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럽고 성숙한 인격은 인연을 맺는 힘이 된다. 만남의 길이와 횟수가 인연에 꼭 중요한 것은 아니다.
너그럽고 성숙한 인격은 인연을 맺는 힘이 된다. 만남의 길이와 횟수가 인연에 꼭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친구 A가 이혼을 했다. 평범한 이혼은 아니었다. 서류상 절차는 밟지 않았다. 밟고자 해도 딱히 방법이 보이지 않았을 게다. 법률상 혼인 관계는 유지하되 여행에서만 이혼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가 딱히 나쁘거나 위기에 놓인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여행을 함께하는 일이 서로에게 즐거움보다는 피로가 된다는 걸 상호동의하에 인정하게 돼서 내린 결론이었다. 제안은 A가 먼저 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어처구니없어했지만, 그녀의 논리에 설득됐고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부부 사이는 어쩌면 그 이후로 좀 더 평온해지고 서로에게 너그러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법을 현명한 포기를 통해 배운 셈이었다.

남편은 일본 여행을 아들과 단둘이 떠나면서 두 사람만의 취향과 관심사에 대한 공통점을 확인하고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도 했다. 힘과 에너지가 넘치고 빡빡한 여행 일정을 선호하는 부자는 알맞은 여행 친구였다. 반면 느긋하고 즉흥적인 여행 방식을 좋아하는 A는 지난 한 해 동안 나와 네 차례 여행했다. 작년 4월 초, 대만 여행이 처음이었다. 즉흥적으로 제안했는데 스스럼없이 승낙했다. 이런 식이었다.

“우리 이번 봄에 대만 갈까?”
“그래.”


다정하고 우아하지만 과감한 그녀

뭐가 이렇게 쉽지.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알고 보면 A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밥 먹을래?” “그래.” 만일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너무 쉽게 “미안, 선약이 있어.” 그리고 그 선약에 대해 짧고 명료한 설명이 왔다. 승낙도 명쾌하게, 거절도 그러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로스앤젤레스(LA) 한복판에서 운전하다가도 여행의 기억이 눈앞에 펼쳐졌다. 왜 그토록 좋았을까, 자꾸 생각했다. 서로에게 한없이 너그럽고 성숙한 사람과 함께해서 아니었을까. 얼굴을 마주 보고 웃고 떠들던 기억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녀의 팔을 잡고 걸었던 계단들, 굳게 맞잡은 팔의 감촉이 포근하게 감돌았다. 사람은 역시 맞닿고 냄새 맡고 느껴야 더 사랑하게 된다는 걸 여행을 하며 실감했다. 알맞은 습도와 온도의 거리들, 적당히 이국적인 풍경들, 걸음의 속도를 맞춰 가다 보니 눈앞에 더 열렬히 펼쳐졌던 세상, 흐르듯 흘러도 영원처럼 아늑했던 우리의 말들이 시간이 더해갈수록 익어갔다. 나는 며칠 뒤 그녀에게 결혼을 신청했다.

“나랑 결혼해 줘. 여행 결혼.”

구애의 말은 그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말을 골라 표현하는 글로 대신했다. 다정하게, 우아하게, 그러나 큰 보폭으로 미끄러지듯. A를 떠올리면 함께 따라오는 말들이다. 다정함과 우아함만으로는 온전히, 안팎으로 모조리 매혹되기 힘들다. 섬세함을 품고 있되, 뻔한 예상을 배신하듯 과감한 동작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과감함마저 우아함과 다정함의 포물선으로 매끄럽게 이어졌음을 느낄 때 우리는, 아니 나는 매혹된다. 사건과 동작을 이어주는 우아함이 내 안에서 서사로 통합될 때 나는 그 사람을 자꾸만, 더 자꾸만 생각하다 빠져들게 된다.

