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졸업’에서 더스틴 호프만의 애마로 등장한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맨 오른쪽). 사진 황욱익
영화 ‘졸업’에서 더스틴 호프만의 애마로 등장한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맨 오른쪽). 사진 황욱익

이탈리아 제품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멋스러움과 낭만, 열정이 가득하다는 평가와 잦은 고장과 일정하지 않은 품질이 그것이다.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아직까지 전자에 더 가까운 편이다. 페라리를 비롯해 마세라티, 피아트, 란치아 등 다양한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가 있지만 이 중 가장 개성이 강하고 ‘차 좀 아는 남자들’은 주저 없이 알파 로메오를 최고로 꼽는다.


자동차 모든 부분에 아름다움이 가득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상징하는 3가지 중에 알파 로메오(나머지 두 개는 열정과 말아 피우는 담배)가 가장 임팩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5년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이자 차게 앤 아스카의 뮤직비디오 ‘온 유어 마크(on your mark)’에는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뿐이 아니다.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1967년)’을 비롯해 스티븐 스필버그의 역작 ‘뮌헨(2005년)’, 코믹 영화 ‘스파이(2015년)’까지 알파 로메오가 등장하는 영화만 해도 수십 편이다. 영화에서 알파 로메오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등장하면서 ‘어 저 차 뭐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 정도로 소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개인적으로 알파 로메오가 등장하는 최고의 장면은 스파이에서 나오는 주행 장면이다. 능글능글한 이탈리아 정보원 알도(피터 세라피노윅)가 몰고 등장하는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는 그와 찰떡궁합을 이룬다.

요즘이야 고출력 차들이 넘쳐 나지만 그래도 차 좀 아는 남자들 사이에서 성능과 상관없이 알파 로메오는 그 이름만으로 ‘누구나 품고 싶어 하는 멋진 차’로 통한다.

알파 로메오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작한 자동차 회사다.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은 애초 토리노였지만 워낙 지역색이 강한 국가다 보니 알파 로메오는 엠블럼에도 밀라노를 넣을 정도로 자부심이 엄청나다. 물론 지금은 피아트 그룹에서 다른 자동차 회사들과 모두 한솥밥을 먹고 있지만 그중 정체성이 가장 뚜렷한 회사다. 참고로 알파 로메오를 상징하는 색상은 붉은색으로 이탈리아 국적의 레이싱팀이 사용하는 색이기도 하다.

차 좀 아는 남자들이 알파 로메오에 열광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출력이 높은 것도 아니고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지만 알파 로메오에는 디자인부터 모든 부분에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간결하지만 관능미를 자랑하는 선과 멋스러운 디자인, 작지만 기분 좋은 진동을 전해 주는 엔진, 경쾌한 움직임 등 자동차가 갖춰야 할 모든 미덕을 다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알파 로메오는 세계 최초로 알루미늄 헤드를 탑재한 엔진을 생산했고 현재 거의 대부분의 엔진에서 사용하는 오버 헤드 캠(엔진의 흡기밸브와 배기밸브를 제어하는 캠축이 실린더 헤드 위에 설치된 타입)을 맨 처음 고안하기도 했다.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도 출중하다. 밀레 밀리아를 비롯해 F1, 각종 투어링카 시리즈를 평정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93년 독일 투어링카 시리즈 우승이다. 이때 우승 기념으로 알파 로메오의 엠블럼 중 아이를 먹는 용 문양이 경쟁자였던 ‘메르세데스-벤츠를 먹는 용’으로 패러디되기도 했다. 멋과 낭만, 해학을 즐길 줄 아는 자동차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알파 로메오 마니아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인 1973년식 2000GTV. 사진 황욱익
알파 로메오 마니아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인 1973년식 2000GTV. 사진 황욱익

낭만과 멋이 있는 알파 로메오 시승

사실 필자는 알파 로메오를 늘 동경했지만 큰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1973년식 알파 로메오 2000GTV를 시승할 기회를 얻었다. 지금도 그때의 엔진 울림이나 배기음이 생생하다. 2000GTV의 코드네임은 ‘티포 105.21’로 계보상 알파 로메오의 역작으로 불리는 줄리아 쿠페 시리즈 중 가장 나중에 나온 모델이다. 알파 로메오의 대표 쿠페라 불리는 1750과 1600GT 시리즈 역시 계보상 줄리아 쿠페에 해당한다. 1t 남짓의 가벼운 차체, 2000cc 직렬4기통 엔진에서 나오는 132마력의 최고출력은 요즘 차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할 수 있지만 드라이빙 감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전자 제어 장비가 전혀 없는 2000GTV는 운전자의 의도를 재빠르게 알아차린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스로틀 안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철컥거리며 들린다. 시트를 통해 울리는 잔잔한 진동, 파워 스티어링이 없는 지름이 긴 운전대는 요즘 차와는 접근 방식 자체를 달리해야 한다. 클러치를 밟고 기계적인 느낌이 가득한 기어를 넣고 출발하면 그때부터 이 차는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독특한 선이 살아 있는 보닛의 끝부분이 좁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고 오래된 운전대의 묵직함과 변속기에서 올라오는 진동은 손끝을 통해 운전자의 몸에 가감 없이 전달된다. 여기에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들려오는 기분 좋은 배기음은 그야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간간이 차 안으로 스며드는 휘발유 냄새까지 합치면 미각 빼고는 운전자의 모든 신경을 아주 서서히 자극하는 맛이 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면 여유가 느껴진다. 빨리 갈 필요도 없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차와 자연, 운전자가 하나가 되는 느낌도 든다. 빠르고 정확한 것들을 추구하는 요즘과 달리 낭만과 멋이 있던 시절의 느낌이 가득하다. 이후 운 좋게 1990년대에서 생산된 916 스파이더와 156을 몰아 볼 기회도 있었는데 알파 로메오 특유의 감각을 자극하며 즐거움을 주는 부분은 변하지 않았다.

전기차를 비롯한 차세대 동력원이 속속 등장하면서 자동차 역시 내연기관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비단 차세대 동력원이 아니더라도 내연기관은 이제 결과만 있을 뿐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자동차를 운전하는 원초적인 본능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불편하고 효율이 떨어지지만 클래식카에는 여전히 결과에 이르는 과정과 어떻게(How)라는 조건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치고 운전자에게 어떤 느낌을 전달해 주면서 목표치까지 도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케케묵은 낡은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클래식카를 통해 그 나름의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맛보고 즐기는 것 역시 자동차 문화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황욱익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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