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열혈사제’의 매력적인 행동파 신부 김해일을 맡아 열연한 김남길. 그는 국정원 특수요원 출신으로 알코올 의존증에 독설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가톨릭 사제 역을 맡았다.
SBS 드라마 ‘열혈사제’의 매력적인 행동파 신부 김해일을 맡아 열연한 김남길. 그는 국정원 특수요원 출신으로 알코올 의존증에 독설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가톨릭 사제 역을 맡았다.

“마음 편히 죄지으려고 성당 나오는 신도들은 성수로 반신욕 해도 천국 못 갑니다.”
-드라마 ‘열혈사제’ 중에서

김남길에게 호기심을 가진 건 2012년 즈음, 한 사회활동가를 통해서였다.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 현장에 함께 다녀온 후,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가 ‘길 스토리’라는 비영리 공익단체를 론칭한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그 사회활동가의 요청으로 나는 ‘길 스토리’ 홈페이지에 재능기부로 몇 편의 힐링 에세이를 실었다. 그렇게 사소한 인연으로 몇 년간 김남길이라는 사람에 대해 약간의 관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막 인기를 얻은 젊은 배우가 자신의 매력 자본을 선한 영향력으로 환전하려는 이 놀라운 액션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무슨 무슨 단체의 홍보 대사가 아닌, 그 자신이 문화예술 NGO의 수장이 되어 많은 사람과 길 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겠다니! ‘이것은 선의인가 치기인가!’ 의심의 와중에도 그는 작은 시골 마을의 버스에 안내 방송을 내보내는 캠페인이나 필리핀 태풍 피해 모금 운동 같은 일을 소리 없이 벌여나갔다.

대체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분방한 ‘다혈질’ 배우와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선한 의지를 지닌 신중한 사회활동가는 어떻게 김남길 안에 공존하게 되었을까? 그러던 차에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열혈사제’는 성과 속, 현실과 드라마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거침없이 풍자와 패러디를 쏟아내며 대중의 열광을 끌어냈다. 그는 국정원 특수요원 출신으로 알코올 의존증에 폭력을 서슴지 않는 가톨릭 사제 역을 맡아 코믹과 액션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몸은 아직 특수부대원인데, 마음은 사제인 김남길은 십자성호를 긋던 손으로 어퍼컷을 날리며 물 만난 히어로처럼 부패 도시를 누빈다. 김남길을 만났다. 검은 사제복을 벗고 눈부신 흰 셔츠에 블랙진, 슬리퍼를 신은 편안한 모습이었다.


드라마 ‘SKY캐슬’은 우리 사회 교육 피라미드를 풍자했고, ‘눈이 부시게’는 나이 듦에 대한 시선을 교정해서 감동을 끌어냈다. 사람들은 ‘열혈사제’의 어떤 부분에 그렇게 열광했을까.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의 관계성이 ‘열혈사제’의 핵심이다. 우리는 조연이 주연을 위해 희생하거나 도구로 쓰이지 않고, 각자의 역할과 개성을 유지했다. 그런 조화 속에 악을 단죄하고 동시에 사회 적폐 세력이 회심하는 스토리가 가려운 부분을 속시원하게 긁어준 것 같다.”

사제복이 그토록 스타일리시한 전투복이 될 줄 몰랐다.
“특수부대 출신 사제라면 그 신선도가 다르잖나. 내가 활동하는 공간은 구담시라는 가상의 도시였다. 영화 ‘배트맨’ 고담시의 패러디인데, 그런 면에서 내가 맡은 김해일 신부는 히어로 아닌 히어로다. 배트맨 가면을 쓸 수도 없고(웃음). 대신 검은 망토처럼 사제복 위에 롱코트를 휘날리고 다녔다.”

