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평집
영업 시간 월~토요일 11:00~21:30
대표 메뉴 닭곰탕, 닭전골, 닭내장탕

진미네
영업 시간 월~토요일 14:00~24:00
대표 메뉴 두부김치 꼼장어, 병어찜 굴전


1│황평집

그는 자기가 꽤 괜찮은 남자라고 했다. 1등 신랑감은 아니지만, 본인과 연애를 하면 인생이 즐거워질 거라고 했다. 크고 작은 음악 공연은 물론이고 철마다 음악 페스티벌에 다니고, 제주도와 일본을 밥 먹듯 나다니며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관심이 생겼다. 이제껏 어느 학교를 나와서 어느 직장에 다니고 어디에 사는지만 지껄였던 시시한 남자들과는 달랐다. 아는 건 얼마나 많은지, 음악에 관한 글을 쓰며 먹고 산다는 그는 24시간을 음악에 대해 아는 척만 해도 바닥이 안 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운전은 못하지만 서울 시내 지하철과 버스 노선까지 다 외운다고 했다.

그의 이런 기발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 마음에 던진 물수제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미남도 아니고, 170㎝에서도 4㎝가 모자랐다. 비염이 심해서 꽃가루가 날리는 봄에는 쉴 새 없이 코를 풀어댔고, 멀리 떨어져서 걷고 싶을 정도의 난감한 패션으로 매번 당혹스럽게 만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남 주기도 내가 갖기도 여러모로 곤란한 남자였다.

공기마저 달큰한 봄이었다. 그에게 문득 닭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바로 톡방에 좌표 하나를 띄웠다. 그날 저녁,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을지로 3가와 4가 사이, 인현상가 앞에 자리 잡은 닭곰탕집이다. 황해도와 평안도 출신의 부부가 고향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황평집’이라 이름 지었다. 개업한 지 50년이 넘도록, 점심에만 닭곰탕 300그릇을 팔아 치우는 건재한 노포다.

나는 먼저 도착해 그를 기다렸다. 얼마 안 돼서 그가 뜨악하는 차림으로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어깨가 넓은 형광색 재킷에 개구리알 같은 커다란 안경 차림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눈알이 콧구멍으로 빠져 나올 것같이 코를 힘차게 풀어댔다. 그러곤 본인이 입고 있는 형광색 재킷은 마치 70년대 프로그레시브록 같은 존재라며 알 수 없는 말로 자신의 옷을 뽐냈다. 그 와중에 상에는 뽀얀 곰탕국물과 깍두기, 부추무침, 마늘쫑무침이 올랐다. 그는 그제서야 자랑을 끝내고 주문을 했다. 그러더니 닭 국물을 한 술 떠 보라, 반찬을 먹어 보라는 둥 나를 살뜰하게 챙겼다. 닭 기름이 영롱하게 떠 있는 국물은 바깥 공기보다 달았다. 아무래도 전날 과음한 게 잘한 일 같았다. 닭을 우려내는 3시간 동안 꼬박 기름을 걷어낸 덕에 얻어낸 그 담백한 국물은 마치 해장수, 아니 생명수와도 같았다. 나는 말없이 그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곧이어 상 위에 닭찜이 올랐다. 닭 한 마리가 부위별로 찢겨 얕은 접시에 얌전히 담겼다. 커다랗고 미끈한 닭다리에 군침이 돌았다. 그는 내게 닭 껍질을 먼저 먹어 보라 권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공이 역력한 닭의 피부를 보기 싫었고, 그 미끄덩한 느낌도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한 번 믿어 보라며, 누르스름한 닭껍질에 소금을 묻히더니 내 입으로 가져다 댔다. 나는 싫다고 말하면서도, 순순히 그 한 입을 받아 먹었다. 노인의 거죽처럼 탄력 없이 질겅질겅 씹히는 닭 껍질이 아니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쫄깃하며, 녹진한 고소함이 흘러 나왔다. 그는 내 얼굴을 힐끔 훔쳐 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늘종무침을 집어 내 입에 넣었다. 나는 덥석 또 한 입을 받아 먹었다. 새콤달콤한 양념이 버무려진 마늘종무침은 맵싸한 향을 퍼뜨리며 입 안을 개운하게 갈음했다.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뻘건 닭무침도 상 위에 올랐다. 숭숭 썬 오이, 양파, 당근과 함께 무쳐진 닭고기는 또 다른 맛이었다. 겨자가 들어간 양념은 코끝을 톡 쏘았다. 쫄깃한 닭 목살까지 들어가 먹는 재미까지 있었다. 닭곰탕을 몇 그릇이나 갈아 치우고, 소주병을 몇 병이나 쌓았을까. 술기운인지 안줏발인지, 그를 앞에 둔 내 마음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진미네 대표메뉴 ‘병어조림’ 사진 김하늘
진미네 대표메뉴 ‘병어조림’ 사진 김하늘
진미네 요리에 들어가는 해산물 사진 김하늘
진미네 요리에 들어가는 해산물 사진 김하늘

2│진미네

그를 따라 나섰다. 인현상가를 가로질렀다. 불 꺼진 상가 아래, 그의 형광 재킷은 가로등보다 더 빛났다. 번쩍이는 그의 뒤꽁무니를 따라 인현시장 골목을 파고들었다. ‘진미네’. 꼴뚜기, 주꾸미, 갯장어, 소라 등의 해산물을 좌판에 올려 놓고 파는 실내 포장마차다. 여섯 평만 한 작은 칸을 빌려 장사를 시작했다가, 줄을 설 정도로 장사가 잘돼 마주보는 공간까지 얻어 확장했다. 한곳에서 벌써 28년째다. 안에 자리가 남아 있는데도, 옛날 생각에 굳이 좌판 앞에 서서 먹는 아저씨들도 있다.

“이렇게 갑오징어 하나 제대로 삶는 기술만 있어도 평생을 먹고 살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옆자리 여자의 한마디에 귓구멍이 커져, 냉큼 갑오징어 한 마리를 시켰다. 그는 병어 조림에 밥 한 공기도 추가했다. 기본 안주로 나오는 순대와 간, 직접 담근 깍두기에 소주 한 병을 금세 비웠다. 깡통 탁자 위에는 병어조림과 하얀 갑오징어 한 마리가 놓였다. 초장에 고추냉이를 풀어 잘 섞은 후, 갑오징어 한 점을 폭 찍어 입 안에 넣었다. 그 여자 말이 맞았다. 이런 기술을 배워야 한다. 갑오징어를 숱하게 먹어봤지만, 이토록 연하고 촉촉한 숙회는 처음이었다. 그 맛이 예뻐서 흰 접시 위에 상추를 깔고 누워 있는 오징어가 요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국물이 반쯤 졸아든 병어조림 살을 큼지막하게 발라 내 앞에 두었다. 그리고 흰 밥 위에 잔챙이 살이 가득한 조림 양념을 얹어 쓱쓱 비빈 한 술을 떠 먹여 줬다. 짭조름하고 매콤하며 그리고 달콤했다.

우리는 가게를 나와 충무로의 밤거리를 걸었다. 그런데 불현듯 이 남자에게서 형광인지 후광인지 모를 아우라가 비쳤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가 이제껏 내 마음에 던진 작은 돌들이 쌓여, 사랑의 봇물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공기마저 달큰한 봄이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라이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