담당한 법의학자 유성호(47세). 그는 매주 월요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체를 보기 위해 출근한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사진기자

법의학자 유성호를 만나러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찾았다.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를 살아서 만나자니, 괜스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현재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을 겸임하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방송에서 의문의 죽음의 해결사로 등장하곤 했다.

최근에 출간된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그간 그가 목격하고 공부한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았다. 존엄사, 가사, 뇌사, 식물인간. 검시, 검안, 부검, 해부…. 문장의 갈피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할 줄 알았건만, 갈피마다 서늘한 산소를 불어넣듯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생의 의지가 선명하게 약동했다.

우리 모두 죽음을 구체적으로 마주 봐야 한다는, 법의학 앞에 완전 범죄는 없다는, 의연한 남자를 만났다. 유성호는 20년간 그의 손으로 1500여 구의 시체를 부검했다.


유성호 교수의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유성호 교수의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서울대 교양강의 ‘죽음의 과학적 이해’에 학생들이 벌떼처럼 모여든다고 들었다.
“광속 마감이다. 처음엔 호기심에서 온다. 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나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 책에 나오는 미스터리한 죽음을 보려고. 아무래도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 탐정 김전일’이 된 듯한 흥분감이 있으니. 하지만 갈수록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숙연한 감정을 느끼더라.”

무엇을 가르치나.
“우리 몸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는지, 자살과 타살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의사 조력 사망이나 안락사, 설레지만 무거운 주제인 영생까지 다룬다. 대학 입시를 위해 무조건 달려온 20대 청년들은 순간 멈칫해서 자문한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근 드라마 ‘SKY캐슬’에서 남을 짓밟고서라도 가고 싶을 만큼 최상위 목적지로 나온 곳이 서울대 의대다. 선생은 어떻게 의사라는 자본주의 선민의 가운을 벗고 법의학자가 됐나.
“의대에 간 건 파스퇴르의 전기를 읽고서였다. 대학에 진학할 당시 TV에서 ‘사랑이 꽃피는 나무’라는 드라마를 했는데, 의대생들이 젠틀해보이기도 했다. 전공을 선택할 땐 신경외과와 감염내과 쪽을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1세대 법의학자인 이윤성 교수의 강의를 들은 거다. 지금 내가 하는 수업이다. 그때 스승이 그러시더군. ‘전망은 최악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알고 보니 내가 10년 만의 제자였다. 사명감은 아니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소영웅주의 같은 게 있었나 보다. 아들이 어려운 의대에 들어갔다고 좋아하셨던 부모님은 ‘법의학이 뭐 하는 거니?’라고 의아해하며 물으셨다.”

부모님이 실망이 크셨겠다. 뭐라고 설명했나.
“시체를 해부하는 일이라고 했다. 황당해하셨다(웃음). 사람 살리는 일,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왜 죽었나’를 밝혀서 인권을 회복시키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윤 일병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때 내가 고인이 군대에서 폭행으로 죽었다는 걸 밝혀냈고 그 일로 군대 내 인권 문제가 부각됐다. 지금은 부모님도 대견해하신다.”

대한민국의 법의학자는 모두 합해도 40명 정도. 그들은 학회가 있어도 함께 버스를 타지 않는다. 혹여 사고라도 나서 전멸할까 우려돼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죽음의 의문을 밝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위상은 높아지지만, 법의학 공무원 지원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했다. 대학에서 후임 교수를 뽑기도 쉽지 않다. 훈련된 병리 전문의 자격을 요구하는 데다 논문 연구, 부검, 법률적 소양 등 갖춰야 할 조건은 많지만 돈과 권력과는 거리가 멀어서다.

법원과 보험회사의 자문 의뢰가 가장 많다고 들었다.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누군가의 죽음에서 죄와 돈의 흔적을 읽어내는 책임이 무겁겠다.
“법정에서 범인의 죄를 밝혀내는 일은 사명이다. 반면 보험회사는 상해보험이 걸려 있어서 중요하다. 가령 목욕탕에서 70대 노인이 둥둥 떠 있다면 그게 익사냐, 아니냐를 판별해야 한다. 익사면 보상금이 나가고 질병사면 안 나간다. 얼마나 치열하게 따지는지, ‘목욕탕 익사’로 내가 논문도 썼다. 70~80%는 질병이 있는 병사다. 쓰러져서 물을 흡입한 증거가 없으면, 유가족은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

우리 육체는 대개 어떤 과정을 거쳐 죽나.
“생의 말기적 증상이 있다. 통증이 있고 피곤하고 입이 마르고 손발이 저리고 가려움증을 겪는다. 가장 많이 겪는 징후는 졸음이다. 계속 깨워도 졸고 꼬집어도 반응이 없으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사망에 이른다. 그런데 노인분들 앞에서는 절대 이런 말을 안 한다. 내가 죽을 때가 된 거냐고 화를 내신다.”

죽기 직전에 졸음이 쏟아진다는 게 신기하다.
“뇌의 각성 기능이 떨어지는 게 원인이다. 점차 뇌의 활동이 꺼져 코마 상태에 이르는 거다.”

