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이스턴대학 심리학 교수이자 ‘신뢰의 법칙’의 저자 데이비드 데스테노. 그는 의지력은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신뢰를 저버리라는 유혹에 우리가 저항할 수 있다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진 데이비드 데스테노
노스이스턴대학 심리학 교수이자 ‘신뢰의 법칙’의 저자 데이비드 데스테노. 그는 의지력은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신뢰를 저버리라는 유혹에 우리가 저항할 수 있다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진 데이비드 데스테노

우리는 배신하고 배신당하며 살아간다. 내 등을 긁어주리라 기대했던 사람이 그 손으로 내 뒤통수를 친다. 결혼한 사람은 불륜을 저지르면서 배우자 앞에서 미소 짓고, 믿었던 지인은 빌려 갔던 돈을 갚지 않고 소식 두절이다. 전도유망한 젊은 연예인은 문란한 행동을 일삼다 꼬리를 잡히고, 청렴한 줄 알았던 정치인은 남몰래 했던 투기가 들통나 곤욕을 치른다.

세상은 배신자들의 천국이니, 대체 누가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남을 무조건 신뢰하는 것은 가슴팍에 ‘나를 이용하시오’라는 팻말을 달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데이비드 데스테노 박사는 말했다. ‘신뢰의 법칙’의 저자인 그는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과 못 믿을 사람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신뢰는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라고 한다. 사회심리학계의 거장이자 미국 노스이스턴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데스테노 박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신뢰란 무엇인가?
“신뢰는 도박이다. 당신이 나를 정직하고 공평하게 대할 거라는 믿음에 거는 도박이다. 결혼을 예로 들어보자. 결혼도 일종의 신뢰게임이다. 남편과 아내가 가정에서 서로의 책임을 다하면 싱글로 살 때보다 경제적 정서적 만족도가 높다. 그러나 만약 한쪽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실생활에서 자기중심적으로 룰을 위반한다면, 상대 배우자는 고통받는다.”

신뢰가 도박이라면, 왜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도박을 하나?
“타인을 불신해서 혼자 지내는 것보다 일단 믿고 함께하는 것이 ‘평균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보스턴 마라톤 폭발 사고로 방문객들의 발이 묶였을 때, 주민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집과 소파, 자동차와 자전거를 내줬다. 서로 의존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놀라운 신뢰를 끌어냈고 지역 주민들은 재앙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인류 공동체는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경제 자본을 공유하고 생산력과 회복력을 키워왔다.”

신뢰와 신용은 어떻게 다른가?
“신용은 어떤 행위가 쌓여서 매겨진 구체적인 점수다. 신용은 확인할 수 있지만, 신뢰는 확인할 수 없다.”

신뢰에 관한 연구에서 당신이 발견한 보편적인 진실은 무엇인가?
“인간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우리가 각자의 전문성과 능력을 공유하면서 이뤄졌다. 혼자 일했다면 우리는 결코 지금처럼 살 수는 없을 거다. 내 동료, 배우자가 나를 공정하게 대할 거라고 신뢰하지 않았다면 공동체는 진작에 붕괴했겠지.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착취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믿어야 한다. 청소년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바르다고 믿고 직장인은 보스가 자신을 공정하게 대우한다고 믿어야 한다. 상대의 말과 인격과 약속이 믿을 만한 것인지 매번 의심하고 검증하는 건 불가능하다. 배반당할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뢰는 더 나은 삶을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당신은 일관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뢰는 움직이는 것이라는 결론은 우리가 늘 경계태세를 취해야 한다는 말인데.
“사실이다. 신뢰는 선악이 아니라 이익의 균형점을 찾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보다 남을 더 쉽게 믿는다. 타인의 협력과 선의가 있어야 원하는 자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 자신의 등을 긁기 위해 오늘 다른 사람의 등을 긁어 주는 식이다. 반면 부와 권력을 얻으면 사람은 수시로 말을 바꾸고 거짓말에 대범해진다. 그렇게 해도 스스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데스테노 교수는 “정직한 사람이 역동적인 신뢰 게임의 승자가 된다”고 말했다. 사진 데이비드 데스테노
데스테노 교수는 “정직한 사람이 역동적인 신뢰 게임의 승자가 된다”고 말했다. 사진 데이비드 데스테노

‘누군가를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단정하는 건 위험하다는 건가?
“질문이 틀렸다. ‘누군가가 이 시점에서 믿을 만한 사람인가?’로 바꿔서 사고해야 한다. 고정된 믿음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겠지만 어리석은 판단이다. 우리의 상황은 늘 가변적이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이 얻거나 잃을 것들이 달라진다. 가령 갑자기 돈이나 권력을 얻을 만한 환경이 됐을 때 아마 당신도 놀랄 거다. 스스로가 얼마나 천연덕스럽게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가에 대해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실험에서 게임 성적만큼 돈을 가져가게 했을 때, 한 그룹만 성적을 부풀려 더 많은 돈을 챙겨갔다. 게임에 앞서 돈다발을 구경한 그룹이었다. 많은 다른 실험에서도 권력과 부를 맛본 사람들은 쉽게 신뢰를 저버렸다. 사람은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기 때문이다.”

