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갈비
영업 시간 매일 12:00~21:00
대표 메뉴 ‘돼지갈비’ ‘김치찌개’

팩피(FAGP)
영업 시간 화 18:00~22:00, 수~금 11:30~15:00, 18:00~22:00
대표 메뉴 ‘잣 크림 스파게티니’ ‘고수 스파게티니’


‘대성갈비’에서 먹은 돼지갈비. 사진 김하늘
‘대성갈비’에서 먹은 돼지갈비. 사진 김하늘

1│유독 많은 사람 몰리는 성수동 대성갈비

내게 돼지갈비는 달콤한 향수이자 타버린 추억이다. 나의 아버지는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하며 당구장을 운영했다. 나는 당구장 쪽방에서 유아기를 보내며, 인형 대신 당구공을 가지고 놀았고 기린 신장계 대신 당구 큐대로 키를 쟀다. 아버지는 월급날이면 기름내 나는 품 안에서 월급봉투를 꺼내 엄마한테 떡하니 안겨주곤, 돼지갈빗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외식할 때마다 빨간 빵떡모자를 챙겨 썼는데, 그 모습이 귀엽다고 사이다 한 병을 공짜로 받은 이후부터였다.

식당 안은 고기 굽는 연기와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멀리서 내 모자를 알아본 여 주인은 한걸음에 달려와 우리 가족을 잠깐 대기시킨 뒤, 식당 안 흡연자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며 담뱃불을 끄게 했다. 아버지는 나를 번쩍 안고 들어가 손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내게도 인사하는 법을 가르쳤다. 세 식구는 드럼통 탁자에 둘러 앉아 숯불이 채워지기만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고기가 굽히는 대로 가위로 잘라 나와 엄마 앞에 산처럼 쌓아주었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갈비 한 점과 공짜 사이다 한 모금은 밀크캐러멜 몇 박스와도 바꿀 수 있을 만큼 달디 달았다.

성수동 갈비 골목, 길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냄새에 허기가 진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갈색빛 향에 애를 태운다. 색 바랜 간판의 ‘경성 고급 수입육 도매센타’를 중심으로 대성갈비 등 몇 개의 돼지갈빗집이 모여 있다. 유독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은 단연, 대성갈비다. 성수동 주민과 공장 노동자를 상대로 장사한 지 21년째다.

가게 안은 달콤한 회색 열기로 가득하다. 앞치마를 두른 이모들의 시원시원한 안내에 따라 자리를 배정받는다. 탁자 가운데 뚫린 화구에 벌건 참숯이 채워진다. 간장·설탕양념에 재운 돼지갈비는 스테인리스 양푼에 넉넉히 담겨 상에 오른다. 이어 새빨간 양념게장, 굴무생채나물, 신선하고 다양한 쌈채소 등 돼지갈비를 최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반찬이 여럿 깔린다. 어지간히 손이 많이 가는 찬들이다.

우리 가족은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가 숯을 태우고 엄마가 갈빗상을 차릴 지. 어느새 아버지만큼 키가 훌쩍 자란 나는, 빵떡모자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 상과 식당 부엌을 오가며 반찬을 날랐다. 아버지에게서 석유 냄새 대신 기름진 불 냄새가 났다. 엄마의 고운 손은 곱아만 갔다. 돈을 긁어모은다는 말을 들을 때쯤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에 눈물을 머금고 폐업을 했다. 이후 한동안 부모님은 입이 쓰다고 돼지갈비를 잘 드시지 않았다.