평소엔 언제 분노하는가.
“주로 작은 일에 욱하는 편이다(웃음). 누군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작정 밀고 들어올 때,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주차한 차를 볼 때, 깜빡이를 켜지 않고 돌진하는 차를 만날 때… 일상적인 배려심이 없는 무례한 타인들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영화 ‘강철비’의 정우성만큼 완성도 높은 액션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액션 영화를 상상해봤다.
“정우성씨와는 피지컬 면에서 내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웃음). 영화 ‘무뢰한’에서 박성웅씨를 상대할 땐 몸이 다 으스러질 것 같았다(웃음). 다만 나는 촬영장에 와서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고 다리를 찢었다. 투박하게 치고 받기보다 무용하듯 힘을 빼고 스타일리시한 몸놀림을 만들고 싶었다. 작품마다 함께했던 두 명의 액션 감독이 동작을 정교하게 설계했고, 카메라가 아래에서 위로 발차기를 잡아줬다. 알고 보면 내가 하는 수많은 헛발질에 액션 팀이 격렬하게 맞아줬던 거다.”

액션과 코믹이 적절한 시너지를 이룬다는 점에서 영화 ‘극한직업’이 생각나더군.
“이하늬씨가 ‘극한직업’을 끝내고 와서 팀에 합류했다. 첫 마디가 “똑바로 인사 안 해? 이 탤런트들아!(웃음)”였다. 우리 모두 ‘천만 여배우’를 융숭하게 대접했다(웃음).”

올해 서른아홉인데, 철이 덜 든 어른 같은 느낌이 있다.
“어릴 적엔 양조위와 장첸이 롤모델이었고 그들 같은 이미지를 추구했다. 한편으로는 코믹 연기도 병행했지만, 드라마 ‘나쁜 남자’에서 이미지도 강렬했던 모양이다. 서른 중반부터는 주성치와 B급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다.”

실제로 만화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나.
“(함박 웃으며) 나는 연기를 만화로 배웠다. 고전인 ‘슬램덩크’를 봐라. 그 표정과 목소리와 정서가 정말 빼어나다. 애니메이션은 컷과 컷의 분할로 벚꽃의 풍경뿐 아니라 냄새까지 묘사한다. 나는 친한 영화감독과 드라마 PD에게 만화를 보고 장면을 구성해 보라고 권한다. 특히나 일본 만화는 미래지향적인 메시지가 있으면서 음악과 미감도 정말 탁월하다.”

연극하다 2003년 MBC 31기 공채로 입사했다.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의 비담으로 뜰 때까지 6년의 시간은 어떻게 보냈나.
“온갖 단역을 전전했다. ‘베스트극장’ 같은 단막극이나 다큐 드라마 ‘서프라이즈’에 차출되곤 했다. 영화 현장에 이름 없는 많은 작은 배역도 연기했다. 알찬 시간이었다. ‘선덕여왕’으로 얼굴이 알려지면서 비중 있는 배역들이 들어왔다. 그 후 10년간 동료들과 책임감을 갖고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배우이자 문화예술 NGO ‘길 스토리’의 대표이기도 한 김남길.
배우이자 문화예술 NGO ‘길 스토리’의 대표이기도 한 김남길.

특별히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가 있나.
“먹고살 만하니 군대 오라고 영장이 나왔다(웃음). 2009년 ‘선덕여왕’으로 뜨고 2010년 ‘나쁜 남자’라는 드라마를 16부까지 찍다 급작스레 군대에 가게 됐다. 영광을 누릴 새도 없이(웃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잊히면서, 서서히 내려오는 법을 알게 됐다.”

동료 배우들은 어떤가.
“‘열혈사제’에 나온 배우들은 지금 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 중 누구도 들떠서 흥분하는 친구가 없다. 드라마가 주목받으면 본인을 어필하려는 욕구가 생기는데, 약속이나 한 듯 서로에게 양보하고 비켜주고 몰아준다.”

캐릭터라는 가면을 쓴다고 해도, 결국 연기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감정과 인격을 나누는 일. 촬영 현장은 어떤 노동 현장보다 유독 ‘사람을 탄다’. 정경유착으로 부패한 구담시의 공무원과 조폭들이 결국 ‘김 신부님’의 정의감에 교화되듯, 쉴 새 없이 웃기면서 판을 깔아주는 김남길의 밝고 겸손한 에너지에 동료 배우들은 자연스레 동화됐다.