항상 죽음과 가까이 있는 유성호는 졸음과 혼수상태를 칭하는 ‘그레이존(gray zone)’을 무한정 연장하는 연명 치료에 비판적이다. 높은 의료 비용과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그레이존’ 상태를 맞는다고 들었다.
“일단 심폐소생술로 숨을 연장할 수 있으니까. 사실 나의 위엄을 유지한 채 죽을 수 있다면 굉장히 행운인 거다. 요양병원이나 중환자실에 가본 적 있나. 전신에 호스를 꽂고 욕창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다. 죽음의 시간이 늘어나는 게 과연 환영할 일인가, 이젠 공개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연명 의료 중지에 대한 법안이 나온 것도 힘겨운 ‘그레이존’ 상태에서 가족들의 어려운 선택을 돕기 위해서다.”

안락사는 존엄사 혹은 자비사라고도 하는데 표현법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지 않나.
“자비사는 고통 없이 죽도록 도와준다는 중립적 표현이고, 존엄사는 존엄하게 죽기 위해 치료받지 않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거다. 김수환 추기경도 생전에 ‘숨과 맥박이 멈췄을 때 애써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좀 더 나아가서 의사 조력 자살은 좀 충격적이더라. 미국 병리학자 잭 키보키언이 고안했다는 수면제와 독약이 든 기계 장치 말이다. 그런데 회생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로 죽음의 의지가 확고했던 사람들도 차마 그 버튼을 스스로 누를 수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직접 죽음의 버튼을 누른 사람은 40%였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과 함께 삶의 의지가 올라왔던 거다. ‘죽음의 의사’ 잭 키보키언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미국의 오리건주와 워싱턴DC는 존엄사를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논란이 있지만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도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존엄사를 찬성하나.
“가망 없는 연명 치료에 들어가면 환자들의 실제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과정을 지켜본 의사로서 치료받지 않을 권리는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종교와 생명 윤리의 관점으로는 좀 더 복잡하다. ‘자살이냐 아니냐’로 파고들어가니까.”

한편 자살 시도자들을 인터뷰한 ‘뉴요커’ 기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금문교에서 뛰어내릴 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뛰어내린 후에는 죽고 싶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는 진술이었다.
“서울대 정신의학과 안용민 교수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라. 자살 시도 중 구출된 사람들을 진료하면서 동일한 대답을 들었다고. ‘죽음을 오래 준비했고 죽음으로 모든 게 해결되리라 믿었지만, 막상 죽는 순간 살고 싶었다’는 거다. 삶의 다음 선택지, 답안지를 못 본 상태에서 하는 극단적 시도는 그만큼 안타깝다. 자살 직후에 후회한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대도시보다 시골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의외다. 뉴욕보다 알래스카가, 서울보다 강원도가 자살률이 더 높다는 게 사실인가.
“맞다. 중요한 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느냐다. 다들 전원생활을 꿈꾸는데 익숙지 않은 곳에서 소속감 없이 사는 건 위험하다. 사람 없는 곳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외치며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부류는 많지 않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노인도 소속감이 있어야 자살을 막을 수 있다. 지방도 인구 밀도가 떨어질수록 자살 방지에 최대한 힘써야 한다.”

정말 꽃피는 봄이 오면 꽃보다 시신을 더 많이 보나.
“겨울에 강에 떨어지신 분들의 시체는 이듬해 봄에 떠오른다. 부패하고 가스가 차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거다. 날이 풀리고 꽃이 필 즈음, 내가 부검하는 분들은 거의 다 익사자다. 유서가 있으면 자살, 없으면 타살, 간혹 사고사도 있다.”

수많은 유서를 봤을 텐데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나.
“폐 질환으로 목숨을 끊은 분이셨다. 자기 빚을 세세히 기록하고 갚을 방도까지 적은 뒤 마지막으로 자식에게 어릴 때 때려서 미안하다고 쓴 엄마의 유서가 기억난다. 주변에 폐 끼치지 않으려고, 빌린 돈 3만5000원까지 빼놓지 않고 쓰셨다.”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범죄자가 적절한 형벌을 받고, 죽은 자의 인권이 회복될 때 보람을 느낀다. 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은 중요하다. 세종 때 집필된 최초의 법의학서 제목이 ‘무원록’이다. ‘원한이 없게 하라’는 거다.”

만약 암 진단을 받았을 경우, 살겠다는 희망으로 노력하는 것과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 결정을 언제 내려야 하나.
“치료와 동시에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의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완치 가능성이 떨어지면 대비해야지. 과거엔 의사가 환자에게 임박한 죽음을 알리는 걸 ‘나쁜 소식 전하기’라고 했다. 요즘엔 그냥 ‘소식 전하기’라고 한다.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소멸은 당연한 이치니까. 죽음이 의사의 내레이션(해설)이 아니라 나의 내레이션이 되려면 결단이 필요하다.”

암 선고를 받자 빚·원고 정리부터 깔끔하게 준비했던 이문구 작가와 장례식장에 탱고와 와인을 주문했던 그레이스 리 선생은 매우 좋은 사례다.
“나도 미리 아들한테 얘기했다. 한 번도 안 입어본 뻣뻣한 수의 같은 거 입히지 말고, 결혼할 때 입은 예복 입혀서 보내 달라고. 장례식장에 틀 영상도 미리 찍어 둘 참이다. 와주셔서 감사하고, 내 아들 피곤하니 10시 전에 돌아가라고(웃음).”

마지막으로 품위 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태어날 때 축복받고 웃은 것처럼 죽을 때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즐겁게 마무리하는 거다. 급작스럽게 죽을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고, 주변에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