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출신 작가 임상철씨가 자신이 완성한 조각상과 그림이 있는 작업실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남강호 기자
홈리스 출신 작가 임상철씨가 자신이 완성한 조각상과 그림이 있는 작업실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남강호 기자

‘빅이슈’는 영국에서 시작된 노숙자 자활잡지다. 한 권을 팔면 홈리스의 몫으로 절반의 금액이 떨어진다. 약간의 보증금을 모으면 임대주택을 빌려준다. ‘빅이슈’를 판매하는 사람을 일명 ‘빅판’이라고 부른다. 지하철역에서 간간이 ‘빅이슈입니다’라고 외치는 사람들. 그 말은 “저는 노숙자입니다”라는 외침과 유사하다.

임상철(52세)은 얼마 전까지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6년간 ‘빅이슈’를 팔았다. “잡지가 다 팔려서 모자란다 싶으면 쓰레기통을 뒤지곤 했어요. 거기에 버려진 ‘빅이슈’가 가득했어요. 잡지를 매개로 구걸을 하는 거죠. 자존감이 너덜너덜해지지만, 신경을 꺼야 했어요.”

사회의 밑바닥에 있었으나 동정받는 것을 꺼렸던 그는, 어느 날 잡지에 직접 쓰고 그린 이야기와 그림을 담은 엽서를 끼워 팔았다. 그것은 동정심을 자극하는 구구절절한 지하철 노인의 편지가 아닌, 한 자존감 있는 남자의 힘 있는 인생 에세이였다.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무정하리만치 덤덤한 ‘홈리스의 편지’를 읽은 한 편집자가 출판을 제안했고, 52통은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이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18년간의 노숙 생활을 기록한 책에서 느껴지는 건 필사적으로 삶을 놓지 않는 ‘생에의 애착’이다. 모든 노숙인이 다 그와 같지는 않겠지만, 임상철은 불행 앞에서 징징대지 않는다. 무정한 이 도시에서 그가 채굴해낸 이야기는 빈자의 비굴이 아니라 이웃의 소소한 친절과 그에 반응하는 스스로의 빛나는 염치였으니.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의 작가 임상철을 만났다. 그는 얼마 전부터 임대주택에 입주, 평생 꿈이던 조각 작업도 조심스레 병행하고 있다. 2016년엔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전시회를 했고, 장애인미술협회 준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라기보다는 ‘작업가’라고 명명했다.


‘빅이슈’ 잡지.
‘빅이슈’ 잡지.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구청에 신청한 자활 근로가 시작되는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빅이슈’ 판매는 얼마 전에 그만뒀다. 책을 내고는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조형물을 만들면서 보낸다.”

밤에 잘 때는 주로 무슨 생각을 하나.
“생존을 생각하고 예술을 생각한다. 작품이 좀 팔리면 좋겠다. ‘굶어 죽어도 예술’이라고도 하지만, 겪어 보니 굶주림은 예술이 아니었다.”

갑자기 홈리스로 전락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사업 실패나 이혼 후 가족과 인연이 끊기면서 서서히 거리의 생활에 젖어들게 된다고.

임상철은 제주도에서 삼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6세 때 돌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했고, 8세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여관방에 놓고 떠났다. 그와 형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버지를 기다렸지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미술품 조형물 제작 업체에서 일했다. IMF 한파가 있던 1998년 노숙자가 되어 2016년까지 거리에서 살았다.

궁핍하게 살면서도 항상 정중하게 염치와 약속을 지키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빅이슈’를 팔 때 그걸 사주는 사람이 대개 젊은 여성들이었다. 동정심에 그랬겠지만 고마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성 노숙자 쉼터에 적은 금액이지만 기부한다. 어릴 적 보육원에 있던 경험이 있어서 보육원에도 기부를 한다. 잡지 두 권 정도 금액이다. 그렇게라도 염치를 지키려고 한다.”

자립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좋아하지 않는다.”

어째서 좋아하지 않나.
“자립은 스스로 일어선다는 말이다. 나는 원래부터 일어선 사람이었다. 내 시간을 스스로 쓰는 게 자립인데, 그런 면에선 구걸하는 사람도 나름대로 자립하고 있는 거다. 그것도 그 사람만의 노동이다. 먹고살려는 본능은 누구나 똑같다. 어린아이가 공부하는 것도 자립이다. 나는 살아가는 시간 자체가 자립의 몸부림이라고 본다. 죽기 전까지 시간은 다 공평하다. 단지 번듯한 일이 있고 없고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주변의 노숙인 친구들의 죽음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
“같이 ‘빅이슈’를 판매하던 사람 중 벌써 4명이나 죽었다. 나는 미술에 대한 꿈으로 버티지만, 많은 분이 술로 지새다 돌아가신다. 그분들은 돈보다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죽어간다. ‘빅이슈’를 파는 것도 절반 이상은 순간의 교류를 원해서다. 잡지 책 건네면서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그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좋은 거다. 그만큼 쓸모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거다.”

그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고 했다. 마음에 걸리는 건 작업다운 작업을 못 해 보고 죽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뿐이라고 했다. 책에서 그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언급했다.

주인공 파이가 죽을 뻔한 순간에 “신이여, 지금까지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도 신에게 기도할 때가 있다. 혹한의 겨울에 한뎃잠을 잘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신이시여, 저는 하루살이입니다. 내일 아침 제발 일 나가게만 해주세요.”


임상철씨가 지하철 역사에서 사온 고양이 ‘냐옹씨'.
임상철씨가 지하철 역사에서 사온 고양이 ‘냐옹씨'.

