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이프치히 구시가지 중심가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에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안치돼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구시가지 중심가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에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안치돼 있다.

순백색의 피아노 건반 위로 손가락이 우아하게 춤을 추는 듯하다. 손가락에 깊게 팬 주름, 그리고 그 손가락이 누른 건반 위로 피어오르는 음악에서 삶의 깊은 연륜이 느껴진다. 마지막 음이 사라지고 숨이 멎을 듯한 정적이 한동안 지속한다. 그리고 이내 장내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카메라 앵글이 손가락에서 연주자의 얼굴로 옮겨가고 한 많은 인생의 얼굴 뒤로 어린 소녀와 같은 맑고 빛나는 눈동자가 보인다. 무대 퇴장 후 곧 한 아름의 꽃을 품에 안고 등장한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뒤에 놓여있는 비석에 꽃을 내려놓고 공손히 두 손 모아 인사를 한다. 묘비명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이곳은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독일 텔레비전 방송 중계로 연주를 지켜봤던 필자의 마음도 매우 뭉클했다. 피아니스트의 극적인 삶이 음악에 투영돼서일까 아니면 서양 음악사상 최고의 대가로 꼽히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마음을 뒤흔들었기 때문일까.

주 샤오 메이라는 피아니스트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세기를 뛰어넘는 음악적 관계는 그녀의 자전적 소설 ‘마오와 나의 피아노’와 독일 방영 다큐멘터리로 세계에 알려졌다. 특히 바흐가 인생 후반기에 봉직하고 삶을 마친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의 연주는 방송뿐 아니라 그녀의 음악 인생에도 하나의 정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는 주 샤오 메이는 1949년 중국에서 태어난 여류 피아니스트다. 베이징에서 음악 교육을 받고 신동이란 칭호와 함께 그녀가 꿈꾸던 예술가로서 빛나는 삶은 1966~76년에 중국에서 발생한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좌초되고 만다. 당시 사회적 위치와 서구식 교육으로 인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정부에 의해 부르주아라고 낙인 찍히며 내몽골 지역의 노동수용소로 강제 이주당했다. 하지만 피아노와 음악을 향한 그녀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그녀는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해 청소부와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음악 교육을 지속했다고 한다. 이후 파리로 이주해 바흐의 음악을 연구·연주하며 세계적 연주자로 발돋움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바흐의 음악이 그녀의 거친 삶을 지탱해준 기둥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런 연유에서였는지 바흐가 잠든 성 토마스 교회에서 연주하는 게 소원이었다는 그녀의 말처럼 성 토마스 교회 중계 방송에서 보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는 뭉클한 감동 그 이상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그녀의 고됐던 삶의 투영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여기 성 토마스 교회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병마에 맞서며 음악의 혼을 불태웠던 바흐와 그의 음악에 의지해 인생의 난관을 넘어온 그녀의 만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뤄졌기에, 그 음악을 들은 모든 이가 감동한 것이 아니었을까.

성 토마스 교회는 독일 라이프치히 구시가지 중심가에 있는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1212년에 창단돼 현재까지 활동 중인 토마스 소년합창단, 1539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설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1723~50년에 봉직했다는 사실이 이 교회의 주요 연혁이다.

독일 여러 곳을 떠돌던 바흐는 1723년 이 교회에서 칸토어라는 직책으로 삶의 마지막 단락을 시작했다. 칸토어는 아직도 독일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직책으로, 교회 안팎 더 나아가 그 지방의 주요 음악 행사를 관장하는 자리다. 바흐는 이 직책을 맡는 동안 그의 인생을 총결산할 수 있는 다수의 명곡을 작곡했다. 요한 수난곡, 마태 수난곡, 성탄 오라토리오 등의 종교음악을 비롯해 농부 칸타타, 커피 칸타타 등을 작곡했으며 그의 대다수 종교음악은 여기 성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됐다. 이 시기 그의 작풍은 독일 음악의 양식을 넘어 프랑스, 이탈리아 음악 양식의 결합뿐만 아니라 200년 넘게 지속된 유럽 바로크 음악의 전통을 총결산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그리하여 긴 바로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후 고전 시대가 태동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됐다고 음악학자들은 말한다.

바흐는 1750년 성 토마스 교회 근처 요하니스 교회의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이후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 및 삶은 상당히 잊혔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펠릭스 멘델스존이 일으킨 바흐 르네상스를 통해 그의 명성은 다시 부활했고,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요하니스 교회가 파괴됨에 따라 그의 명성에 맞는 묘 조성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50년 바흐 서거 200주년을 맞아 그가 말년까지 음악의 혼을 불태운 성 토마스 교회,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천장이 높고 가장 신성한 장소인 제단 앞에 안치돼 비로소 바흐는 영원한 안식을 맞게 되었다.

현재 성 토마스 교회는 바흐가 남긴 빛나는 유산을 잘 지켜 나가고 있다. 매년 열리는 바흐 음악 축제에서, 주일에 열리는 미사에서, 또 주중에 열리는 각종 음악행사에서, 바흐 작품을 접할 수 있다. 이곳에서 음악으로 바흐를 극적으로 만나게 된 피아니스트 주 샤오 메이처럼 언젠가 필자뿐 아니라 독자들도 음악으로 그를 만나게 되길, 그리고 고단한 삶의 베일 뒤에 놓여 있는 평온한 마음의 안식을 바흐의 음악으로 느끼게 되길 기원해 본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을 음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피아노|주 샤오 메이

바흐가(家)와 친분이 있던 카이저링크 백작이 그의 개인 건반 연주자 골드베르크를 위한 곡을 의뢰하면서 이왕이면 그의 불면증을 위해 밤에 듣기 편안하고 부드러운 음악을 주문했다고 전해진다.

언뜻 보기에는 자장가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건반 음악의 전통을 비롯해 기악과 성악 표현법 및 다성음악의 진수가 들어있다. 바로크 시대를 넘어 서양 음악사에서 손에 꼽는 건반 음악의 정수라 칭해진다. 첫 악보가 출판된 지 3세기 가까이 되고 있지만, 지금도 음악가들에게 끝없는 영감과 가르침을 주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사라방드 형식의 차분한 아리아가 약 40분 동안 무궁무진한 변주를 거치다가 다시 아리아가 재등장하며 곡이 마무리되는 마지막 부분은 이 곡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주 샤오 메이의 연주로 소개해 본다. 그녀의 굴곡진 삶을 대변해주는 자전적 음악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