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1992
영업 시간 매일 17:00~02:00
대표 메뉴 고르곤졸라 떡구이, 수상 떡갈비, 한우 내장찜


영업 시간 매일 18:00~04:00
대표 메뉴 문어사시미, 해물누룽지탕, 새우튀김


홍대 앞에 산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길눈이 어둡다. 눈에 익을 만하면 사라지기 일쑤다. 식당, 카페, 편집숍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폐업 릴레이가 계속된다. 건너편 통유리 건물은 휑한 내벽을 보인 지 1년이 넘어간다. 호랑이의 이빨이 우르르 빠지는 것처럼 공실은 늘어만 간다.

황무지화해 가는 이곳에 마지막 보루처럼 남은 골목이 있다. 홍대 경의선 책거리 옆 골목,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땡땡거리’라 불린다. 땡땡거리는 산울림소극장 건너편에서 시작해 옛 철길을 따라 홍대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200m 남짓한 짧은 골목길이다. 경의선이 다니던 시절, 기차가 올 때 ‘땡땡’ 소리를 울린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신촌과 홍대 앞의 경계가 되는 이 거리는 신촌의 전성기에도 홍대 앞이 팽창하던 때에도 붐비거나 북적이지 않았지만, 사람의 발걸음이 끊이진 않았다. 인근 지역의 개발 광풍에도 아직 이곳은 새로 지어진 건물이 드물다. 마치 국경 지대의 마을 같다.

“남는 게 없으면 월세를 올리세요.” 2000년대 초반, 홍대 앞이 팽창하면서 세금 폭탄을 맞은 땡땡거리의 건물주가 공무원에게 한탄했다가 기껏 돌아온 말이다. 그 싸질러진 말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 건물주들은 무참히 한꺼번에 200% 넘게 월세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땡땡거리의 낮은 불빛들은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간판이 갈리거나 주인이 갈렸다.

1992년 땡땡거리가 홍대 앞보다는 신촌 변두리로 여겨지던 시절, 즉 신촌이 서울 서북권을 대표하는 상권이었던 때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술집이 있다. ‘산울림1992’다. 처음에 썼던 간판을 그대로 쓰되 개업연도인 1992만 몇 년 전 덧붙였다. 인근에 있는 동명의 소극장에서 이름을 따온 이곳은 1990년대 대학가 주변에 있는 흔한 전통주점과는 조금 달랐다. 멋쟁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게를 운영했고 자그마한 열린마당에는 강아지도 있었다. 김치전, 제육볶음 등 흔한 메뉴였지만 음식이 맛있어서 홍대생, 연대생은 물론 당대의 유명 연극인도 자주 찾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었던 산울림이 제법 흥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말, 홍대 앞이 인디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무렵이다. 인근에 라이브 클럽들이 생기면서 음악인 그리고 그들의 팬이 땡땡거리로 몰려들었다. 경의선 기찻길 옆 고깃집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끊이지 않았으며, 그 외에도 작은 술집들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산울림’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말이 되면 공연을 끝낸 인디 음악인들로 가게가 꽉 차곤 했다.

현재의 사장인 홍학기도 그때 ‘산울림’의 단골이었다. 노부부 주인을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며 허구한 날 들락거리며 술을 퍼마셨다. 가게를 인수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2003년이었다. 임대료 폭탄을 직격탄으로 맞았다. 그 폭탄은 주변 주점들뿐 아니라 공연장도 폭파시켰다. 와우산 자락에 살던 일일노동자와 예술인 단골도 홍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경의선 철길 공사가 5년간 계속되면서 신촌에서 넘어오던 사람의 발길도 급격하게 줄었다. 이민을 할까도 궁리했지만, 어딜 가나 장사로 먹고살 것이 뻔하기에 마음을 다잡고 집 담보 대출까지 받아 가게를 전면 개편했다. 절실했고 과감했다. 그가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건, 5년 전 동결된 저렴한 임대료가 한몫했다. 건물주의 후한 결정이 ‘산울림1992’가 땡땡거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왔다.

홍대뿐 아니라 마포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주 전문점으로 다시 태어났다. 매일같이 줄이 늘어서 있다. 단골은 줄었지만 홍대 관광객이 꼭 가봐야 하는 명소가 됐다. 그간의 세월을 우직하게 버텨준 기둥, 옛 정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통나무 가구와 장식들이 가게의 정취를 북돋는다. 벽장에는 전국 양조장을 일일이 수소문해 큐레이션한 전통주 100종이 가득하다.

음식은 일본, 프랑스, 중국 등에서 공부해온 셰프에게 맡겼다. 수비드 된장 맥적, 등갈비 들깨탕 등 익숙한 듯 새로운 메뉴로 꽉 채워졌다.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할 필요 없다. 여러 가지 메뉴들이 알뜰한 양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반상 위에 놓이는데, 가격이 너무 싸다 싶을 정도로 저렴하다. 다채롭고 풍성한 안주가 앞에 놓이는데 술을 우물쭈물 마실 이유가 없다. 병을 비우고 갈음할 때마다 새로운 선택이 이어지고, 취향은 쌓인다. 홍 사장이 용감했던 만큼 ‘산울림1992’는 진화했다.


산울림에서 판매하는 안주 세트. 사진 산울림
산울림에서 판매하는 안주 세트. 사진 산울림
땡땡거리의 음악 주점 ‘섬’. 사진 김하늘
땡땡거리의 음악 주점 ‘섬’. 사진 김하늘

음악에 젖어드는 밤, 보내려면

크고 작은 공연장과 클럽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음악과 술 없이 살 수 없는 한량들은 여전히 홍대 주변에 서식한다. 나도 그중 하나다. 땡땡거리를 지날 때마다 고개를 쏙 빼고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드는 단골 주점이 있다. 그 이름은 ‘섬’, 영어로는 ‘Illusion Island(환상의 섬)’다.

당시의 홍대와 신촌을 박제한 듯하다. LP는 물론 CD와 카세트테이프까지, 홍대와 신촌의 음악 역사가 새겨진 음반들이 벽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때의 이곳이 그리운 사람들과 그 감성의 젖줄을 따라 찾은 사람들이 한데 섞인다. 음악 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영화 만드는 사람 등, 가진 건 자신뿐인 사람들이 한데 모인다. 목구멍을 적시거나 귓구멍을 적셔야 할 때, 삶의 갈증이 밀려올 때 섬으로 가자. 무료입장, 유료 퇴장. 어느 날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DJ가 나 홀로 음악을 틀고, 어느 날은 기타를 잡은 가수가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얼마 전엔 가수 조덕배가 노랠 불렀다. 사람들은 술과 음악으로 정신과 육체를 흥건하게 적신다. 그렇게 서서히 젖으면 어느새 흠뻑 절어 있다.

비어버린 홍대의 큰 길가와는 다르게 땡땡거리는 활력을 되찾고 있다. 등 떠밀려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남는 게 없어도 우두커니 지켜왔다. 오랫동안 이 골목을 찾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산울림처럼 번지고, 섬을 향해 손을 흔들 수 있길 바라본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라이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