신에게 드리는 기도는 응답을 받았나.
“그랬던 것 같다. 겨울의 밤은 영하 17도까지 떨어진다. 다음 날 다행히 인력사무소에서 일거리가 생기면 몇 십 킬로그램 벽돌을 져도 힘든 줄을 모른다. 저녁에 안도할 수 있다는 그거 하나로 견딘다. 사우나 가서 내 돈으로 밥도 사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어떤 신이 들어줬는지는 모르겠다. 예수, 부처, 알라 중 한 분이겠지(웃음).”

뚜렷한 종교는 없으나 수녀들의 대가 없는 헌신엔 감사를 표했다. ‘토마스의 집’ 등 영등포에 있는 무료급식소는 돈 없고 굶주린 노숙인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고. 임대주택이 생긴 후엔 어느 날 지하철 역사에서 파는 고양이 한 마리를 1만원 주고 사 왔다. 어둠 속에서 처음 ‘오도독’ 사료 씹는 소리를 들었을 때, 오십 평생 처음으로 남을 먹인다는 부양의 자긍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고양이를 이름 없이 ‘냐옹씨’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나.
“주종 관계가 아니라 길 위의 동지니까. 지금도 한 집에 두 집 살림하듯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 앞으로도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잖나. 그때가 되면 “우리 이제 어디로 떠나지? 냐옹씨!” 하고 묻겠지.”

평범한 삶을 원했나. 가족이 있고, 집이 있고….
“가족끼리 오손도손 사는 삶도 좋겠지. 하지만 고독해도 마음껏 시간을 쓰면서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페이스북을 보면 화목한 가정을 이끄는 내 나이 또래의 가장들도 다 비슷하게 피곤하더라(웃음). 여럿이 어울려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 있다. 어떤 삶이 더 낫다고는 말 못 하겠다.”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조각하나.
“이건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다. 예수 대신 죽은 난민 소년을 형상화했다. 이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만든 형상이다. 모델이 없어서 마음껏 그리고 조각할 수가 없는 게 아쉽다.”

첫 그림을 팔았을 때, 인정받는 기쁨도 컸겠다.
“한 어르신의 얼굴을 그려드렸는데, ‘빅이슈’ 잡지값 5000원에 그림값 1만5000원을 셈해서 2만원을 주셨다. 시간을 뺏은 대가라고, 조금 줘서 미안하다시며. 정말 기뻤다. 반면 젊은이들은 좀 철이 없다(웃음). 공짜 그림에 사인까지 해달라니… 허허. 그래도 어떤 젊은이는 자기 생일 기념으로 친구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빅이슈’ 28권을 사간 적도 있다.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책에서 ‘저는 지금껏 저의 삶을 사랑했습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놀랐다. 여전히 사실인가.
“사실이다. 태어났으니까 사랑한다. 다만 이제 들개가 아닌 집개처럼 살고 싶다(웃음).”

내일이 두려운 노숙인들에게 시간은.
“노동 일 하는 노숙인들은 봄이 오기만 기다린다. 겨울은 지긋지긋하다. 봄 여름 가을 벌어서 겨울을 대비하면 된다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하루 벌면 하루 반나절은 먹고살 만하다. 하루 일 끝나고 인력 사무실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가 제일 좋다. 주머니도 두둑하고. 봄에는 노숙인들끼리 돈도 빌려주고 밥도 사주지만 겨울에는 인심이 박하다. 미래는 언감생심이고, 그저 강퍅한 오늘만 있으니까.”

100세 시대라는 말은 당신에게 어떤 상념을 불러일으키나.
“100세까지 살고 싶지 않다. 죽기 3일 전까지 정과 망치를 들고 있었던 미켈란젤로처럼 내 일을 하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18년 경력 홈리스 경험자로, 최악의 상황에서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있나.
“나 스스로를 위대하게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비록 홈리스지만 예술가다. 단지 운이 없을 뿐이다’라고. 나한테 분노도 하지만 나를 좀 높여 생각하면 건방지단 소리는 들어도 자존감은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말투는 좀 노가다 식으로 거칠어도, 최소한 예의를 지키며 정중하게 살려고 했다. 급식소 공짜 밥도 잘 안 먹고, 받은 건 꼭 셈을 치러 돌려주려고 했다.”

신이 세 가지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어떤 것을 말하고 싶나.
“첫째, 문래동에 숙소 겸 작업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 달에 150만~200만원 정도 벌면서 작업으로 먹고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 둘째, 내 작업을 좋아해서 사주는 후원자나 친구 같은 뮤즈가 있으면 좋겠다. 셋째, 세계적인 거리의 작가들과 교류하고 싶다. 노숙하다 반려견 개를 그려 거리의 화가로 유명해진 존 돌란 같은 친구들…. 그 친구는 나보다 고생도 안 했더구먼(웃음).”

20년 노숙 경력을 가진 영국의 아티스트 존 돌란도 거리에서 반려견 조지를 그리면서 유명해졌다. ‘내 인생을 바꿔준 개’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성공한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 내일 그리고 모레 정도의 삶을 사는 우리 시대의 소시민들과 나누고 싶은 말이 있나.
“18년 홈리스 생활을 자랑이라 할 수 없다. 내가 게을렀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반성도 한다. 살아보니 삶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 같다. 열심히 살면 그만큼 풍부하게 주고, 게으르게 살면 빈약하게 준다. 나이 들어서도 ‘내가 열심히 살았구나’라고 자부할 수 있다면, 그게 참 인생이고 진리다. 살아보니 자유로운 사람도 열심히 살 수 있더라.”

우리 생이 계속 이어지는 긴 문장이라면, 어떤 불행이 쳐들어와도 기어이 주어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침착한 의지가 임상철의 생을 밧줄처럼 묶고 있었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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