핵심이 무엇인가?
“성자가 죄인으로 타락할 수도 있고 죄인이 성자로 거듭날 수도 있다. 그만큼 신뢰는 역동적이다.”

우리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에서 미리엘 신부가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을 믿어준 데 큰 감동을 한다. 누군가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 신뢰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경험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하겠다고 결심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결정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군가가 나를 절대적으로 믿어준다고 느낄 때 좋은 사람으로 변화할 의지가 생긴다. 부모 자식 관계가 그 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미리엘 신부 같은 성직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안타깝지만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예측할 수도 없다.”

현대사회에서는 평판에 많은 걸 의존한다. 과거의 평판뿐 아니라 미래의 평판에도 점점 더 신경을 쓰면서 산다. 평판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은 좀 충격이었다.
“평판은 행동에 대한 좋은 예측 지표다. 단 상황과 환경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게 전제다. 예를 들어 함께 일하는 동료는 믿을 만한가? 특별한 변수와 변화가 없다면 그는 당신을 계속 나이스하게 대할 거다. 하지만 회사에 승진과 해고의 바람이 불어닥친다면 잠재적 이익과 손실이 극대화된다. 어제까지 공정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던 동료가 오늘 이익을 얻기 위해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당신을 험담하려는 유혹에 빠질 거다. 평소 아내에게 충실했던 남편이 혼자서 출장을 떠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낯선 곳에선 자신의 불륜이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상황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변화 없는 인생이 없기에 어쩌면 평판은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신화 같다.”

그래도 좋은 평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드물 게 있다. 그건 그 주변의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운이 따랐다.”

누군가를 믿고자 선택할 때 그의 의도와 능력을 분별해서 주목하라고 했다. 매우 중요한 지적으로 보인다.
“선한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니다. 정직하지만 무능해서 상대에게 폐만 끼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의도와 능력은 신뢰의 두 가지 얼굴이다. 사기꾼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과는 실패와 손해로 동일하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우리 행위의 목표는 어떻게 최고의 이익을 얻을까다. 누군가를 믿을까 말까를 결정할 때, 반드시 그의 의도만큼이나 능력을 세심하게 계산해야 한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울 때 좋은 사람보다 전문가를 더 신뢰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생존 본능인가?
“그렇다. 어린아이가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의 가르침을 통해서다.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주는 정보를 받아들일지 말지 수시로 결정한다. 신뢰와 관련된 일종의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거다. 내가 발견한 것은 4세 아이들도 이미 교사의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친절한 교사보다 유능한 교사의 정보를 훨씬 정교하게 받아들인다. 어른의 능력을 평가하는 건 아이들의 생존 본능이다.”

배우자의 능력과 생활 습관, 인성에 대한 신뢰가 결혼의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감정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에 끌려 결혼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들도 많다. 결혼 생활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신뢰 전략이 있나?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자신이 착취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부부생활에서 신뢰란 각자가 자신의 책임을 맡는다는 걸 의미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할 일을 나누고 확인하는 거다. 설거지, 청소, 요리 등 가정 내에서의 역할을 정확히 열거하고 몇 개월간 지속해서 그걸 해낸다면, 서로가 상대의 필요를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 절차를 거치면 신뢰는 삶의 다른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잘 속는 사람은 왜 그런가?
“어떤 형태든 잘 속는다면 내면의 결핍으로 의존적인 성향이 있을 수 있다. 현실 감각이 부족해서 환상을 좇고 있지는 않나 점검해 봐야 한다.”

도덕성이나 성실성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의구심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인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보면 확실히 비난받을 행동인데도 본인은 그걸 자각하고 인정하기가 힘들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스캔들이 터져도 자신이 마녀사냥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거다.”

나도 남도 사실은 믿을 만하지 않고 ‘잠재적 배반자’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나?
“첫째, 우리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진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너나없이 신뢰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그 사실을 모른다면, 나조차 다른 사람을 속이고 싶은 유혹에 처할 때 경계심이 흐려질 테니까. 내가 규칙을 위반하고 부도덕해질 때 그 충동을 인지하는 건 중요하다. 두 번째, 자신을 포함해서 타인들도 정직하면서 동시에 부정직한 존재라는 사실이 주는 위로다. 이걸 알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후회할 일을 했더라도, 노력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타인을 믿는 것이 믿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정말 믿을 만한가?
“그렇다. 나는 오랫동안 신뢰를 배반하는 사람과 신뢰를 유지하는 사람에 대한 행동 사례를 수집해서 시뮬레이션했다. 처음에 발견한 사실은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이 빠른 이득을 얻는다는 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를 믿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그의 입지와 자원은 점차 줄어든다. 우리가 분별력 있게 신뢰하는 법을 체득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직한 사람이 역동적인 신뢰 게임의 승자가 된다.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인맥과 기회를 통해 가장 많은 자원을 얻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들이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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