너무 푸진 상차림에 그 수고가 짐작돼 짜증이 났다가도, 뻘건 양념이 범벅된 게 다리를 우적우적 씹으며 허기를 달랜다. 아버지처럼 석쇠 위 갈비를 자주 뒤집어가며 애지중지 굽는다. 먹기 좋게 잘라 불판 위에 굴려 가며 골고루 태우듯 그을린다. 비계 달린 살점은 숯불에 구운 통마늘과 쌈장과 함께 입속으로 직행하고, 퍽퍽한 살코기는 상추에 얹어 촉촉한 무생채와 한 입 가득 싸 먹는다. 봉긋하게 부풀어 부들부들한 계란찜과 시큼하고 얼큰한 김치찌개로 입안을 갈음하고 배속을 두둑하게 채운다. 하고 많은 갈빗집 가운데 왜 이 집만 이토록 많은 사람이 긴 시간을 기다리며 줄을 서는지 그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서울에서 보기 흔치 않은 귀한 인심 덕분이다. 누군가의 곱아가는 수고 덕분이다.


‘팩피(FAGP)’의 인기 메뉴인 고수 스파게티니. 사진 김하늘
‘팩피(FAGP)’의 인기 메뉴인 고수 스파게티니. 사진 김하늘

2│끝내주는 파스타, 팩피(FAGP)

“드디어 성수동에도 맛있는 파스타집이 생겼다!” 팩피가 오픈하자마자 성수 피플들은 하나같이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한 인증샷과 입소문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고, 2019년 미쉐린 가이드의 빕구르망(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맛을 두루 갖춘 식당에 부여하는 등급)으로 선정되는 호재로 이어졌다. 하지만 팩피를 그저 가성비 좋은 파스타집이라 치부하는 건 너무 시시하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여행자 숙소에 몇 달간 머물 때다.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들이 오가는 호스텔의 주방은 늘 분주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나라별로 팀을 이뤄 그들의 일상식을 만들어 서로 나눠 먹었다. 그래 봤자 여행자들의 변변치 않은 주머니 사정만큼이었다. 그야말로 공산품 잔치였지만 이탈리아, 중국, 일본, 인도, 이집트 등 다국적인 만큼 재미도 쏠쏠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내 방엔 향신료와 소스 따위가 쌓여갔다. 심심하면 제멋대로 재료들을 믹스매치해가며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중 괜찮은 게 있으면 술을 마시는 여행자들에게 안주가 필요하지 않냐며 하나둘 팔며 용돈을 벌었다. 토르티야에 제육볶음과 고수·아보카도·키드니빈으로 타코를 만들어 팔거나, 토마토수프에 연두부와 페페론치노를 넣어 해장국을 만드는 식이었다. 이튿날 방문에 포스트잇 주문서가 붙어 있을 정도로 반응은 꽤 좋았다. 손에 쥐어지는 재료마다 마치 하얀 도화지이자 물감 같았다.

Freaking Awesome Good Pasta의 줄임말인 팩피(FAGP)는 말 그대로 ‘끝내주게 맛있는 파스타’라는 뜻이다. 다양한 파스타 중 고수스파게티가 가장 인기를 끈다. 코코넛밀크, 닭가슴살, 고수를 사용해 동남아의 그린 커리를 연상시키는 고수 스파게티니는 맛, 모양새, 먹는 법도 재미있다. 접시 한쪽엔 코코넛밀크에 버무려진 스파게티와 신선한 고수를, 다른 한쪽엔 고수퓌레를 얹고, 고수오일을 휘휘 뿌려 마무리했다. 난생 처음 보는 비주얼이다. 설렘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포크에 돌돌 말아 한 입 꽉 차게 넣는다. 고수의 향긋함과 코코넛밀크의 실키함을 중심으로 결대로 찢은 부드러운 닭가슴살과 따뜻한 온도의 오이 조각까지 혓바닥을 희롱하며 귓속까지 간지럽힌다. 브라운 버터로 볶은 오징어, 견과류, 리가토니를 토치로 그을리고, 불이 닿은 레몬 반 조각을 죽 짜서 비벼 먹는 오징어 리가토니 또한 인기 메뉴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프라이팬과 긴 젓가락이 아니라 어쩌면 도화지와 물감이 아닐까. 그의 음식을 캔버스에 쏟아부으면 재기 발랄한 팝아트 그림 한 점이 완성될 것만 같다. 그것은 분명 Freaking Awesome Good Piece, ‘끝내주게 멋진 작품’일 것이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