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일’의 마지막 30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재난 속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은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사진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영화 ‘생일’의 마지막 30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재난 속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은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사진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5년이 지났다. 세월호 이전에도 크고 작은 재난은 많았고,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여느 재난과는 달랐다. 검푸른 바다 위에 아슬하게 떠 있던 세월호의 선수가 끝내 수면 아래로 가라앉던 날, 한국 사회는,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다시는 전과 같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는 살아남은 모두에게 ‘다만 우연히 살아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침몰하는 세월호 선실에 갇혀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들은 달리 무슨 죄를 지은 게 아니었다. 그 아이들, 학생들, 교사들, 일반 승객들 모두가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들은 잘못한 게 없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소설가 윤고은은 재난 여행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소설 ‘밤의 여행자들’을 썼다. 재난 여행은 거대한 재난을 일부러 만들어낸 뒤 여행객들로 하여금 그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게 해주는 상품이다. 이 소설에서 윤고은은 재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간명하게 요약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요나의 설명에 따르면 재난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내 삶에 대한 감사→책임감과 교훈 또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서로 이어진다고 한다. 윤고은의 소설에서 재난 여행이 인기 상품이 될 수 있는 건 마지막 두 단계 덕분이다. 다른 사람의 재난을 목격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들은 일종의 힐링을 체험하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 소설은 세월호 참사 이전에 출간됐다. 윤고은은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갈 ‘우연히 살아남은 이들’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 같다. 세월호 이후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이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거기에서 어떤 책임감과 우월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생존이 ‘우연’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영화 ‘생일’은 그 사실을 직시하려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생일’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다. 그날 이후 여러 편의 영화와 소설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애썼다. 다들 저마다의 의미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생일’의 위치는 조금 남다르다. 이 영화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바라본다. 세월호를 다루지만 2014년의 이야기보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잃은 304명이 아니라 우리의 곁에 함께 살아있는 한 가족을 보여준다. 이 가족은 세월호 참사 때 맏이인 ‘수호’를 잃었다. 아빠 정일(설경구)은 해외에서 일하던 중 다른 일이 생겨서 수호의 사고 소식을 먼 이국땅에서 들어야만 했다. 엄마 순남(전도연)은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한다. 생전 모습 그대로 아들의 방을 꾸며놓고 이따금 새 옷을 사와서 아들의 방에 걸어둔다. 그런 엄마의 곁을 어린 딸 예솔(김보민)이 지킨다.


‘잊어도 되는 때’라는 건 없다

수호의 생일을 앞둔 어느 날 정일이 한국에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일은 가족의 곁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순남은 비극의 순간에 곁을 지키지 않은 정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씩씩하게 자라는 것 같던 예솔은 갯벌 체험 현장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바다 그리고 물에 대한 공포가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탓이다. 가족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수호가 빠진 자리에서 나머지 가족들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순남은 이따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오열하고, 예솔은 오빠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면서도 오빠 때문에 자신에게 소홀한 엄마가 밉다. 정일은 가족에서도 사회에서도 설 자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는 시간이 많다.

이런 수호의 가족을 보며 누군가는 이제 잊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아마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의 백팩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을 보며 같은 질문을 했으리라. 단원고의 4·16기억교실 이전 문제를 놓고도 누군가가 같은 질문을 던졌을 수 있고,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을 철거하는 문제를 놓고도 같은 질문이 나왔을 것이다. 순남은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자리를 피하기만 한다.

질문하는 목소리와 피하는 발걸음을 나누는 건 태도의 차이다. 재난 이후 일상으로 무사히 귀환했다고 믿는 이들은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약간의 책임감과 우월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 머나먼 남쪽 바다의 비극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제는 잊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참사의 당사자들,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는 돌아갈 일상이 없다. 그들의 삶은 고장난 현관 센서등에 좌우될 만큼 허약하다. 그들은 우연히 살아남았고 그 사실을 직시하고 있기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는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트라우마를 운 좋게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살아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나는 트라우마를…’ 이라는 문장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 오직 ‘트라우마는 나를…’이라고 겨우 쓸 수 있을 뿐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영화 ‘생일’의 마지막 30분은 소중하다. 수호의 생일 모임을 비추는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재난 속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은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영화 내내 수호의 생일 모임을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던 순남은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이들이 내민 손을 잡는다. 순남과 정일, 예솔이 문을 열자 수십 명의 사람이 수호를 기억하기 위해 모여 있다. 이들은 수호의 생전 모습을 함께 바라보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운다. 수호와 함께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호가 그들의 곁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수호의 가족, 수호의 친구, 수호와 함께 배를 탔던 친구의 가족들. 이들은 그날 자신이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렇기에 서로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었다. 알량한 책임감과 우월감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건 정부나 권력자가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다른 누군가다. 영화 ‘생일’의 마지막 장면은 이 지난한 세계에서 실낱같은 구원의 빛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일러준다. 이제는 잊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무책임한 질문은 그만두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눈을 뜨고 한 눈으로는 재난 그 자체인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눈으로는 내 옆에 서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 손을 내밀어야 한다.

수호의 생일 모임 장면은 관객이 모임에 직접 참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연출됐다. 촬영과 편집, 카메라 움직임이 모두 그렇다. 아마 ‘생일’을 만든 이종언 감독은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에게 수호의 생일 모임에 오라고 초대장을 전하려고 한 게 아닐까. 영화는 120분의 상영 시간이 끝나면 막을 내리지만, 수호의 생일은 1년에 한 번 돌아온다. 우리는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음번 생일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말이다.

이종현 조선비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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