김남길을 발견한 영화로 2014년 ‘무뢰한’을 꼽는다. 상대 역인 전도연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물론.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네가 돋보여야 내가 돋보이고, 내가 돋보여야 네가 돋보인다’는 말이 기억난다. 전도연씨는 내 눈을 궁금해했다. 당시에 살짝 다래끼가 난 채 게슴츠레한 상태였는데, ‘바로 그거야’ 하며 좋아하더라. 왜 이제까지 눈에 힘을 줬느냐고(웃음). 얼굴로 하는 연기는 이제 그만하라고. (가슴을 치면서) 여기서 나오는 연기를 해야 좋지 않겠냐고. 자신도 이창동 감독 앞에서 막막했을 때, 억지 연기는 거짓 연기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전도연씨와 연기하면서 결국 감정이 정답이라는 걸 배웠다.”

성실성에 대해선 어떤가.
“연극을 할 때 철판요리집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이 워낙 힘들어서 다들 3개월만 하고 내뺐는데, 나는 6개월을 버텼다. 이것도 못하면 다른 것도 못할 것 같아서. 그랬더니 사장님이 연극 그만하고 같이 돈 벌자고, 주방장으로 승격을 시켜줬다(웃음). 그분을 드라마 ‘명불허전’ 촬영할 때 거리에서 만났다. 십 몇 년 만에 만나서도 또 ‘같이 식당을 하자’시며, 하하하.”

문화예술 NGO 길 스토리의 수장이다.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인가.
“(신이 나서) 지금도 지방의 버스 안내방송(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로 녹음된)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100명의 프로보노와 25명의 리더가 있다. 우리 캐치프레이즈가 ‘작지만 위대한 움직임’이다. 큰일은 큰 분들이 하고, 우리는 비영리단체라 이웃을 위해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정서적인 일을 한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실행하는 게 쉽진 않지만 차분히 계속하고 있다.”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가.
“요즘 초등학생들의 꿈이 사제라더라. ‘선덕여왕’을 할 땐 초등학생들이 ‘비담’이 될 거라고 했다. 내 본성이 선하고 아니고와는 상관없이 배우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각박한 세상에 주변을 돌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좋은 취지에 동참한다면 자생적으로 선한 길이 확장되리라 믿는다.”

드라마가 끝나고 사제복을 벗었다. 무엇이 달라졌나.
“동료들끼리 서로에게 쪽팔리지 않게 임무를 완수했고, 그 대가로 다음 기회를 갖게 됐다. 나는 여전히 집에 가서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김과 김치, 가끔은 스팸이 올라간 밥상을 기쁘게 받을 뿐이다.”

특별히 마음에 남는 대사가 있나.
“드라마 막바지에 악인인 이중권(김민재 분)을 총으로 쏘려다가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내가 너를 용서한다(마태오 18, 22).’ 용서라는 단어가 마음에 남았다. 누구나 숨겨진 비밀이 있잖나. 성인에게도 과거가 있고 죄인에게도 미래가 있다. 내가 누군가를 그리고 누군가 나를 용서할 때에야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이냐’며 그가 큰 소리로 웃었다. 김남길은 무교다. 그는 과거 촬영차 들른 절에서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8배를 했다. 문득 이 열혈 인간의 종교는 친절과 성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 시대의 지혜자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나.
“내 미래, 내가 어떤 길로 가게 될지는 궁금하지 않다. 내 주변의 동료들이 잘될지, 내 가족의 건강이 괜찮을지만 궁금하다.”

자신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없나.
“나는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 하다 보면 다 어떻게든 되게 되더라. 예전엔 큰 사건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하루하루의 작은 행위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 나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산다. 그냥 성실하게, 잘(웃음).”

인생에서 당신이 가장 잘한 결정 세 가지를 말해달라.
“첫째 배우가 된 것. 둘째, 매 작품이 잘되든 못 되든 내가 그걸 하기로 선택했다는 것. 셋째, 길 스토리를 시작한 것. 나는 사람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걸 진심으로 믿는다. 작은 NGO를 하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정을 계속 확인하며 살게 된다. 그 점이 좋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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