다정하고 우아한, 그러나 과감한 보폭으로 성큼 들어온 친구 A의 첫발자국은 다음과 같았다. 몇 차례 인상 깊은 순간과 동작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강남 교보문고에서 있었던 ‘이혼 일기’ 저자 사인회 때였다. 사인회가 시작되기 전, 나는 편집장을 만나기 위해 근처 카페를 찾았다. 그곳에는 편집장 말고도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다정함이나 우아함은 이미 몇 차례의 만남을 통해 각인돼 있었다. 나는 충분히 그녀에게 매혹돼 있었다. 그렇지만 그날, 약속도 없이 찾아온 그녀가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따로 시간을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부담스러운 마음부터 앞섰다. 그리고 성급한 걱정을 미리 헤아린 듯, 그녀는 전해줄 용건만 마치고 떠날 듯이 간략하고 담백하게 말했다.

내게 엽서 한 장과 은색 팔찌가 담긴 봉투를 전해 주며 “언니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주고 싶었어요. 내일모레면 떠나는 거 맞죠? 여기 이 팔찌, 언니한테 꼭 주고 싶었어요. 이걸 하고 있을 때, 내게 참 많은 기쁜 일과 좋은 일이 있었거든요. 아이 때문에 걱정했던 것도 잘 해결되었고. 그래서 언니가 이제부터 갖고 있으면 좋겠어요. 사인회는 못 보고 가야만 할 것 같아서 서둘러 온 거예요.”


그녀와의 여행 결혼

우리는 알게 된 지 2년이 조금 넘은 사이였다. 개인적인 만남은 서너 차례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녀가 전해주는 선물과 그것에 얽힌 이야기와 그를 통해 전한 의미와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스치듯이 나눴던 눈빛이나 말들은 각별했다. 그 각별함을 그녀는 멀리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처럼 우아하게, 그러나 들어오는 동작은 크게, 훅, 거침없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나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녀가 전해 준 팔찌를 손목에 걸고 다닌다. 그렇게 그녀에게 받은 다정함을, 우아함을, 매끄러지는 과감함을 주술처럼 몸에 지닌다.

우리는 가벼운 동의 절차(‘그래!!’라는 명쾌한 대답)를 거쳐 느슨한 여행 부부가 됐다. 이후로 작년 한 해 동안만 총 네 번의 짧은 여행을 함께했다. 지난겨울의 전주 여행은 더더욱 특별했다. 서울부터 전주까지, 교대로 차를 몰아서 가고 오는 길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어도 할 말이 넘쳐났다. 이틀 밤을 함께 보내면서도 까무룩 잠들 때까지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고 또 꺼냈다. 그래도 할 말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나조차 껄끄럽고 갸우뚱한 내 모습을 그녀는 품을 열어 받아줬다. 나는 풍덩 빠지듯이, 그녀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내 품 또한 그녀에게 전부 열려있었다. 상대를 우선 믿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궁금하면 다정히 묻고, 묻기 전에 다정히 궁금해하는 사이이기에 가능했다.

서울과 전주를 오가는 여정은 때로 웃음으로, 눈물로, 나른한 행복감으로, 편안함으로, 그리고 궁극적 안전함으로 가득했다. 느긋이 쉴 때 쉬고 움직일 때 움직이고 즐길 때 즐겼다. 그 모든 리듬이 상충하지 않고 조화롭게 흘렀다. 별다른 계획 없이 다니다가 멈추고 싶을 때 멈췄다. 우연히 마주친 경이로운 풍광에선 동시에, 함께 감탄했다. 슬픔과 기쁨과 경탄을 지나친 검열 없이 자유롭게 쏟아낼 수 있는 관계는, 나를 더 나 자신으로 잘 살아가게 만들었다. 삶 또한 좀 더 긴 여행으로 본다면 그녀와 나의 인연은 더더욱 각별한 셈이 되었다. 느슨하지만 돈독한 인연으로 말이다.


▒ 이서희
서울대 법대를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학교 ESEC 졸업, 파리3대학 영화과 석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